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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테리아를 아십니까?

중생대 백악기 진주층

by 팔레오

경상도 지역에는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경상누층군이 넓게 분포하고 있습니다. 그중 경남 진주와 사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은색 셰일의 진주층에서 수많은 곤충 화석과 물고기 화석이 보고되었죠. 그와 동일한 시기에 형성된 진주층이 대구 위쪽에 있는 군위군(이제는 대구광역시에 병합)에도 있습니다. 지난번 게시한 '우리나라는 왜 암모나이트가 없을까?'에서 언급했듯, 중생대는 해성층이 없으므로 여기서 산출되는 것은 모두 민물에서 살았던 동물들의 화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군위에 접어들자마자 지층이 보입니다.

이곳의 어류 화석을 고등학교 교사가 연구한 바 있습니다. 그 연구 성과를 제44회 전국과학전람회에 '중생대 백악기 경상층군에서 산출된 담수어류 화석에 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출품해 대통령 상을 수상했죠.



하천변이 예상 포인트였는데 공사중이네요. 공사판은 곧 화석판이지만, 아쉽게도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어 돌은 싹 정리가 되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어류 화석과 곤충 화석 등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요.



장소를 조금 옮겨보았습니다. 여기도 이미 하천 정비가 끝난 듯합니다. 좀 더 일찍 올 걸 그랬습니다.



주변에 검은색 셰일이 더러 보입니다. 이삭 줍기 하듯 검은색 돌만 골라 살펴보니...



조개 화석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 는 훼이크입니다. 이건 조개가 아니죠.

그렇다면 이것은 조개, 즉 이매패가 아니라면 과연 무엇일까요?



'에스테리아(Estheria)'입니다. 개갑류(介甲類) 혹은 엽지개(葉肢介)라고도 하죠. 조개처럼 생겼지만 껍데기 안에는 벼룩같이 생긴 절지동물이 숨어있습니다. 새우과는 아니지만 그나마 새우와 가장 유사한 동물입니다.



놀랍게도 이 원시적으로 생긴 동물을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 친환경 농업을 하는 논에서 말이죠.



바로 이 녀석입니다. 화석과 똑같이 생겼으니 살아있는 화석이죠.



작은 것들이 바글바글 모여있네요. 작은 것은 참깨만 한데 탈피를 하며 1cm 정도까지 성장합니다.



주로 다리를 이용해 바닥을 기어 다니는데, 두장의 배갑을 열고 닫으며 가리비처럼 움직이기도 합니다.



죽고 나면 몸체는 금세 부패되므로 상대적으로 단단한 양갑이 남아 화석이 되는 것이죠.



볼수록 귀엽고 신기하게 생겼습니다. 중생대부터 지금까지 그 모습 그대로라니 이 디자인이 스스로도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라'를 1억 년이 넘도록 실천한 친구입니다.



이 친구는 알을 품었습니다. 제가 명란을 참 좋아하는데요. 문득 에스테리아 알은 맛이 어떨지 궁금해집니다.



에스테리아와 더불어 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트리옵스 롱기카우다투스(Triops longicaudatus)' 즉 긴꼬리투구새우입니다. 고생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살아있는 화석입니다. 마트 완구 코너에서 아이들 자연학습용으로 키우기 세트가 판매되기도 하죠.



트리옵스 역시 주로 바닥을 기어 다니지만 수면 가까이 뜨면 배영을 하기도 합니다. 생긴 것이 삼엽충 하고 비슷한 느낌입니다. 에스테리아와 트리옵스의 알은 완전 건조가 된 상태에서도 몇 년은 거뜬히 생존할 수 있습니다. 물을 만나고 온도가 적당하면 부화가 되죠.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알이 100개가 있다면 모두 일거에 부화되지 않습니다. 만약 100개 전부 부화했다가 다시 조건이 나빠지면 모두 죽을 수 있어서 일부만 순차적으로 부화가 됩니다. 자연의 신비이자 수억 년을 살아남은 생존의 비결이죠.



다시 장소를 조금 더 옮겨보았습니다.



여기도 하천 정비가 끝났네요. 바닥에 평평한 셰일이 깔려있지만 물에 잠겨있으니 관찰할 수가 없습니다. 좀 더 상류 쪽으로 이동할지 고민을 하다, 시간이 많지 않아 이쯤에서 그만두고 인근의 다른 포인트를 간단히 둘러보고 가기로 합니다.



