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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최고의 삼엽충을 만나다

고생대 캄브리아기 구랑리층

by 팔레오

경상북도 문경은 조선시대에 길목이 되는 아주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문경새재가 있죠. 문경새재에서 새재는 조령(鳥嶺), 즉 새도 넘기 힘들 만큼 높은 고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도 넘기 힘든 험준한 고갯길임에도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선비들은 이 고갯길을 애용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문경(聞慶)'이라는 말의 뜻이 '경사스러운 일을 듣는다'이기 때문에, 이 길을 이용해야 경사스러운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문경새재 외에도 조선시대엔 왕래가 많았던 큰 길이 여러 개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고개는 이름 때문에 일부러 선비들이 피해서 다녔다고 하죠. 죽령과 추풍령이 대표적입니다. 죽령은 죽죽 미끄러져 꽝이고,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이를 보고 미개하다고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현대인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수능 시험을 볼 때 잘 붙으라고 엿과 찹쌀떡을, 잘 찍으라고 포크를, 잘 풀라고 휴지를 선물하고, 교문에 엿을 붙이기까지 하니까요. 또한 미역국과 여러 징크스를 기피하는 등 수많은 습속들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이 유서 깊은 문경에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삼엽충이 있습니다. 약 5억 4,000만 년 전 캄브리아기 전기에 살았던 '레들리키아 속(Redlichia sp.)'과 중기에 살았던 '쿠테니아 속(Kootenia sp.)' 삼엽충이 산출됩니다. 영월의 캄브리아기 삼엽충보다 더 오래전에 살았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삼엽충이죠.



삼엽충 하면 강원도인데 경상도에서 삼엽충이 나온다니,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삼엽충이라니 이건 못 참죠.


먼저 도착한 곳은 문경 구랑리의 야산입니다. 쿠테니아 삼엽충이 나온다는 곳이죠. 여기서 삼엽충이 나온다는 걸 대체 누가 처음 알아내고 또 연구했을까요? 예상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지난번에 소개했던 고바야시 교수입니다.



'쿠테니아 아마노이(Kootenia amanoi Kobayashi, 1961)'

쿠테니아는 대략 이렇게 생겼습니다. 동그란 타원형으로 아주 귀엽습니다. 마치 붕어빵 같은 비주얼이라 왠지 한 번 노릇노릇 구워먹어 보고 싶네요.



그런데 가까이 가니 경사도 가파르고, 풀과 잡목이 우거져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우와 이건... 쿠테니아보다 먼저 뱀을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금방이라도 돌틈에서 뱀이 튀어나와 발모가지를 물고 늘어져도 이상하지 않아 보이네요. 결국 돌 몇 개 들춰보지도 못하고 후퇴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겨울에나 와야 할 듯합니다.



강가 쪽으로 장소를 옮겨봅니다. 여기는 레들리키아 삼엽충이 나온다는 곳이죠.



'레들리키아 노빌리스(Redlichia nobilis Walcott, 1905)'

레들리키아는 전 세계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삼엽충인데 특히 같은 시기에 형성된 캐나다 로키산맥의 버제스 셰일에서 발견된 것이 유명합니다. 이 레들리키아의 모식산지이기도 하죠.



버제스 셰일층(Burgess Shale)

버제스 셰일층은 화석과 생물의 역사를 새로 쓴 기념비와 같은 장소입니다. 이 버제스 동물군 셰일층을 가장 처음 발견한 학자는 1886년 캐나다 지질조사소의 학자이자 탐험가인 '리처드 조지 매코넬(Richard George McConnell)'이며, 미국의 고생물 학자 '찰스 둘리틀 월콧(Charles Doolittle Walcott)'이 1909부터 1917년까지 65,000종 이상의 화석을 발견하여 연구하고 분류하였습니다. 여기서 아노말로카리스, 오파비니아, 위왁시아, 피카이아 등 기존의 상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형태의 화석들이 발견되었죠.


