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대 마이오세 영동층
네, 있습니다. 바로 영덕의 철암산입니다.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여름, 화석도 보며 등산을 할 수 있는 곳이 있기에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이곳은 칠보산 혹은 철암산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신생대 화석을 볼 수 있는 동해안의 북방한계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보다 더 위에 있는 동해시 촛대바위 부근에서도 신생대 나뭇잎 화석 등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철암산 등산로를 따라 주로 이매패류를 비롯한 굴과 같은 무척추동물들의 화석을 관찰할 수 있는데 그러한 사실이 세간에 알려진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정상에 오르는 코스는 남쪽과 동쪽에서 출발하는 방법이 있는데, 둘 다 궁금해서 이틀에 걸쳐 탐사를 진행했습니다. 첫날은 남쪽에서, 둘째 날은 동쪽에서~
여기는 모두가 보고 즐기는 화석 등산로이므로 분신과도 같은 망치는 가져오지는 않았습니다. 이날은 햇살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한증막 사우나는 비교도 안될 것 같은 지옥의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그 느낌 아실 겁니다.
공동묘지터에 등산로를 만든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오솔길 사이사이 무덤이 많아도 참 많았습니다. 자손들이 관리를 잘해놓은 무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거의 허물어져서 무덤의 흔적만 남았거나 무덤 위로 큰 나무가 자란 곳, 야생동물이 마구 파헤쳐놓은 듯한 곳도 보였습니다. 생각하면 참 서글픈 광경이네요. 죽어서 양지바른 명당에 묻혀 자손이 돌봐주는 호사도 잠시뿐입니다. 매장을 선호하는 우리나라의 장묘문화를 돌아보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철암산 등산로는 험하지 않았으나 생각보다는 꽤 걸어야 했습니다. 특히 한 장소를 지날 때 알 수 없는 소름이 확 올라왔는데 뒷목까지 뻣뻣해질 정도였습니다. 산을 그렇게 다녔어도 이처럼 기분이 스산해지는 곳은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나무 계단을 올라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 소름이 싹 내려갔습니다. 귀신의 장난이었을까요?
등산로에 있는 큰 바위들은 많든 적든 대부분 화석을 품고 있습니다. 이것은 얼핏 일반적인 산에 보이는 흔한 바위로 보이지만 모래질 사암 또는 이암 덩어리입니다.
이러한 바위를 가까이 살펴보면 화석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실루엣이 뚜렷한 이매패 화석입니다. 고래불해수욕장 부근에 산재한 갯바위에서도 이와 같은 화석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보존 상태가 썩 좋지는 않습니다. 사암 속에 들어있는 화석이 대체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죠.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가볍게 등산을 하며 과거에 살았던 생명의 흔적을 볼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습니다.
바위에 깊이 파인 곳은 대부분 화석의 흔적입니다. 알맹이는 빠져나가고 그 틀만 남은 것이죠. 이런 것을 '몰드(Mold)'라고 합니다. 이 빈자리에 광물질이 들어차 입체적 모양으로 남으면 이를 '캐스트(Cast)'라고 합니다. 몰드보다는 캐스트가 더 보기 좋죠.
조금 아쉽지만, 철암산에서 발견되는 화석은 대부분 몰드입니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습니다. 대략 한 시간 정도 소요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런 무거운 탁자는 어떻게 올려다 놓은 것일까요? 사람이 들고 올 수는 없을 거고, 설마 헬기로 공수하는 것일까요?
산이 이어진 서쪽 풍경입니다.
동쪽 풍경입니다. 산도 좋지만 탁 트인 바다가 보이니 더 좋네요.
자그마한 어항과 방파제, 바다가 보입니다. 너무 더운 나머지 '새처럼 날아서 저 바다로 당장 뛰어 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시원하고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상의 높이가 겨우 165m 밖에 안됩니다. 평소 금속탐지를 할 때를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니네요.
정상에서 땀을 조금 식히고 하산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상까지 오르내리는 동안 단 한 명의 등산객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긴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가 이 8월 무더위에 산행을 할까요?
