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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설악산 야간 등산 - (1) 한계령 휴게소

by 신피질

추운 겨울에 높은 설악산 가려고 집을 나서기 수시간 전부터 온갖 걱정이 든다.


ㆍ 한계령은 처음이라 밤중에 길을 잃을 수 있다.

ㆍ 한계령으로 가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ㆍ 한계령과 공룡능선을 한 번에 가는 것이 무리일 것 같다.

ㆍ 내 체력으로 모두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ㆍ 나는 예민해서 무박산행 시 버스에서 잠을 거의 자지 못한다.

ㆍ 잠을 충분히 못 자면 산행 기분이 안 좋을 수 있다.


ㆍ 설연휴로 돌아올 때 버스가 많이 막힐 수 있다.


ㆍ 20여 년 전 날씨 좋은 가을에 딱 한 번 가본 공룡능선은 정말 어려운 코스라 약간 겁난다.


ㆍ 아내가 정초부터 집에 있지 않고 온갖 부산을 떤다고 한다.

ㆍ 짐을 너무 무겁게 가져간다. 한 끼 먹겠다고 어리석게 무거운 도시락을 가져간다.


ㆍ 긴장감이 앞서 온갖 것을 챙기다 보니 짐이 많다.


밤 10시 50분 집을 나섰고 11시 도곡역에서 3호선을 기다리고 있는데 불안감이 인다.

이 불안함과 거부감은 혹시 사고가 날 것을 미리 경고하는 예지이니 지금이라도 돈이 아깝지만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드디어 밤 11시 30 분 양재역에서 산악회 버스를 탔다.

양재역 버스.png


가평휴게소에 밤 12시 50분 도착했다. 편의점에 모든 것이 있다. 앞으로는 편의점에서 김밥 2개와 에너지바 4개 정도로 간편하게 준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잠은 전혀 잘 수 없다.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는다.


한계령에 새벽 3시 20분 도착했다. 4시경에 등산로 출입구를 개방한다고 한다. 대부분 오색으로 가고 한계령에서 내린 사람은 나 포함 전부 5명이다. 개인 차를 몰고 온 사람도 서너 명 기다린다. 전부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 없는 사람들이다.


새벽 3시 50 분에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한계령은 눈이 꽁꽁 얼어붙어 등산로가 얼음과 눈 길이다.

조심조심 밟아야 하며 처음 가는 밤 중 산행이라면 조금이라도 사람 흔적이 없는 경우 원점까지 되돌아와 등산로를 찾아서 가야 한다.


겨울 산행은 아이젠이 필수다. 계곡길은 언제라도 얼음이 나타나고 아이젠을 하면 힘이 적게 들고 안전하다.


한계령휴게소 출발을 기다리는 사람은 전부 합해 7 명이고 그중 여자는 2명이고 나머지는 남자다. 나이 들어 보이는 여성이 조금 불안해 보였다.


육십대로 보이는 그 여성을 빼고는 전부 산행을 잘할 것 같은 복장과 체격이다.

불안해 보이는 그녀는 산행에서 불필요한 기다란 패딩을 입고 누군가 같이 갔으면 하는 듯한 모습이지만, 등산은 일행으로 같이 오지 않는 한 누구도 서로를 보살 필 수 없는 각자의 개인기이다.


개인의 체력과 능력에 차이가 많기 때문에 낯선 사람과 같이 가기가 쉽지 않다. 혹시 아름다운 여성이 직접 요청하면 고려해 볼 수는 있겠다.


나도 처음으로 한계령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내심 불안해서 산 꾼처럼 보이는 날렵하게 보이는 남자가 대청을 가고 다시 공룡을 탄다고 해서 그 뒤를 따라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등산로 입구 문이 열리고 잠시 배낭에서 아이젠을 찾는 잠깐 동안에, 그 이는 이미 쏜살같이 계단으로 올라가 버렸다.


따라오는 일은 순전히 따라가는 사람의 몫이다.

각자의 선택과 능력에 따라 각자의 길이 있는 것이다. 누가 누구를 의지할 수 있겠는가?


한계령 휴게소 등산로 입구 문은 3시 50분에 자동으로 열렸다. 휴게소도 닫혀 있기 때문에 밖에서 대기해야 한다. 다행히 화장실은 열려 있기 때문에 필요한 준비를 할 수 있다.


나는 등산 속도가 빠르지 않다. 천천히 자연과 나를 관찰하며 한 발 한 발 옮긴다.

한계령 휴게소.png


천주교 세례를 받았지만 코로나 핑계로 성당에 안 간 지 1년이 넘었다. 최근에는 불교 법문을 자주 듣고 오쇼 라즈니쉬의 ‘요가의 길’이라는 책을 반복해서 읽고 있다.


그래서 정신과 육체에 대한 내면의 문제를 자주 생각한다.


이번 산행에는 유튜브에서 들은 불교 법문 중에 나도 없고 세상도 없다는 화두를 들고 산행 내내 씨름해 볼 생각이다.


내가 버젓이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있고, 또 보이고 듣고 만지는 모든 것이 세상인데 내가 없고 세상이 없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하지만, 불교와 요가에서는 나와 세상은 실체가 없다고 본다.

실체 있는 것은 오직 존재 의식일 뿐이다.


기독교에서 보면 하느님이고 불교에서 보면 부처이고 유교나 도교에서 보면 하늘의 기운이다.


내가 나라고 하는 의식 중 근원적인 몇 개는 종교에서 말하는 신이고 존재의식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아의 발견과 발달로 인하여 자의식으로 착각할 수 있으니 나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 의식이 하늘이고 넓디넓은 대양인데 내가 착각하는 것이라고 의도적으로 무아의 개념과 연결한다.


나도 지금 이 화 두를 양자역학적으로, 아니면 불교의 색즉시공의 관점으로 어렴풋이 이해는 하지만 생생하게 붙잡을 정도로 온몸과 정신으로는 알지 못한다.


자의식이 없다면 내 나이는 빅뱅에서 출발하고 나는 지금 우주 전체와 소통하고 나는 죽어도 죽지 않고 세상은 완벽하게 항상 완성된 상태라는 것을 이해는 한다.


등산 내내 이 화두를 전두엽에 올려놓고 씨름하겠다고 결심했다.


출발 전 또 한 명의 중년 여성은 복장과 몸 형태가 날렵해서 산행을 잘할 것 같고 속도도 나와 비슷할 것 같고 또 처음 가는 서북능선에 대한 두려움으로 뒤따라 가겠다고 부탁해 볼 생각도 잠깐 스쳤다.


하지만, 대청을 가야 했고 젊었을 때도 여성에게 말 붙이는 것을 못했는데 이젠 더 이상 그럴 나이도 아니다.

함께 가는 산행도 좋지만 산행의 고독은 나의 선택이다. 용기가 없는 자의 변명인가!


휴게소 문에서 출발하는 계단은 각오를 단단히 하라는 듯, 경사가 거의 40도 정도로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처럼 심장이 덜컥해지며 허벅지에 강한 압박이 있다.


처음에 배낭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진다.


하지만 계속 산행하다 보면 오르막 길에서 허벅지 및 무릎에 가해지는 힘들고 아프기까지 한 감각과 그것을 감당하려고 지속적으로 산소를 공급하는 호흡기관과 심장의 헐떡거림으로 배낭을 멘지도 모른 상태가 된다.


어깨가 아닌 허벅지와 허리의 근력이 중요한 이유이다.


계단을 오르는 두 여성을 뒤로하고 어둠 속으로,

아니 헤드 랜턴 빛에 아른거리는 다양한 형태의 거친 돌계단을 비추는 빛 속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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