할루키게니아lucigenia

'아노말로카리스(Anomalocaris daleyae)'

먼저 아노말로카리스입니다. 이상한 새우라는 뜻을 가진 아노말로카리스는 캄브리아기 최상위 포식자였습니다. 갈고리 같은 두 개의 부속지로 먹이를 붙잡고, 아래 있는 동그란 입으로 으깨서 먹었다고 알려져 있죠. 어느 분류군에도 속하지 않는 특이한 절지동물입니다. 삼엽충의 천적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오파비니아(Opabinia regalis)'

오파비니아입니다. 아노말로카리스와 비슷한 체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둥이 부근에 길게 나온 집게가 특이합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특징은 눈이 다섯 개라는 것이죠. 자연계의 대부분 동물들은 좌우대칭으로 짝수개의 눈을 가진 경우가 많은데 5개 눈이라니 기괴합니다. 하긴 드래곤볼 천진반도 눈이 3개 홀수네요. 앞으로 천진바니아라고 불러야 할 듯...



'할루키게니아(Hallucigenia Conway Morris)'

할루키게니아입니다. 이 화석은 처음에 발견되었을 때 대체 어디가 위고 아래인지, 어느 쪽이 입이고 꽁지인지도 불분명했습니다. 가시 쪽이 다리라고 생각해 잘못된 복원도를 만들어 물구나무(?)를 세우기도 했었죠. 최근까지의 연구에 따라 오른쪽과 같은 복원도가 나왔습니다.



'위왁시아(Wiwaxia Walcott)'

위왁시아는 특이한 이빨 덕분에 한 때는 코노돈트의 주인공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바닥을 기어 다니며 뭔가를 갉아먹고 살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해저의 사체를 먹는 청소 동물(Scavenger)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피카이아(Pikaia gracilens Walcott)'

피카이아는 집 없는 달팽이를 연상케 하는 원시 어류인데 생물학적으로 큰 의의가 있습니다. 최초로 척삭을 가진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삼엽충 같은 절지동물보다는 인간에 훨씬 가까운 동물이죠, 척삭은 척추의 전 단계로 모든 척추동물의 조상이자 우리 인류의 조상입니다.


여기서 퀴즈!

멍게와 꽃게 중 인간과 더 가까운 동물이 무엇일까요?

정답은 이 글 마지막에~



버제스 동물 소개는 이쯤 하고 다시 화석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이 구랑리층과 버제스 지층이 형성 시기가 비슷합니다. 때문에 같은 레들리키아 삼엽충도 나오는 것이죠. 한국판 버제스 셰일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아노말로카리스나 오파비니아 같은 것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하천 주변으로 구랑리층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 돌 속 어딘가에 수많은 삼엽충이 잠자고 있을 것입니다.



잘게 부서진 돌이 모여 있습니다. 풍화가 되었거나 혹은 누군가 다녀간 흔적으로 보입니다. 이런 흔적들이 화석을 찾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더 집중해서 돌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삼엽충은 죽거나 혹은 탈피하면 몸이 조각조각 납니다. 특히 먼저 뾰족한 침이 있는 '유리볼(free cheek, 遊離頰)'이 떨어져 나오죠.



전석을 차근차근 뒤집어보니 레들리키아의 유리볼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제대로 포인트를 찾았네요.



작은 돌을 살짝 쪼개보니 5억 4,000만 년 만에 햇빛을 본 화석이 나타나 인사를 하네요. 유리볼이 떨어져 나간 머리입니다. 이를 '크라니디움(cranidium)'이라고 합니다.



방금 발견한 머리와 논문에 나온 레들리키아의 머리를 비교하면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레들리키아의 머리가 맞는 것 같습니다.



세 개의 엽이 뚜렷한 몸통의 일부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네요.



삼엽충의 몸통과 볼침 일부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데 상태가 좋지 않아 정확히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조금 아쉽네요.



역시 지층에 자연 노출된 삼엽충의 흔적입니다. 머리 부분이네요.



드디어 눈이 번쩍합니다.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레들리키아의 몸통 화석이 나타났습니다. 3개의 엽이 뚜렷하죠. 위를 덮고 있는 돌을 살짝 제거하면 머리가 남아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섣부르게 건드리고 싶지는 않네요. 꼬리가 떨어져 나갔지만 그래도 오늘의 최대 성과입니다.


문경에 늦게 도착해 화석을 살펴볼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는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어쨌거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전에 살았던 삼엽충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 큰 의의를 두겠습니다.




문제의 정답 : 멍게(우렁쉥이)입니다. 멍게는 유생시기 척삭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척삭동물문에 해당하는 멍게가 절지동물문에 해당하는 꽃게보다 인간에 더 가깝습니다. 멍게가 생각보다 하등동물은 아닙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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