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일어나려던 그녀는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며칠 전 받아 둔 '재취업 여성 직무과정' 안내 전단지였다.
집에서는 펼쳐보지도 못했던 그것을 오늘, 커피잔 아래 펼쳐 놓았다. 지윤은 천천히 강의 일정과 신청 방법을 훑어봤다.
‘재취업 여성 직무과정 – 경단녀를 위한 맞춤형 실무 교육’
익숙한 듯 낯선 단어들이었다. ‘경단녀’라는 말은 뉴스에서, 커뮤니티에서, 다른 누군가를 설명할 때 쓰는 줄만 알았는데 이제는 아주 선명하게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커피는 미지근해졌고, 전단지에서는 종이 냄새가 났다. 얼마 전, 광장동 행정복지센터 앞에서 우연히 받은 전단지였다.
처음엔 들춰보지도 않고 가방 안에 구겨 넣었는데, 이상하게 ‘더 슬로우’ 커피숍에만 오면 그 종이를 펼쳐 보게 됐다.
창밖으로 햇살이 은은하게 퍼졌고, 지윤은 종이 한 귀퉁이를 손톱으로 천천히 접었다 폈다.
“지금 신청하면… 다음 달부터 수업이네.”
그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았다.
지윤은 불현듯 그녀의 과거를 떠올렸다.
대학 졸업 후 취업한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던 사회 초년생 시절. 몇 년 후, 결혼과 출산이 이어졌다. 육아휴직 이후 회사에선 돌아오라 해놓고도, 막상 복직하고 나니 불편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아픈 아이 때문에 조퇴하면 눈치가 보였고, 정시 퇴근을 하면 동료들의 시선이 따갑게 따라붙었다.
처음에는 애써 무시하기도 하고, 때로는 목소리를 높여 자신의 입장을 항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연스럽게 밀려났고, 사직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마주했다.
회사 밖으로 나오는 순간, 세상은 냉정했다. 시간은 많았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도 커서 학교에 들어가고 나니, 낮에 커피숍을 서성이는 것 말고는, 별로 할 일이 없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지윤은 문득 도윤이 내려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식긴 했지만 쓰지도 않고 달지도 않은, 그저 담백한 그 맛이 오늘따라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다.
‘다시 뭔가를 시작해도 괜찮을까…’
불현듯, 전단지에 적힌 ‘나이 제한 없음’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 말 한 줄이 그렇게 다정하게 느껴질 줄 몰랐다.
창밖으로 고등학생 무리가 웃으며 지나갔다. 어쩌면, 그녀가 놓쳤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하지만 그 속에만 머물 순 없다는 것도 안다.
서지윤은 다시 전단지를 펴서 읽었다. 손끝이 살짝 떨렸지만, 눈빛은 이전보다 조금 더 또렷해졌다. ‘도전’이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부담스럽지만, 오늘만큼은 이상하게도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조용한 커피숍, 말없이 흘러나오는 음악, 그리고 이곳만의 ‘느림’이, 그녀를 조심스럽게 한 걸음 밀어주는 듯했다.
“한 번 해볼까…”
그녀는 작게 속삭이며, 전단지를 접어 가방 속 깊은 곳에 다시 넣었다. 이제는 꺼내기 위해 넣은 것이었다.
도윤은 카운터 너머에서 그 장면을 스쳐 보았다.
그 손님은 가끔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오지만, 오늘은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커피잔을 닦으며 마음속으로 짧게 메모했다.
“결심은 언제나 조용히 시작된다.”
그날, 커피숍 안에 있던 사람 중 아무도 모르게 한 사람의 내일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