산을 내려오고 나서 차 아이스박스에 있던 시원한 물과 음료수를 충분히 마시면서 정신을 차리니 슬슬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너무 더웠던 나머지 화석들을 충분히 관찰하고 사진을 찍지 못한 데서 오는 후회였습니다.
그래서 명일은 동쪽 코스로 재도전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입산 안내판은 없으나 산으로 오르는 길입니다.
이번엔 충분한 물과 이온음료를 준비했습니다. 역시 이날도 차에서 내리자마자 후덥한 습기와 함께 뜨거운 공기가 전신을 덮쳤습니다. 마치 지옥의 불길, 인페르노 앞에 마주한 느낌이었습니다.
등산을 시작하자마자 이매패 화석을 발견했습니다. 상태가 좋지 않아 어떤 종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네요.
무덤가 주변에 널린 바위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화석이 있습니다.
주로 크게 홈이 패인 것은 굴화석이 있던 자국입니다. 경주에서 보았던 넙쭉이와 형태가 유사합니다.
좀 더 가까이에서 본 모습입니다. 굴화석 특유의 물결 주름이 보이죠.
30분쯤 오르니 제법 큰 화석 바위를 만났습니다.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곳이 모두 화석의 흔적입니다.
가까이 가보니 꽤 그럴듯한 굴화석이 보였습니다. 어느 것이 굴화석인지 알아맞혀 보세요.
바로 이거죠. 굴화석의 모양이 선명합니다. 크기는 대략 10cm 정도로 경주에서 볼 수 있는 화석보다는 작습니다. 아무래도 위도상 위쪽이니 수온이 더 낮아서 굴화석이 작지 않았을까 추정해 봅니다.
이 바위 속에 흔적을 남긴 녀석들은 1,500만 년 전에 바닷속에서 잘 살다가 난데없는 횡액을 당해 파묻혀 화석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경동성 요곡운동으로 땅 위로 솟아오른 뒤 오랜 세월 침식과 풍화를 겨우 이겨내 살아남았습니다. 그 덕에 1,500만 년 전 자신들이 살았던 고향바다를 먼발치에서나마 바라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감상에 젖어들어 보았습니다. '푸른 해원을 향해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라는 유치환 시인의 시구가 떠오를 만큼 실로 눈물겨운 노스탤지어네요.
누가 일부러 얹어놓은 것같이 생긴 바위입니다. 신기하면서도 참 절묘합니다. 그런데 좀 위험해 보입니다.
상대적으로 약한 암석은 오랜 풍화를 겪으며 움푹 파였습니다. 언젠가 임계치에 다다르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겠죠.
바위 아래쪽은 비바람이나 직사광을 덜 받아서 그런지 화석의 보존상태가 상대적으로 양호했습니다.
운치 있는 화석 등산로입니다.
철암산에는 동굴이 여러 개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운 좋게 그중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동굴을 볼 때마다 매번 그 속이 궁금해 병이 도집니다. 그럼 뭐다? 들어가야죠.~
하지만 몇 걸음 진입하지 못하고 멈춰야 했습니다. 수직갱 형태로 높이가 최소 4~5m가량 되어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내려가면 혼자서 올라올 방법이 없기에 눈물을 머금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왠지 산적이 숨겨놓은 보물이라도 있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더 가니 팻말이 세워져 있었는데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보물'이라고? 그런데 밑도 끝도 없고, 아무런 설명도 없는 매우 불친절한 팻말이네요. 대체 무슨 보물을 도난당했다는 것일까요?
양쪽 코스 모두 등반해 본 결과. 동쪽 코스가 경사도는 약간 높지만 화석도 많이 볼 수 있는 데다 동굴도 볼 수 있어 더 좋았습니다. 등산로를 가볍게 걸으며 화석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참 매력적이네요.
요즘 같이 선선한 가을 날씨라면 7번 국도를 타고 영덕을 지나다 한 번쯤 들러서 맛있는 대게도 먹고, 가볍게 등산을 하며 만추의 정취를 느끼면서 화석까지 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만만하고 좋은 곳이 또 있을까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더 들러 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