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입, 로마의 전설 속으로 손을 뻗다

by 슬로우

로마를 여행하며 가장 설레는 순간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하는 역사와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생생한 순간들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진실의 입(Bocca della Verità) 앞에 서는 순간, 단순한 조각상이 아니라 시간을 뛰어넘는 전설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이곳을 처음 알게 된 건 오래전, 한 편의 영화 속에서였다.


진실의 입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건 바로 1953년 개봉한 영화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 덕분이었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클래식한 흑백 화면 속에서, 아름다운 공주 오드리 헵번과 신문기자 그레고리 펙이 함께 로마를 여행하는 장면들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중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은 바로 그레고리 펙이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 손이 잘린 척하며 헵번을 놀라게 하는 그 순간이었다. 헵번의 깜짝 놀란 표정, 소녀처럼 웃음을 터뜨리는 그 순간은 영화 역사상 가장 사랑스러운 장면으로 남아 있다.


그 장면을 떠올리며, 나는 천천히 진실의 입이 있는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Santa Maria in Cosmedin)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성당 입구를 지나 안뜰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돌기둥을 배경으로 자리한 거대한 원형의 대리석 조각, 그리고 중앙에 크게 뚫린 입 모양이 위엄 있게 자리 잡고 있었다.


진실의 입은 원래 고대 로마의 분수 장식이었거나, 하수구 덮개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조각상을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라, 거짓을 말하는 자의 손을 물어버리는 신비한 입으로 여겼다.


"과연, 내 손을 넣어도 괜찮을까?"


영화 속 장면처럼, 나도 손을 조심스럽게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부드럽지만 차가운 돌의 감촉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이 순간, 나는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마치 로마의 전설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거짓을 말하는 자의 손을 물어버린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거짓 없이 살아왔나?" "이곳에서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있을까?"


물론 손이 잘릴 리는 없었지만, 이 작은 장난 같은 순간이 신기하게도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손을 빼내고 나니, 다른 사람들은 진실의 입을 어떻게 즐기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주변에 둘러보니, 누군가는 환하게 웃으며 서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누군가는 나처럼 긴장한 표정으로 손을 넣었고, 누군가는 같이 온 친구를 놀리며 영화 속 장면을 그대로 재현하기도 했다.


진실의 입은 단순한 돌조각이 아니었다. 이곳은 로마를 찾은 사람들이 잠시 유쾌한 긴장감과 함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곳이었다.


나는 다시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로마에는 크고 웅장한 유적도 많지만, 이렇게 작지만 영화 같은 순간을 만들어 주는 장소가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진실의 입에서 손을 넣고, 순간의 감정을 기록한 이 순간도 내게는 로마에서의 잊을 수 없는 한 페이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로마를 찾게 된다면, 나는 또다시 진실의 입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손을 넣으며 이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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