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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은 가리비 화석의 천국

신생대 마이오세 두호층

by 팔레오

가리비를 좋아하시나요? 일반 조개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사람도 가리비는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끝에 있는 내장 부분만 조금 제거하면 대부분 부드러운 살이라 먹기도 좋습니다. 달큼한 살이 일품이라 구워도 좋고 쪄도 좋고 국에 넣어도 좋고 아무튼 그냥 다 좋습니다.


이런 가리비가 1,300만 년 전에도 잘 살고 있었습니다. 나뭇잎 화석의 천국 포항에서요. 특히 용한리 영일만항 일대에서 가리비 화석이 집중적으로 산출됩니다. 이번엔 그 가리비 화석을 만나보겠습니다. 화석을 만나러 가는데 왜 군침이 싹~ 돌까요?



영일만항과 신방파제, 바다가 보입니다. 먼저 우목리 쪽으로 가보겠습니다.



겨울 사진

우목리에 아주 특별한 집이 있습니다. 화석지층인 두호층 위에 지어진 공중부양 집인데요. 흐르는 물과 나무뿌리, 햇빛과 바람을 맞아 집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지층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언제 집이 붕괴될지 보는 사람이 다 아찔합니다. 저 지층에 귀한 공룡화석이 있다 해도 무서워서 접근조차 못하겠네요.



다행히 펜스도 치고 조금 보강작업을 한 듯 보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해 보입니다. 무성한 덩굴에 가려 어떻게 보강이 이루어졌는지는 확인이 안 되네요.



우목리부터 여남동 앞바다엔 천공성 패류가 만들어 놓은 이른바 구멍돌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신생대에 살았던 패류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면 흔적화석(생흔화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경보화석박물관에도 이것을 흔적화석이라고 명명해 전시했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구멍 속에는 단단한 바위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생활하는 현생 갈매기 조개가 들어있습니다. 따라서 신생대에 만들어진 흔적화석으로 보기엔 어렵습니다. 현생 동물의 생흔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래도 다른 곳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구멍 송송 돌이 매우 특이하긴 합니다.



HN5F6942.JPG

예쁘게 마모된 작은 것들을 주워서 요령 있게 구멍에 바람을 잘 불면 오카리나처럼 소리가 납니다. 반대편 바람구멍이 있는 경우 손으로 막았다 뗐다를 반복하면 제법 그럴듯한 피리 소리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구멍에 줄을 달아 목에 걸 수 있게 하여 돌피리라고 소장하기도 합니다.



파도에 침식된 해안 절벽에 많은 가리비 화석들이 잠자고 있습니다. 바다 너머로 보이는 것은 신항만입니다.



두호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무른 이암과 달리 이곳만큼은 이암이 단괴처럼 경화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도 자연 노출된 신생대 생물의 화석들을 많이 관찰할 수 있죠.



그런데 여기는 이렇게 변했습니다. 신항만 확장을 위해 매립이 된 것이죠. 아마 지금쯤은 이 위에 여러 시설들이 가득 들어섰을 것입니다.



매립되기 전 바닷가에 자연노출된 가리비 화석의 모습입니다.



이매패 화석과 주변 풍경입니다. 바닷물이 살랑살랑 들어오는 매우 이색적인 곳인데 이제는 영원히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어버렸네요.



바위 위에 뭔가 보입니다. 무엇일까요?



솔방울 화석입니다. 육지에 있던 솔방울이 바다로 흘러들어와 매몰된 후 화석이 되었네요.



현생 꼬막과 유사한 '아나다라 속(Anadara sp.)' 이매패 화석입니다.



불멸의 망치 좌우로 가리비 화석이 보입니다.



'욜디아 속(Yoldia sp.)' 이매패 화석도 있습니다.



솔잎 화석도 보입니다. 아까 솔방울과 한 몸이었으려나요? 문득 '한 가지에 나고서 가는 곳 모르겠구나, 아아 미타찰에서 만날 나 도닦으며 기다리겠다'는 제망매가의 한 대목이 연상됩니다. 지금은 흔한 소나무지만 과거 두호층이 형성되던 시기는 지금보다 더웠기 때문에 냉대성 수종인 소나무는 귀한 편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는 귀한 화석입니다.



가리비 화석이 또 보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가리비 화석이 여기서는 가장 흔합니다.



이것은 어떤 생물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현생 복족류나 연체동물, 환형동물의 식흔 또는 기어 다닌 흔적으로 보입니다. 만약 이것이 화석으로 그대로 남게 된다면 멋진 흔적화석이 되겠죠.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0%에 수렴합니다. 금세 지워질 테니까요.



여기부터는 기반암 위에 모래가 퇴적되어 화석을 볼 수 없습니다. 다만 배 뒤에 지층이 있는데 거기서도 가리비 화석이 나옵니다. 한적하다 못해 비밀스럽기까지 했던 이 바닷가 화석 산지가 사라진 게 참 안타깝습니다.



