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깨달음
김병수의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마흔은 없다"중에서
책장을 넘기다 멈춰선 문장이 있었다. "누구나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정신과 의사도 우울증에 걸린다." 이 단순하면서도 충격적인 진실 앞에서 나는 잠시 책을 덮고 생각에 잠겼다.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 하늘이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부르는 이유를 이제야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 같았다.
감기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듯이, 우울증도 그렇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편견이었다. 우울증은 특별히 나약한 사람들만 걸리는 병이라고, 혹은 정신력이 강하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막연히 생각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전문의 중 자살로 사망하는 빈도가 높은 1위, 2위가 정신과 의사"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하며, 심지어 유명한 정신과 의사 스캇 펙도 자신과 아내의 우울증 경험을 고백했다고 말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마음의 병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조차 그 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주는 무게감이 컸다.
저자는 이어서 "목사님, 신부님 그리고 스님처럼 성직자라 해서 우울증이 빗겨가란 법도 없다"고 덧붙인다. 영적인 수련을 하고, 남들을 위로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마저도 마음의 감기를 피할 수 없다는 이야기. 이것은 우울증이 개인의 의지나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직면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경험임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증상 너머를 보다
책을 읽으며 문득 대학원에서 접했던 라캉의 이론이 떠올랐다. 라캉은 우울증을 '증상'이 아닌 '증상 현상'으로 보았다. 즉, 우울증 자체가 질병이 아니라, 그것은 더 깊은 무언가를 가리키는 신호라는 것이다. 마치 열이 나는 것 자체가 병이 아니라, 몸속 어딘가에 염증이나 감염이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인 것처럼.
저자가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한 것과 라캉의 관점 사이에는 흥미로운 긴장이 있다. 한편으로는 우울증을 일상적이고 치료 가능한 것으로 보려는 시도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증상 너머의 근원적인 결핍이나 욕망의 문제를 들여다보려는 시도가 있다.
이 두 관점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같은 현상을 다른 층위에서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의학적 관점이 증상의 완화와 일상으로의 복귀를 목표로 한다면, 정신분석적 관점은 그 증상이 말하고자 하는 무의식의 메시지를 해독하려 한다.
일상 속 작은 균열들
책을 읽어나가며 특히 와닿았던 부분은 우울증이 꼭 큰 사건 때문만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의 스트레스가 지치게 만들고 그것이 한계점을 넘어갈 때" 찾아온다는 대목이었다. 저자가 묘사하는 현대인의 일상이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졌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면 지치고 힘들어서 소파에 누워 TV만 보다가 졸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자려 하면 회사 일이 머릿속에 가득 차서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잠을 깊이 자지 못한 채 회사에 나가고 다시 퇴근해서 TV 보다 잠들고."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지난날 내 모습을 떠올렸다. 퇴근 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소파에 누워 의미 없이 휴대폰만 들여다보던 시간들. 새벽 2시가 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었지만, 내일 있을 회의가 걱정되어 쉽게 잠들지 못했던 밤.
라캉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비활동성의 덫"은 단순히 피로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주체가 자신의 고유한 욕망과 단절되었음을 보여주는 현상일 수 있다. "회사 일이 머릿속에 가득 차서"라는 표현은 단순한 스트레스가 아니라, 타자의 욕망(회사의 요구, 사회적 기대)에 포획되어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린 주체의 모습을 드러낸다.
저자는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 "마음에 곰팡이가 피기 좋은 상황을 스스로 만든 것이다"라고 경고한다. 마음에 곰팡이가 핀다는 표현이 섬뜩하면서도 적확하게 느껴졌다. 습하고 어두운 곳에서 곰팡이가 자라듯, 활력을 잃고 무기력해진 일상 속에서 우울이 자란다는 것.
