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온도_14

by 슬로우

그녀는 8년 전, 결혼 12년 만에 이혼했다.


결정적인 사건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작은 일들이 쌓여 결국 무너진 쪽에 가까웠다.


처음부터 남편이 무심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이가 돌을 지날 무렵까지는 아이를 돌보느라 함께 밤을 새기도 했고, 집안일도 어느 정도는 나눴다. 하지만 회사일이 바빠지면서 “요즘엔 내가 정신이 없다”는 말이 입버릇이 됐고, 그 말이 면죄부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열이 나면,

“병원은 네가 데려가는 게 편하잖아.”


유치원 행사에는,

“난 그런 데 잘 못 가. 아빠들이 다 그러잖아.”


주말마다 그는 없었다. 회사 사람들과의 회식, 골프 약속, 혹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나갔다.


그녀는 처음엔 싸웠다.


화를 내고, 울고, 설득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싸우는 것도 지쳤다.


대화는 줄어들었고, 침묵은 편해졌다. 무언가 설명하려 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로 점점 바뀌었다. 그런 관계는 결국, 부부가 아닌 타인으로 변했다.


정서적 거리라는 게, 몸보다 더 멀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이혼은 충동이 아니었다. 이미 끝났다는 걸 둘 다 알고 있었고, 더는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와 함께 조용히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양육권은 자연스럽게 그녀가 가졌고, 남편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네가 아이 키우는 데엔 더 소질이 있는 것 같아.”

그 한 마디를 남겼다.


백승아는, 그 이후로 인생을 다시 짜야했다.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나오는 길, 백승아는 이상하리만큼 덤덤했다. 법원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 발걸음을 재촉하는 행인들 사이에서 자신만이 멈춰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날 밤, 아이를 재우고 나서야 현실이 밀려들었다.


“이제, 진짜 나 혼자네.”


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이제 없다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냉장고엔 반찬이 없었고, 방바닥엔 아이가 벗어놓은 옷가지와 미처 치우지 못한 잡동사니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소파에 기대앉은 그녀는 TV도 켜지 못했다. 불이 꺼진 집 안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숨소리와 자신의 심장 박동만이 밤을 채웠다.


불안과 정적이 동시에 엄습했다.


그녀는 며칠 동안은 정신없이 움직였다. 아이 학교 등하교, 행정복지센터 서류 정리, 보험료 납부 계좌 변경… 처리해야 할 것들은 많았지만, 그중 가장 처리하기 어려웠던 건 ‘마음’이었다.


가끔 울고 싶었지만, 울 수 없었다.


다행히 아이가 생각보다 잘 적응했고, 엄마인 자신이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뼛속까지 박혀 있었다.


그녀는 몇 번이나 취업 사이트를 둘러봤다. 하지만 사회로 복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스물여섯에 결혼해, 서른여덟까지 아이만 키웠다. 이력서는 공백으로 가득했고, 손은 서툴렀고, 머리는 굳어 있었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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