출발지 부근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왼쪽 노두에서 무너져 내린 이암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가리비 화석이 있습니다.



상태가 매우 좋습니다. 이 가리비 화석의 학명은 좀 깁니다. '미주호펙텐 키무라아이 우고엔시스(Mizuhopecten kimurai ugoensis)'입니다. 지난 게시글 경주 굴화석편의 길쭉이, 넙쭉이가 생각납니다. 그 화석의 긴 학명이 조금이라도 떠오르신다면... 독자님은 애독자~♡



가리비 화석이 이어집니다. 화석을 덮고 있는 모암을 살살 걷어주면 완전한 모양을 볼 수 있을 듯하네요.



방사형 무늬결이 생생하게 잘 보존된 화석이었는데 이미 풍화를 받아 크랙이 생겼네요.



깨진 부분을 살짝 들어내니 그 아래에 상태 좋은 또 다른 가리비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역시 상태가 좋네요. 움푹 들어간 음각 형태보다는 이와 같이 볼록 튀어나온 양각의 형태가 더 보기 좋습니다.



다소 지저분해 보이는 가리비화석입니다. 가리비 위에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따개비입니다. 대부분의 기생하는 것, 더부살이하는 것들의 숙명은 숙주가 죽으면 함께 죽는 운명공동체인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가리비는 두장의 패각을 빠르게 열었다 닫았다 해서 수영을 할 수 있습니다. 이매패 주제에 이동 능력이 매우 좋죠. 다른 가리비에 붙었더라면 좀 더 살았을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가리비가 죽는다고 꼭 따개비가 따라 죽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가리비가 크게 성장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 토사에 매몰되어 단명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화석으로 남았으니 다른 따개비에 비해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고 문과스러운 해석을 할 수도 있겠네요.



또 다른 가리비 위에 붙은 따개비 화석을 확대해 보았습니다. 가리비와 따개비의 미세무늬까지 보이네요.


여기서 느닷없이 퀴즈 나갑니다. 따개비는 과연 어떤 생물일까요? (정답은 글 마지막에)

1.식물 2.이매패 3.복족류 4.연체동물 5.절지동물



만조가 되니 아까보다는 수위가 꽤 올라왔습니다. 동해안은 조차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있으나 시기와 시간대에 따라 수십 cm정도의 조차가 있습니다. 이는 20년 경력의 낚시인 말이니 믿을만합니다.



신항만 입구 부근으로 자리를 옮겨보았습니다. 수로 공사를 하고 있네요.

기억하세요!

"공사판 = 화석판입니다."



조금 늦은 감은 있으나 중장비가 퍼낸 돌이 아직 남아있었네요.



바로 가리비 화석이 보이네요. 여기 바닥에서 캐낸 돌은 어두운 회색을 띠고 있습니다.



패각의 한쪽이 뾰족한 '삭셀라 속(Saccella sp.)' 이매패가 군집을 이루고 있습니다. 다른 것보다 비교적 드문 이매패입니다.



두호층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매패인 '루시노마 아쿠틸리네아타(Lucinoma acutilineata)'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흔한 바지락과 같은 지위였으려나요?



구멍 파는 갈매기 조개가 군데군데 보입니다. 가운데 검은 것은 씨앗화석인데, 이름을 잊어버렸습니다. 기억나면 수정하겠습니다.



여기서 발견되는 가리비 화석은 아직 완전히 화석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탄산칼슘 패각 일부가 남아있습니다. 만지면 가루처럼 부서집니다. 이를 살살 제거하면 아까 보았던 깨끗한 화석과 같은 모습이 됩니다.



신생대 화석 중에는 화석화가 덜 된 것들이 더러 있습니다. 나뭇잎 화석도 조직 일부가 남아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포항의 나뭇잎 화석에서 큐티클 세포 추출에 성공한 논문도 있으니까요. 실제로 거미줄이 엉킨 것처럼 바람에 하늘거리는 나뭇잎 조직이 살아있는 화석을 직접 보기도 했습니다. 경주 굴화석 산지에서도 이처럼 화석화가 덜 된 이매패와 복족류 화석이 나옵니다.



'화석으로 진행 중인데 깨워서 미안하다.'

코를 가까이 대보면 바다내음과 가리비, 어시장의 냄새가 납니다.


'그래 오늘 저녁은 가리비다!'


이렇게 좋았던 가리비 화석산지는 이제 영일 신항만 확장공사로 매립되어 대부분 사라져 버리고 일부 지층만 겨우 남아있습니다.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문제의 정답 : 5번 절지동물입니다. 따개비는 껍데기 속에 마디를 가진 친구가 숨어있습니다. 그 친구는 게나 새우같은 절지동물이죠. 한자리에 부착해 살아가는 절지동물은 좀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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