악순환의 고리와 상실의 문제
책은 이어서 가족 관계에서의 갈등으로 이야기를 확장한다. "휴일인데도 왜 집에서 잠만 자냐는 아내의 잔소리가 부부싸움으로 이어지고, 혹여 야외에서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더라도 자녀들의 못마땅한 모습만 눈에 들어온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얼마 전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요즘은 애들이랑 놀아주는 것도 일처럼 느껴져. 즐거워야 할 시간인데 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어." 그때는 그저 육아가 힘들구나 싶었는데, 이제 보니 그것이 우울의 신호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라캉은 우울증을 종종 '애도되지 못한 상실'과 연결시킨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상실. 현대인의 우울은 어쩌면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막연한 감각,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가족과 함께 있어도 느껴지는 공허함, 성공해도 채워지지 않는 결핍감 - 이것들은 모두 상징적 차원에서 해결될 수 없는 근원적 상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저자가 지적하는 잘못된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더 좋지 않은 것은, 이런 정신적 스트레스를 술이나 도박, 섹스 등으로 풀려 하는 경우이다. 술을 마시면 일시적으로는 스트레스가 풀리는 듯하다. 하지만 술이 깬 다음, 더 우울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맥락에서 "술로 스트레스를 풀려 하는" 시도는 단순히 잘못된 대처법이 아니라, 상징적 질서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실재의 고통을 일시적으로나마 망각하려는 필사적인 시도일 수 있다. 술이 주는 일시적 해방감은 잠시나마 타자의 시선과 요구로부터 벗어나는 환상을 제공하지만, 그것은 결국 더 깊은 공허로 이어진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스트레스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스트레스를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사회적 지위나 돈에 상관없이 스트레스는 우리 곁을 항상 따라다니는 그림자와 같다"는 문장은 스트레스를 완전히 제거하려는 헛된 노력보다는,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면 모든 게 쉬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대학에 가면, 취직하면, 결혼하면, 승진하면... 그때마다 스트레스가 사라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인생의 매 단계마다 새로운 형태의 스트레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자의 말대로 "직장생활하지 않고 사업을 하거나 돈이 많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는 라캉이 말하는 '욕망의 환유적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다음 대상이 우리를 완전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지만, 막상 그것을 얻고 나면 또 다른 결핍을 발견한다. 스트레스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은, 어쩌면 인간 존재 자체에 내재된 근원적 불안과 결핍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중요한 지적을 한다. "우리의 행동과 대처 방식이 스트레스를 우울증으로 만들기도 하고, 단순히 스쳐지나가는 것에 그치게 만든다." 이는 우리가 완전히 무력한 존재가 아니라, 어느 정도는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로 읽혔다.
새옹지마의 아이러니
"살다보면 누구나 '일이 안 되려고 이러나 보다' 하며 한탄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 하는데, 왜 내게는 좋지 않은 일만 겹치는지 모르겠다며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작년 이맘때를 떠올렸다. 퇴직,부모님의 건강 악화까지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 같았던 시기. 그때 나는 정말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라캉적 관점에서 보면, "좋지 않은 일들이 한꺼번에 찾아올 때"의 절망감은 단순한 불운의 연속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의존하고 있던 상징적 질서, 즉 '이렇게 하면 행복할 것이다', '노력하면 보상받는다'는 약속의 체계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이 순간 우리는 세계의 무의미함, 실재의 공허와 대면하게 된다.
저자는 "이때 자신을 추스르고 일어날 힘도 갖고 있지 않고, 누군가의 도움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우울증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다행히 나는 그때 좋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만약 혼자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아찔해진다.
의지의 한계를 인정하기
책에서 특히 균형 잡힌 시각이 돋보였던 부분은 이것이다. "내가 잘 대처할 수 있다고 믿더라도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몰려올 때는 의지와 상관없이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유독 정신력과 의지를 강조한다. '마음 먹기에 달렸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된다'는 식의 조언들. 하지만 이런 말들이 때로는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짐이 될 수 있다. '내가 의지가 약해서', '내가 긍정적이지 못해서'라는 자책감을 더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울증을 개인의 도덕적 실패로 보는 관점의 문제를 드러낸다. 라캉이 우울증을 증상 현상으로 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울증은 의지의 부족이 아니라, 주체가 처한 구조적 상황의 표현이다. 그것은 비난받아야 할 약점이 아니라, 귀 기울여야 할 신호다.
저자가 "결국 우리 모두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울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마치 감기 걸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것처럼 말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이는 우울증을 개인의 실패가 아닌, 인간 조건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한다.
자기 점검과 말하기의 치유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우울증 자가 검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의학기술이 최첨단을 달리고 있지만 우울증은 정신건강 전문의와의 1:1 면담을 통해 오랜 시간 상담을 거쳐야 진단내릴 수 있다."
