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푸른 어느 날, X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툭 던지듯 말했다. 강아지를 입양하겠다고.
그것도 코카스파니엘이라는 견종을 콕 집어서.
마치 슈퍼에 과자 한 봉지 사러 가자는 말투여서, 나는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응원을 해야 할지, 말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어떤 의미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유기견 센터에서 데려오는 건 어때? 샵에서 분양받지 말고 불쌍한 친구 하나 구제하는 게 낫지 않아?"
입 밖에 내뱉고 나서의 심정은 딱 이거였다.
'그냥 데려오지 말지.'
우리는 계양구의 한 유기견 보호소를 방문하게 되었다. 홈페이지도 제대로 없는 곳. 인터넷에 겨우 남겨진 전화 문의 후 도착한 곳은 생각보다도 더 열악하고 심란했다.
유기견 보호소에서의 봉사? 그런 마음을 먹었던 것조차 미안할 만큼, 나는 그곳에 조금도 더 있고 싶지 않았다.
흙바닥에 펜스만 쳐진 보호소. 한눈에 봐도 늙고 병든 친구들이 오늘내일하며 버티는 것 같은 수용소.
비바람만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정도의 시설이었다.
정말이지 인간이 싫어지는 공간이다. 한창 귀엽고 예쁠 때는 물고 빨고 사랑을 줬겠지. 병들고 아파지고 예쁨이 사라지니 이제 더 이상 키우기 싫어진 걸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인류애를 상실해 가던 그때, 보호소 직원이 한 친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한 마리 있어요, 코카."
마치 본인을 부르는 줄 아는 것처럼 펜스 아래 공간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며 우리를 따라 움직이는 아이. 다른 강아지들이 불안에 떨며 짖고 있을 때, 그 친구는 필사적으로 바닥에 코를 박고는 지독히도 우리의 냄새를 따라오려 애썼다.
"한번 봐도 될까요?"
X의 말에 나는 조금의 안도감을 느꼈다. 더 이상은 그곳에서 버티기가 힘들다고 느낀 던 찰나, 우리는 사무실로 들어설 수 있었다.
몇 분이 흘렀을까, 보호소 직원이 그곳의 유일한 코카스파니엘을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킁킁킁킁. 돼지 소리와 함께 짧은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는 그 친구가 무섭게 느껴졌다.
"어디 아픈 건 아니죠? 돼지 소리가…."
소형견을 키우던 나는 중형견의 크기와 흥분 소리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보호소 직원은 웃으며 흥분해서 그렇다는 말과 함께, 일주일 전에 들어왔다는 이야기, 그리고 며칠 지나면 안락사될지 모른다는 협박 비슷한 안내도 해주었다.
X가 입양 서류에 서명하고는 바로 그 친구를 데려가기로 했다. 중형견을 원룸에서 키운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산책만 잘해주면 되겠지, 대형견을 키워봤다고 하니 알아서 잘하겠지 하면서, 내 강아지가 아니니 편안하면서도 살짝의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흙바닥을 뒹굴었던 아이는 엉덩이에 오줌과 똥이 굳어져 냄새가 여간 나는 게 아니었다. 덕분에 차 뒷좌석도 금세 엉망이 되었다.
보호소 근처의 동물 병원으로 향했다. 기본 진료와 미용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병원을 들어서자 차트를 작성했다. 스텝이 아이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다. 아뿔싸, 이름을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보호자는 X인데 태평하게 화장실이나 가다니. 나는 급하게 바비라고 둘러댔다. 나의 발음 문제였을까, 그녀의 달팽이관이 문제였을까.
"바비요? 예? 바니요?"
두 번째 되묻는 그녀의 말에 나는 그냥 맞다고 해주었다.
그리고 바니…? 바니바니 당근당근. 귀여운 토끼 같은 이름이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더 생각해 봐야 좋은 이름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았고.
그렇게 바니는 우리 바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