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말한다. “엄마도 오름 오를 수 있어!”

<홀로서기 2탄>

by 홍민희

“띠링,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오늘도 역시 운전 중 내비게이션 멘트가 흘러나왔다. 내비게이션이 옆좌석에 앉아 너는 왜 자꾸 경로를 이탈하냐고 인상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책에서 주인공이 내비게이션에서 자꾸 ‘이탈하였습니다’가 나오자 ‘이탈이 아니라, 일탈이야’라고 외치는 것처럼 나도 그리 우기고 싶지만, 집합 시간에 늦을까 심장이 두근거렸다.

승용차를 산 지 5년, 집과 직장과의 거리 걸어서 5분, 그래도 제주도는 대중교통이 불편하니 꼭 필요하다고 소유를 포기하지 않은 내 차는 아직 2만㎞도 달리지 못한 채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제주라는 좋은 곳에 살면서도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대학교 평생교육원에 ‘오름해설사’과정을 신청해 오름을 오른 지도 오늘로 6번째이다. 오늘의 목적지는 제주 오름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노꼬메 오름’이다.

“지금부터 숨결마저 신비로운 곳, 신들의 정원으로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봅시다.”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과 오름 동지인 수강생들과 함께 오름을 올랐다. 숨쉬기 운동만 자신 있었던 나에게 ‘오름 오르기’라는 도전은 어느덧 적응을 더 해 일상으로 즐거움으로 나아가고 있다.

선생님. 이 꽃 이름은 뭐예요?” “이 꽃은 각시붓꽃, 이건 꿩의바람꽃, 여기는 쇠별꽃...”

나태주 시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처럼 눈에 보이지 않던 들꽃은 점점 친구가, 연인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저녁을 다 먹고 시원한 캔 맥주 한 캔을 깠다. 고3 아들이 집에 돌아오기 3시간 전, 아들이 돌아와 엄마가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눈치 못 챌 시간이니 여유를 부려도 되겠다. 누가 뭐라고 하는 건 아니지만, 고3 수험생 엄마의 흔들리는 양심이랄까.

“오늘은 오름 가는 날이었던가?” 내 옆에 슬그머니 앉아, 안주 삼아 펼쳐 놓은 과자를 먹던 딸이 나에게 물었다. “응, 오늘은 노꼬메 오름을 갔다 왔어. 진짜 날씨가 좋았는데, 정상에 올라가니깐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바람이 엄청났어. 내려다보는데 삼나무랑 소나무들이 누가 정리해 놓은 것도 아닌데 일정한 키로 자라나 있는 거야. 왜 그런지 알아?”

딸이 내 눈을 쳐다보며 물었다. “왜?”

나는 맥주 한 모금을 쭉 들이키며 말했다. “한 나무가 욕심을 내서 혼자 튀어 크게 자라면 벼락을 맞기 쉽데. 웃기지? 그래서 자기들끼리 질서를 지키고 있는 거래” 오늘 오름을 헉헉거리며 오르면서도 선생님 말씀을 열심히 들은 보람이 있었다. 지금 내 딸이 핸드폰이 아닌 내 눈을 보며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말이다.

“오름 수업이 이제 8번 남았어. 이제 엄마도 오름 오를 수 있어. 두고 봐 한 번도 빠지지 않는 모범 학생이 될 테니깐.”


숨쉬기 운동만이 적성에 맞다고 변명만 하던 나는 14개의 오름을 오른 초보 오름해설사의 준비를 차근히 했다. 오름 열심히 올랐다고 받은 학업우수상을 아이들에게 자랑하면서 엄마도 할 수 있다는 걸 직접 보여준 나에게 스스로 머리를 쓰담쓰담하고 싶다!

keyword
이전 01화어느 날 아이가 말한다. “엄마, 학원만 데려다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