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온도_15

by 슬로우

“그래도 뭔가는 해야지.”


그 무렵, 코엑스에서 창업 박람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대형 행사장에 혼자 들어섰고, 화려한 간판 아래서 “초보자도 가능해요!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라고 외치는 젊은 상담원의 말에 뭔가 홀린 듯 치킨 프랜차이즈의 계약서를 건네받았다.


그렇게 그녀의 삶은, 다시 시작되었다. 기름 냄새, 배달앱, 닭뼈, 계산기, 카드 단말기, 낮에는 고기 손질, 밤에는 유튜브로 듣는 튀김 강의.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처리해야 할 일도 많은 정신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잠들기 전, 거울 앞에서 머리를 틀어 올릴 땐 자신이 어느새 이렇게 늙어 있었나 싶었다. 하지만, 웃긴 건…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단 한 번도 후회하진 않았다.


그저, 혼란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만이 그녀를 지탱했다.


그녀가 치킨집을 택한 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창업박람회에서 “초보자도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라는 말에 끌렸고, 초기비용도 큰 프랜차이즈보다 적게 들었고,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고용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는 게 그녀에겐 중요했다.


초반에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동네에 새로 생긴 가게라 호기심에 손님도 들었고, 배달앱 평점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2년이 지나자 비슷한 가게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골목엔 ‘○○치킨’, ‘△△양념통닭’, ‘옛날 닭강정’이 생겨났다.


경기 상황도 점점 안 좋아졌다. 외식비는 줄었고, 앱 수수료는 올랐다. 밤마다 지출 정산을 할 때면, 튀김기 온도보다 통장잔고가 더 뜨겁게 느껴졌다.


지금은 순이익이 예전의 절반도 안 된다. “폐업할까”하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러면 뭐하고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영업이 끝난 가게 뒷문을 나와 ‘더 슬로우’로 들어섰다. 매일 마주하는 도윤의 무뚝뚝한 인사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그는 묻지 않았고, 그녀도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은, 도윤이 가만히 커피를 내려주며 말했다.


“기름 냄새…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그 말에 괜히 눈물이 핑 돌 뻔했지만, 백승아는 늘 하던 대로 툭 쏘아붙였다.


“어머, 냄새났어요? 사장님도 커피 냄새 꽤 독한데요?”


그리고 그날따라, 커피가 유난히 진하게 느껴졌다. 지독한 치킨 냄새 위에 살짝 덮이는 듯한, 그런 냄새였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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