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온도_1

by 슬로우

오전 11시.


서지윤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2층 현관문을 열었다. 그녀가 기다리던 택배는 오늘도 없었다.


“설마 또 엉뚱한 데로 갔나…”


그 순간 그녀의 휴대폰에 알림이 하나 도착했다. 배송 완료 안내 문자였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배송 알림을 확인했다. ‘배송 완료’ 문구 아래엔 기사가 찍은 사진 한 장이 첨부돼 있었다. 그런데, 사진 속 장면은 우리집이 아니었다.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사진 속엔 낯선 가게 입구의 흰색 바탕 간판 위에 작게 가게명이 적혀 있었다.


‘더 슬로우’


광장동 골목 어귀에 있는 조용한 커피숍이었다. 평소에도 몇 번 스쳐 지나간 적은 있었지만 문을 열어본 적은 없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모자를 눌러쓰고 집을 나섰다.


"이젠 택배 하나 찾으러 커피숍까지 가야 하나…"


커피숍 문을 열자, 작은 종이 ‘딸랑’ 울렸다. 실내엔 은은한 커피 향과 느린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카운터 너머로 조용히 커피를 내리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지윤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혹시… 제 택배가 잘못 온 것 같아서요. 이름은 서지윤이고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카운터 옆 박스를 꺼내 건넸다.


“아, 여기요. 오늘 아침에 도착했어요.”


지윤은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상자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번거롭게 해서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택배사에서 실수한 거지 손님 잘못은 아니잖아요.”


그의 말은 짧았고, 표정은 무표정에 가까웠지만 어딘가 부담스럽지 않았다.


“다음에 커피 한잔하러 오세요.”


그 말은 상업적인 인사였을 수도 있고, 진심이 묻은 한마디였을 수도 있다. 확신할 수 없었다.


그날 저녁, 지윤은 저녁밥을 준비하며 문득 그 커피숍을 떠올렸다. ‘더 슬로우’라는 이름이 오늘따라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도… 커피 한 잔쯤은 마셔도 되지 않을까?’


며칠 후, 서지윤은 느리게 걷다 멈추고, 조금 더 걷다 다시 서며 커피숍 ‘더 슬로우’ 앞에 섰다. 유리문 너머엔 여전히 고요한 풍경 속 남자가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지윤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종소리가 울리고, 그 남자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라떼 하나요. 따뜻한 걸로요.”


그리고 서둘러 덧붙였다.


“마시고 갈게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쪽 자리가 편하실 거예요. 출입문 쪽에 비해 그쪽이 조용하거든요.”


지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가 가리킨 테이블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그리고, 몇 분 뒤, 조용히, 도윤이 다가왔다. 따뜻한 커피가 담긴 머그잔과 함께.


“여기요.”


그는 짧게 말하며, 조심스레 컵받침에 커피를 내려놓았다.


지윤은 순간 어리둥절했다. 직접, 이렇게 자리까지 가져다주다니. 그저 작은 차이일 뿐인데, 그 작은 행동이 이상할 만큼 따뜻하게 느껴졌다.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선 진동벨이 울리고, 손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스스로 커피를 받아가야 한다. '서비스'는 말끔하고 '효율적'이지만, 그 속엔 사람 냄새가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서툴지 않은 손길로 조심스럽게 커피를 내려놓는 도윤의 모습에서, 지윤은 어쩐지 ‘당신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말없는 배려를 느꼈다.


그녀는 머그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컵에서 전해지는 따뜻함, 그리고 손끝에 남은 작은 온기가 가슴으로 전해졌다.


지윤은 미소 지었다.


'아, 이런 데가 아직도 있구나.'


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이 커피숍의 상호명이 왜 ‘더 슬로우’인지를…


바쁜 일상, 초조한 마음. 그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기다릴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이곳이었다.


지윤은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적어도 이곳만큼은 조금 느려도 괜찮을 것 같았다.

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