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우울하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예고 없이 찾아오는 감정의 파도

by 홍종민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손님


오늘도 그날이 왔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알 수 있었다. 몸이 평소보다 무겁고, 마음 한구석에 먹구름이 낀 것 같은 느낌.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맑은데, 내 마음의 하늘은 흐렸다.

26년째 같은 집, 같은 침대에서 일어나는 아침이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달에 한 번쯤 찾아오는 그 '특별한' 아침이었다.

아내는 이미 주방에서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 냄새. 평소라면 따뜻하고 정겨운 일상의 소리들이 오늘은 왠지 멀게 느껴졌다.

"일어났어? 밥 먹어."

아내의 목소리도 어딘가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응... 금방 갈게."

대답은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발가락을 바닥에 대고 차가운 감촉을 느꼈다. 이것이 현실이라는 증거였다.

거실로 나가니 아내가 밥상을 차려놓고 있었다. 김치, 멸치볶음, 계란말이, 그리고 된장찌개. 평소와 같은 메뉴인데 오늘은 입맛이 없었다.

"오늘 표정이 안 좋네.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좀 피곤해서."

늘 하는 대답이었다. 사실 나도 정확히 왜 이런지 설명할 수 없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찾아오는 이 우울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영화관에서의 당황스러운 경험

지난주 토요일 오후,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다며 아내가 끌고 나간 것이다.

"뭐 볼까?"

"그냥 아무거나. 재미있는 걸로."

결국 아내가 고른 건 가족 영화였다.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를 다룬 뻔한 스토리. 예고편만 봐도 결말이 예상되는 그런 영화였다.

극장은 한산했다. 토요일 오후인데도 관객이 열 명 남짓. 우리는 가운데쯤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곧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됐다.

처음 30분은 그럭저럭 봤다. 전형적인 갈등 구조, 예상 가능한 전개. 그런데 영화 중반부, 아버지가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이 나왔다.

"아들아, 미안하다. 내가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해서..."

순간, 뭔가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눈가가 화끈거렸다.

'이게 뭐야. 왜 이러지?'

당황스러웠다. 이런 뻔한 장면에 왜 감정이 올라오는 거지? 옆에서 아내가 팝콘을 먹는 소리만 바스락거렸다.

다음 장면은 더 했다. 아들이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를 찾아가는 장면. 말없이 아버지의 손을 잡는 아들. 그 순간, 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급하게 손등으로 닦았지만 계속 나왔다.

'미친 거 아냐? 이런 영화에 왜 우는 거야?'

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아내가 이상하게 여길까 봐 최대한 조용히 울었다. 다행히 극장이 어두워서 들키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졌을 때, 나는 애써 평정을 유지했다.

"어땠어?"

"그냥... 뭐 볼 만했네."

하지만 아내는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26년을 함께 산 사람을 어떻게 속이겠는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울었지?"

"...응."

"왜? 슬픈 영화도 아닌데."

"나도 몰라. 그냥... 나이 들어서 그런가."


40대 중반, 달라진 나


언제부터였을까. 이렇게 감정이 쉽게 올라오기 시작한 게.

예전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회사 다닐 때는 '이성적'이고 '냉정한' 사람이었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아서 가끔은 차갑다는 소리도 들었다.

남자는 울면 안 된다고 배웠다. 아버지도 그랬고, 할아버지도 그랬다. 눈물은 약함의 표시였고, 감정을 드러내는 건 프로가 아니었다.

그런데 마흔을 넘어서면서 뭔가 달라졌다. 처음엔 그저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는 더 뚜렷해졌다.

TV에서 동물 다큐멘터리를 봐도 눈물이 났다. 새끼를 지키려는 어미의 모습에, 혼자 남겨진 새끼의 모습에. 심지어 광고를 보면서도 울었다. 손자를 안고 웃는 할머니의 모습에, 아들의 결혼식에서 눈물 흘리는 아버지의 모습에.

처음엔 창피했다. 혼자 있을 때도 눈물이 나면 얼른 닦았다. 마치 누가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다. 이것도 나의 일부구나, 받아들이게 됐다. 나이가 들면서 감정의 댐이 낮아진 건지, 아니면 그동안 억눌렀던 것들이 이제야 나오는 건지.

아내는 오히려 좋아한다.

"당신이 감정 표현하는 거 보니까 좋아. 예전엔 무슨 생각하는지 모를 때가 많았거든."

그래, 나도 나이를 먹고 있구나. 그리고 그것도 나쁘지 않다.


퇴직 후 찾아온 변화


작년에 퇴직했다.

