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점심시간이 오기 전까지, 형준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쉬는 시간마다 사라졌다가 땀에 젖은 채 돌아왔고, 다시 책상에 엎드렸다.
그걸 반복하는 하루.
형준은 마치 교실 속 ‘유령’ 같았다. 땀 냄새만 남기고 말도 없이 흘러가는 존재.
그리고 마침내, 점심시간.
덕군 컴퍼니 분단은 오늘도 푸짐하게 한상을 펼쳤다.
중앙에는 오늘의 메인 메뉴인 갈비찜이 가득하다.
그때, 조용한 목소리 하나가 흐른다.
“민지야… 정연아… 혹시 같이 먹어도 될까…?”
수빈이었다.
정연과 민지는 짧게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괜찮아. 앉아.”
하지만 그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우덕은 젓가락을 든 채 미간을 찌푸렸고,
예린은 입꼬리의 긴장만으로도 말하고 있었다.
규만 역시 말없이 밥을 뜨고 있었다.
그리고 형준.
그는 숟가락을 내려놓더니 조용히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형준아, 어디 가?”
정연이 팔을 붙잡았다.
형준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말했다.
“입맛이 없어서. 그리고… 나랑 쟤랑, 하하 호호하면서 밥 같이 먹을 사이 아니잖아.”
말 끝에 ‘처먹을’이 빠졌을 뿐, 그 말의 온도는 충분히 차가웠다.
형준은 그대로 식판에 있던 음식 전부를 쏟아버리더니,
가방을 들고 조용히 교실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순간, 교실 안의 온도는 냉동 창고처럼 식어버렸다.
성곤은 젓가락을 든 채 그대로 멈춰 있었다.
“… 밥이 입으로 가는 건지 코로 가는 건지 모르겠다…”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휴… 한번 싫으면 끝까지 싫어하는 저 성격.
저건 진짜 예수님 부처님이 2대 1로 붙어도 못 고쳐…”
우덕이 이어받았다.
“쟤는 예수님 부처님보다 정연님이 더 위잖아.
야, 최수빈. 적당히 껴들어.
정연이 아니었으면 너 지금 이나래 옆에 같이 누워 있었어.
에휴… 나도 입맛 뚝 떨어졌네. 난 간다. 맛있게들 드셔~”
예린도 일어섰다.
“성질은 확 나는데… 정연이 소원이니까 참는 거지 뭐.
성곤이 말대로, 저 성격 어디 안 간다.
나도 안 먹을래. 내일 봐.”
규만이 천천히 일어서려 하자, 민지가 그 팔을 붙잡았다.
“너까지 이럴래? 진짜 너까지 이러면 나… 진짜 실망할 것 같아.”
규만은 이번엔 단호했다.
“… 이번엔 너 말 안 들을래. 가서 쟤 성질 좀 풀어줘야겠어.
또 어디서 뭐 때려 부수고 다니면 어쩔 거야?
길거리에 안형준 주의보 발령이라도 해야 할 판이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쨌든, 나도 간다. 맛있게 먹어.”
남겨진 수빈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말했다.
“내가 그렇게… 싫구나.
다들… 나만 보면… 그냥 다 가버리네…”
정연은 밥을 뜨지도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다가, 고개를 떨궜다.
“내가… 너무했나 봐…
형준이라면… 내 마음 알아줄 줄 알았는데…
그냥 화를 내줬으면 좋았을 텐데…”
지수가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예린이 말이 맞았던 것 같아.
형준이 성격 다들 알잖아.
정연이 너 소원이 아니었으면 진작에 사고 터졌을걸?
화나는데도 꾹 참고 있었던 거야.
그러다 수빈이까지 밥 먹자고 하니까… 그게 마지막 선 넘는 거였겠지.”
지수는 급히 수빈을 돌아보며 덧붙인다.
“아! 수빈! 네가 잘못했다는 말은 아니야! 진짜로!”
태연이 정연의 팔을 살짝 잡고 말했다.
“예린이가 말한 그 장소, 거기 가봐.
아니면 체육관이든지.
근데… 너 혼자 가야 돼. 아무도 따라가면 안 돼.
그래야 형준이가… 진짜 말할 거야.”
정연은 말없이 일어섰다.
밥을 먹지도 않은 채, 조용히 교실을 나섰다.
학교 뒤편, 주차장 담벼락을 넘어서 뒷산으로 향한 정연.
그곳은 나무 몇 그루 사이에 샌드백 세 개가 묶여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향해 미친 듯이 연속 발차기를 날리는 아이.
티셔츠는 땀에 다 젖었고, 숨소리는 짐승처럼 거칠었다.
형준이었다.
그리고 그의 손등은, 여전히 부어 있었다.
정연은 그 광경을 멈춘 채, 한참을 말없이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