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와 프로이트-프롤로그

- 50대가 찾은 무의식의 비밀

by 홍종민

무의식의 문 앞에서


새벽 4시, 불면의 시간

또 새벽 4시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안다. 창밖의 어스름한 빛, 멀리서 들려오는 첫 새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이 독특한 정적. 세상이 잠든 시간과 깨어나는 시간 사이, 그 경계에서 나는 또다시 눈을 뜬다.

옆에서 아내가 평화롭게 잠들어 있다. 26년을 함께한 아내. 그녀의 고른 숨소리가 어둠 속에서 리듬을 만든다. 나는 조심스럽게 이불을 걷고 일어난다. 발끝으로 걸어 거실로 나온다. 차가운 물 한 잔을 마시고 소파에 앉는다.

왜 매일 이 시간에 깨는 걸까?

처음엔 나이 탓이라고 생각했다. 50대 중반, 호르몬이 변하는 시기라고. 하지만 정신분석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 새벽의 각성에는 더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퇴직, 그리고 새로운 시작

작년 봄, 드디어 회사를 그만뒀다.

수십년 가까이 다닌 직장. 마지막 출근하던 날 아침,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났지만 뭔가 달랐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모든 것이 특별해 보였다.

"이제 뭐 할 거야?"

동료들이 물었다. 나는 웃으며 답했다. "쉬면서 생각해보려고." 하지만 마음속에는 이미 계획이 있었다. 정신분석 대학원에 가는 것. 50대 중반에 학생이 되는 것.

퇴직 후 첫 월요일 아침. 습관적으로 6시에 눈이 떠졌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아내는 아침을 차려주며 물었다.

"오늘 뭐 할 거야?"

"대학원 원서 쓰러 가려고."

아내의 눈이 반짝였다. "드디어 하는구나. 늘 하고 싶다고 했잖아."

정신분석 대학원의 신입생

작년 가을, 정신분석 대학원에 입학했다.

50대 중반의 신입생. 강의실에 들어섰을 때 다들 나를 교수님으로 착각했다. "학생입니다"라고 하자 젊은 동기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첫 수업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었다. 교수님이 물었다. "여러분은 왜 정신분석을 공부하려고 하십니까?"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말했다.

"저는... 제가 왜 새벽 4시에 깨는지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강의실에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상담실에서 만난 거울들

대학원 공부와 병행하며 작은 상담실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미 몇 년 전에 심리상담사 자격증은 취득해 놓았다. 회사 다니면서 주말마다 공부했던 시절. 그때는 언젠가 이 일을 하게 될 거라는 막연한 꿈이었는데, 이제 현실이 되었다.

상담실 문을 여는 첫날, 손이 떨렸다. '내가 누구를 상담한다고?' 하지만 내담자들을 만나면서 깨달았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 내 이야기가 있었고, 내 상처 속에 그들의 상처가 있었다.

한 30대 여성은 어머니와의 관계로 고통받고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 어머니를 떠올렸다. 늘 교회에만 있던 어머니. 나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정작 내 곁에는 없었던.

상담사가 된다는 것은 치유자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함께 상처받은 자가 되는 것이었다.

수박밭에서 모스크바까지

얼마 전 충격적인 기사를 읽었다.

충북 영동의 수박 농부가 52세에 러시아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이야기. 고등학교 중퇴, 22세부터 20년간 수박 농사만 짓던 사람이 40세에 러시아로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기사를 읽으며 눈물이 났다.

부끄러움의 눈물이었다. 나는 50대에 대학원에 입학한 것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동시에 희망의 눈물이기도 했다. 인간의 가능성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그는 말했다. "씨를 뿌리면 언젠가는 열매를 맺습니다."

농부의 철학이 물리학 강단에서도 통한다는 것. 이것이 내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것.

할머니의 슬픔, 내 눈에 고이다

정신분석을 공부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세대간 전이 현상이었다.

우리는 단순히 부모의 유전자만 물려받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트라우마, 해결되지 않은 감정, 심지어 비밀까지도 물려받는다.

할머니는 한국전쟁 때 남편을 잃었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과부가 되어 세 아이를 키웠다. 그 슬픔과 한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사셨다.

어머니는 늘 불안했다. 이유 없이 불안해하고, 작은 일에도 걱정이 많았다. 이제야 안다. 그것이 할머니의 불안을 물려받은 것이라는 걸.

그리고 나도 불안하다. 특히 새벽 4시에 깨어날 때. 어쩌면 이것도 할머니의 슬픔, 어머니의 불안이 내게까지 전해진 것일지도.

무의식을 읽는 시간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도 새벽 4시였다.

어느 날 새벽, 또 잠에서 깨어 거실에 앉아 있는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무의식이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깨운 것이라면,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노트북을 열고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었다. 상담실에서 만난 사람들, 대학원에서 배운 이론들, 어린 시절의 기억들...

그러다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반복, 전이, 투사, 억압... 정신분석의 개념들이 내 삶과 만나는 지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이 책을 읽는 당신에게

당신도 새벽에 깨어난 적이 있을 것이다.

이유 없이 우울한 날이 있었을 것이고, 설명할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린 적이 있을 것이다.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왜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는지 의아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의문들에 대한 완벽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 나도 아직 찾아가는 중이니까. 하지만 함께 탐구할 수는 있다. 무의식이라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정신분석이 밝혀낸 인간 정신의 비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경험하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그 무언가에 대해.

새벽 4시, 무의식의 시간에 쓰인 이 이야기들이 당신에게도 의미가 있기를 바란다.

당신의 무의식이 당신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는 계기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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