수십년 가까이 다닌 직장을 떠나는 건 생각보다 큰 일이었다. 마지막 출근하던 날 아침,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났지만 뭔가 달랐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모든 것이 특별해 보였다.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길, 매일 사 먹던 김밥집, 늘 앉던 지하철 칸. 몇십년 동안 반복했던 일상이 오늘로 끝난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퇴직식은 간단했다. 코로나 이후로 회사 분위기도 많이 바뀌어서 예전처럼 큰 행사는 하지 않았다. 부서 사람들이 모여 작은 파티를 해줬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

다들 그렇게 말했다. 나도 웃으며 인사했다.

"여러분도 건강하시고, 회사 일 잘 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복잡했다. 쉰다는 게 뭔지, 어떻게 쉬는 건지 사실 잘 몰랐다. 수십년 동안 일만 했는데.

퇴직 후 첫 월요일 아침. 습관적으로 6시에 눈이 떠졌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아내는 아침을 차려주며 물었다.

"오늘 뭐 할 거야?"

"글쎄... 생각해봐야지."

하지만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집안일을 돕겠다고 했더니 아내가 손사래를 쳤다.

"내가 하던 대로 할게. 당신은 쉬어."

그래서 쉬었다. 아니, 쉬려고 했다. 하지만 쉰다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TV를 봐도 재미없고, 책을 읽어도 집중이 안 됐다.


우울감의 주기가 짧아지다


퇴직 전에는 정말 한 달에 한 번 정도 우울감이 찾아왔다. 그것도 하루이틀이면 지나갔다. 일이 바빠서 우울할 시간도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퇴직 후에는 달라졌다. 2-3주에 한 번, 때로는 일주일에 한 번씩 그런 날이 찾아왔다. 아침에 일어나면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날. 살아있는 게 피곤하게 느껴지는 날.

특히 예전 동료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더 그랬다.

"김 부장이 이번에 승진했대."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더라."

그런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복잡해졌다. 부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때로는 배신감 같은 것도 느껴졌다. 내가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는 사실이 서운했다.

어느 날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당신, 요즘 많이 힘들어 보여."

"아니야, 괜찮아."

"괜찮은 사람이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있어?"

맞는 말이었다. 나는 정말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있었다. 천장을 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가끔 TV를 켜기도 했지만 뭘 보는지도 모르겠었다.

"병원에 가볼까?"

"무슨 병원?"

"그냥... 상담이라도 받아보면 어때?"

사실 나도 이미 심리상담사 자격증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 마음은 돌보지 못하고 있었다. 남의 마음은 잘 보면서 내 마음은 보지 못하는 아이러니.

떡볶이와의 재회

지난주 목요일이었다. 또 그런 날이었다. 아침부터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고, 점심때가 되어도 입맛이 없었다.

"뭐 먹을래?"

아내가 물었지만 대답할 기운도 없었다.

"그냥... 아무거나."

"아무거나가 뭐야. 나가서 뭐라도 먹자."

결국 아내에게 이끌려 밖으로 나갔다. 집 근처 시장 골목을 걷다가 떡볶이 냄새가 났다. 고추장과 떡이 어우러진 그 특유의 냄새.

"떡볶이 먹을래?"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 한구석의 작은 분식집. 빨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떡볶이를 기다렸다. 주인 아주머니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떡볶이를 볶고 있었다.

"여기 나왔어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볶이가 앞에 놓였다. 빨간 양념에 푹 절여진 떡, 적당히 익은 어묵, 그리고 위에 뿌려진 깨.

첫 입을 넣는 순간, 뭔가 달라졌다.

매운맛이 혀를 자극하면서 동시에 달콤한 맛이 퍼졌다. 쫄깃한 떡의 식감, 부드러운 어묵. 그리고 무엇보다 그 열기.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코끝도 간질거렸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한 입, 또 한 입.

"맵지 않아?"

아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매워. 근데... 괜찮아."

정말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매운맛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동시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떡볶이를 다 먹고 나니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이마, 목덜미, 등. 하지만 기분은 한결 가벼워졌다. 아침의 그 무거운 기분이 땀과 함께 빠져나간 것 같았다.


매운맛의 발견


그날 이후로 나는 우울할 때마다 매운 음식을 찾게 되었다.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패턴이 반복되면서 확신하게 됐다. 매운 음식을 먹고 땀을 흘리면 기분이 나아진다는 것을.

어제도 그랬다. 아침부터 기분이 안 좋았는데, 점심에 김치찌개를 먹고 나니 한결 나아졌다. 빨갛게 끓는 김치찌개를 보며 숟가락을 댔다. 첫 모금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후~ 맵다."