이 말은 우울증이 단순히 혈액검사나 엑스레이로 확인할 수 있는 병이 아니라, 복잡하고 섬세한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일임을 상기시킨다.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말하기 치료'와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라캉은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했다. 우리의 증상은 말해지지 못한 것들의 다른 표현이다. 그래서 "의사와 상담을 하기 전에 스스로의 심리 상태를 점검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조언은 단순히 증상을 체크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과 대화를 시작하는 첫걸음이다.
저자는 자가 점검의 목적을 이렇게 설명한다. "상담받을 정도의 문제가 있는지, 아니면 필요하게 걱정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확인할 수 있으며, 우울증을 예방하고 관리하기 위한 동기를 제공해준다."
이것은 단순히 진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상태에 관심을 갖고 돌보는 과정이다. 우리가 몸의 건강을 위해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듯이, 마음의 건강도 정기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점검은 단순한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이야기를 발견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사회적 편견과 마주하기
책을 읽으면서 내내 떠올랐던 것은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에 대한 편견이었다. 몇 년 전, 한 동료가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사무실의 분위기가 어색해졌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나약해"라고 수군거렸고, 누군가는 "회사 생활이 힘들긴 하지"라며 애써 화제를 돌렸다.
그때 그 동료가 얼마나 용기를 내어 그 이야기를 꺼냈을까, 이제야 생각해본다. 저자가 말하는 "마음의 감기"라는 표현이 더 널리 받아들여진다면,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좀 더 편하게 도움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동시에 라캉의 관점도 중요하다. 우울증을 단순히 '감기'로만 보면, 그것이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를 놓칠 수 있다. 우울증은 때로 우리 삶의 방향을 재고하게 만드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무의식의 외침일 수 있다.
두 관점의 대화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의학적 관점과 정신분석적 관점이 반드시 대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자가 강조하는 적절한 치료와 돌봄은 분명 필요하다. 동시에 라캉이 말하는 증상 너머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쩌면 우울증을 대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이 두 관점을 통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증상의 고통을 경감시키면서도, 그것이 가리키는 더 깊은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것. 약물치료나 인지행동치료로 일상을 회복하면서도, 자신의 욕망과 상실에 대해 성찰하는 것.
연대의 가능성
"우울한 감정은 누구나 느낀다. 현실에서 스트레스는 반드시 존재하고 누구나 고통스러운 일들에 직면한다." 저자의 이 말은 처음에는 절망적으로 들렸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우리 모두가 같은 인간적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완전함을 추구하지만 결코 완전해질 수 없는 존재라는 것. 그렇기에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연대의 시작점이 아닐까.
라캉은 "사랑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고 결핍된 존재이지만, 바로 그렇기에 서로에게 위로와 지지를 줄 수 있다. 완벽한 해답을 갖지 못했기에 오히려 진정한 공감이 가능하다.
희망을 품으며
책을 덮으며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우울증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마음의 감기'라면, 그것은 치료할 수 있고 회복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것이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증상 현상'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통해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기회를 얻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번만 잘 버티자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고통이 찾아오는 순간들을 우리는 경험하며 살고 있다"는 저자의 말이 이제는 다르게 들린다. 고통이 계속 찾아온다는 절망이 아니라, 그럼에도 우리가 계속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씩 자신을 알아가고, 타인과 연결되며, 삶의 의미를 만들어간다.
이 책은 나에게 우울증을 두려워하지 말되, 가볍게 여기지도 말라는 균형 잡힌 시각을 선물해주었다. 더불어 라캉의 관점을 떠올리게 하며, 증상 너머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의 중요성도 생각하게 했다.
창밖의 겨울 하늘은 여전히 흐리지만, 그 구름 사이로 가끔씩 비치는 햇살이 있다. 우울이라는 구름이 우리 마음을 덮을 때도 있겠지만, 그것은 단순히 제거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는 신호일 수도 있다. 그 신호에 귀 기울이면서도, 일상의 기쁨을 놓치지 않는 것. 이것이 우울과 함께, 그러나 우울에 압도되지 않고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마음의 감기는 누구나 걸릴 수 있다. 그것은 때로 우리를 멈추게 하고,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그 과정이 고통스럽더라도, 그것을 통해 우리는 더 진정한 자신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이 책을 읽으며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다.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내 마음의 온도를 재어본다. 오늘은 어떤가? 조금 춥긴 하지만, 견딜 만하다. 그리고 이 추위가 단순히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내게 무언가를 알려주려는 신호일 수도 있음을 안다. 필요하다면 도움을 구할 수 있고, 동시에 이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