차로 10여 분을 이동해 작은 마을에 왔습니다.



요즘 시골에는 빈 집이 많습니다. 노령화된 농촌 특성상 집주인이 죽고 나면, 도회지로 나간 후손들이 굳이 들어와 살 리가 없고, 세를 놓거나 팔려고 해도 마땅히 들어와 살 사람이 없어 결국은 이처럼 퇴락할 때까지도 빈집으로 남게 되는 것이죠. 조만간 우리나라도 일본의 경우처럼 시골집 월세 '0원'인 시대가 오지 않을까요?



시골길을 어느 정도 벗어나자 드디어 1억 2천만 년 전 화석이 잠들어 있는 지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전체 지층 중에서 가장 아래쪽에 검은색을 띠고 있는 얇은 셰일층이 바로 화석이 산출되는 곳입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니 워낙 견고해서 딱히 살펴볼만한 데가 거의 없습니다. 저 지층을 통째로 뽑아내 살펴보면 좋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죠. 어설프게 망치질하는 것도 지층만 잘게 부스러뜨릴 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더구나 위에 있는 육중한 돌이 갑자기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찍소리도 못 내고 바로 사망각입니다.



지층 한편에 밧줄이 보입니다. 올라가려고 매어 놓은 밧줄인지, 내려가려고 매어 놓은 밧줄인지 알 수가 없네요. 누가 여기서 암벽등반이라도 한 걸까요? 유격훈련 때 이런 밧줄을 잡고 올라가기도 했었죠.



여기저기 탐색을 해보니 작은 나무 아래 무너진 층리가 보입니다. 그 아래 떨어진 얇은 돌판을 차근차근 살펴보았더니...



물고기 척추뼈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얼핏 보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확대를 해보면 확실히 물고기 척추의 모양을 볼 수 있습니다. 머리의 윤곽도 조금 남아있네요. 물고기 화석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의욕이 솟구쳐 올라 좀 더 세심하게 돌을 살펴보았습니다.



역시 물고기 화석이 또 나옵니다. 역시 희미하긴 하지만 머리와 척추뼈, 꼬리지느러미가 명확한 것으로 보아 틀림없는 물고기 화석입니다.



드디어 완전한 형태의 물고기 화석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머리가 전체 체장에 비해 상당히 큰 특징을 가진 녀석으로 '린콥테라(Lycoptera sp.) 속 어류로 보입니다. 가슴지느러미, 배지느러미, 등지느러미, 꼬리지느러미가 확연하네요.



이번에는 마치 흰개미처럼 하얀색의 흔적이 군데군데 찍혀있는 돌이 나옵니다. 그나마 물을 살짝 묻혀서 하얀색이 보이는 것이지 원래는 이보다 더 희미합니다. 그러니 초보자는 현장에서 화석을 보고도 못 알아보는 경우가 허다하죠.



뭔가 지저분한 느낌이지만, 확대를 해보면 의외로 실루엣의 디테일이 좋아서 참 볼만합니다.



날개는 떨어져 나갔지만 체형으로 보아 모기 종류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중생대 모기라고 하니 영화 쥐라기 공원이 떠오르네요. 영화에서는 호박 속 모기 화석의 피에 들어있는 공룡 DNA를 추출해 복원한다는 그럴듯한 상상력을 발휘했지만...


영화와 같은 쥐라기 공원의 가능성은 단연코 제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박 속 모기는 그저 모기의 형태만 남았을 뿐 추출할 만한 DNA는 전혀 남아있지 않은 그저 흔적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하얀 모기의 흔적을 박박 긁어 DNA를 찾으려 해도 영화 같은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죠. 조금 아쉽긴 해도 명백한 진실입니다. 영화는 영화일 뿐!



여러 곤충들이 한데 뒤엉켜 있습니다. 비록 형태가 완전하지 않아 정확히 판별하기 어렵지만 절지동물인 곤충 특유의 마디와 다리가 잘 드러나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죠.



마치 X선 사진 같은 모습입니다. 진주층 암석에서 운이 좋으면 매미, 메뚜기, 잠자리, 딱정벌레, 강도래, 애벌레 등 다양한 곤충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날 그런 행운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몇 시간 달려 찾아온 고생을 충분히 만회할 만큼 나름 만족스러운 탐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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