하지만 계속 먹었다. 뜨거운 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고, 매운맛이 온몸으로 퍼졌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신기한 건 이 과정이 묘하게 위로가 된다는 것이다. 마치 누군가 등을 토닥여주는 것 같은 느낌.

'그래, 힘들구나. 울어도 돼.'

매운맛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눈물과 땀의 관계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울고 싶을 때와 땀을 흘리고 싶을 때의 느낌이 비슷하다는 것을.

둘 다 뭔가를 밖으로 내보내고 싶은 충동이다. 마음속에 가득 찬 것들을 비우고 싶은 욕구. 눈물로 못 흘리는 것들을 땀으로 흘리는 건 아닐까?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배운 게 있다. 감정은 어떤 식으로든 표현되어야 한다고. 억압된 감정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어쩌면 나는 눈물 대신 땀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40대 중반의 남자가 수시로 우는 것보다는, 매운 음식을 먹고 땀을 흘리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이니까. 사회적으로도, 나 자신에게도.


운동의 재발견


매운 음식의 효과를 발견한 후, 운동도 비슷한 효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퇴직 후 시간이 많아지면서 헬스장에 등록했다. 처음엔 그저 건강 관리 차원이었다. 의사가 운동하라고 해서, 아내가 권해서.

하지만 운동을 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효과를 발견했다.

러닝머신 위에서 30분을 뛰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빠르게 뛴다. 힘들다. 정말 힘들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의 고통만 존재한다.

그리고 운동을 끝내고 샤워를 하고 나면, 놀랍도록 개운하다. 아침의 그 무거운 기분이 사라지고, 대신 상쾌함이 찾아온다.

어제도 그랬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 오늘은 그런 날이구나' 싶었다. 평소 같으면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있었을 텐데, 대신 운동복을 입었다.

헬스장까지 걸어가는 것도 일종의 고행이었다. 발걸음이 무겁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일단 헬스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직원의 밝은 인사가 부담스러웠지만 억지로 웃으며 답했다.

"네, 안녕하세요."

탈의실에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운동 기구 앞에 섰다. 오늘은 가슴 운동하는 날. 벤치프레스부터 시작했다.

무게를 들어 올릴 때마다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 고통이 오히려 위로가 됐다.

'그래, 이렇게라도 살아있음을 느끼는 거야.'


나만의 처방전


이제 나는 우울감이 찾아올 때를 대비한 나만의 처방전을 가지고 있다.

매운 음식 먹기


떡볶이, 김치찌개, 마라탕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의 매운맛


운동하기


최소 30분 이상


온몸이 땀으로 젖을 정도로


뜨거운 물로 샤워하기


사우나도 좋음


땀을 충분히 흘린 후 시원한 물로 마무리


단순해 보이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어도, 적어도 하루를 견딜 수 있게 해준다.

며칠 전, 정신분석 대학원 수업에서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울은 상실에 대한 반응입니다. 무언가를 잃었을 때, 그것이 사람이든 지위든 꿈이든, 우리는 우울해집니다."

퇴직 후 내가 잃은 것들을 생각해봤다. 직장인이라는 정체성, 동료들과의 관계, 규칙적인 일상, 성취감...

그래, 나는 많은 것을 잃었다. 그리고 그 상실을 애도하는 중이다. 매운 음식과 운동은 그 애도의 과정을 돕는 도구인 셈이다.


아내와의 대화


어젯밤, 저녁을 먹고 나서 아내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당신 많이 나아진 것 같아."

"그래?"

"응. 예전엔 우울할 때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잖아. 요즘은 뭐라도 하려고 하니까."

"매운 거 먹고 운동하는 게 도움이 되더라고."

아내가 웃었다.

"그래서 요즘 떡볶이를 자주 사 오는구나."

"눈치챘어?"

"26년을 같이 살았는데 그것도 모르겠어?"

우리는 함께 웃었다.

"근데 왜 매운 게 도움이 될까?"

아내의 질문에 나는 잠시 생각했다.

"글쎄... 눈물을 땀으로 바꾸는 건가?"

"무슨 소리야 그게."

"울고 싶은데 울 수 없으니까, 대신 땀을 흘리는 거지. 매운 음식이나 운동으로."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네. 당신 원래 잘 안 우는 사람이니까."

"요즘은 영화 보면서도 울어."

"그건 다른 거지. 진짜 자기 감정으로 우는 거랑은."

아내의 말이 맞았다. 영화를 보며 흘리는 눈물과 내 삶의 슬픔으로 흘리는 눈물은 다르다. 전자는 안전하지만 후자는 위험하다.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우울의 리듬


시간이 지나면서 우울감의 패턴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

보통 이런 식이다:

1일차: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뭔가 다르다. 몸이 무겁고 마음이 가라앉는다. 하루 종일 무기력하다.

2일차: 우울감이 정점에 달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사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3일차: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한다. 여전히 우울하지만 견딜 만하다.

4일차: 거의 정상으로 돌아온다.

이 사이클을 알게 된 후로는 덜 두렵다.

'아, 또 시작이구나. 3-4일만 버티면 돼.'

그리고 이 기간 동안 나만의 대처법을 사용한다. 매운 음식, 운동, 뜨거운 샤워. 때로는 세 가지를 다 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상담실을 운영하면서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50대 남성 K씨도 그중 하나였다.

"선생님, 저는 왜 자꾸 슬퍼질까요?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K씨는 대기업 임원으로 성공한 삶을 살았다. 가족도 화목하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러셨나요?"

"한 2-3년 됐나? 처음엔 그냥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K씨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중년의 위기, 정체성의 혼란, 그리고 상실감.

"혹시 운동 좋아하세요?"

"아뇨, 별로..."

"매운 음식은요?"

"그것도 잘 못 먹어요."

나는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한 번 시도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우울할 때 매운 음식을 먹거나 운동을 해서 땀을 흘려보세요."

K씨는 반신반의했지만 시도해보기로 했다.

한 달 후, K씨가 다시 찾아왔을 때 표정이 한결 밝아져 있었다.

"선생님, 정말 신기해요. 매운 떡볶이를 먹고 나니 기분이 나아지더라고요."

"어떤 느낌이었나요?"

"그냥... 후련했어요. 뭔가 빠져나가는 느낌?"


우울과 함께 살아가기


이제 나는 우울이 완전히 사라지길 기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날씨 같은 것이다.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도 있다. 우울은 내 삶의 일부이고, 나는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중요한 것은 우울에 압도되지 않는 것이다. 우울이 찾아와도 "아, 또 왔구나" 하고 인사하듯 맞이한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한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 느낌이 있었다. 몸이 무겁고 마음이 흐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것도 지나간다는 것을.

점심때 아내와 함께 시장에 갔다. 떡볶이 집 앞을 지나가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떡볶이 먹을까?"

아내가 먼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빨간 떡볶이를 앞에 두고 첫 입을 넣었다. 역시나 맵고 뜨거웠다.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오늘도 그런 날이야?"

아내가 조용히 물었다.

"응."

"괜찮아. 같이 있잖아."

그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대신 매운 떡볶이를 한 입 더 먹었다.

땀이 흘렀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이 드는 것에 대하여


지천명이 코앞이다.

거울을 보면 흰머리가 부쩍 늘었고, 주름도 깊어졌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다. 계단을 오르면 숨이 차고, 밤늦게까지 깨어 있기도 힘들다.

하지만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얻은 것도 있다. 자신을 이해하는 능력, 감정을 받아들이는 여유, 그리고 작은 것에서 기쁨을 찾는 지혜.

예전에는 우울이 찾아오면 당황하고 부정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하며 원망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우울도 내 삶의 일부라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나만의 방법으로 대처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에게는 맞는 방법이다.


떡볶이 예찬


떡볶이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다.

나에게 떡볶이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위로이고, 치유이고, 때로는 친구다.

시장 떡볶이가 최고다. 프랜차이즈 떡볶이도 나쁘지 않지만, 시장 구석의 작은 분식집 떡볶이가 진짜다. 주인 아주머니가 대충대충 만드는 것 같지만 절묘한 맛이 있다.

떡의 쫄깃함, 양념의 매콤달콤함, 그리고 무엇보다 그 온도. 뜨거운 떡볶이를 호호 불며 먹을 때의 그 느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가끔은 떡볶이에 튀김을 곁들인다. 바삭한 튀김을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으면 또 다른 맛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 국물에 김밥을 찍어 먹는 것도 일품이다.

이런 소소한 즐거움이 삶을 견디게 한다.


마지막으로


우울하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

이 문장이 내 삶을 잘 표현하는 것 같다. 살아가는 게 때로는 무겁고 힘들지만, 그래도 작은 즐거움은 있다. 매운 떡볶이의 맛처럼, 고통 속에서도 달콤함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우울과 함께, 하지만 굴복하지 않고.

내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또 그런 기분이 든다면, 나는 알고 있다. 점심때 떡볶이를 먹으러 가면 된다는 것을. 또는 운동복을 입고 헬스장으로 가면 된다는 것을.

그리고 땀을 흘리고 나면,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는 것을.

이것이 지천명을 지난 한 남자의 생존법이다.

대단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지만, 나에게는 유효한 방법이다.

우울은 여전히 찾아온다. 하지만 이제는 두렵지 않다.

떡볶이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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