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자를 위한 출발점
책의 내용은 아무리 훌륭해도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하면 외면되기 쉽다. 서점에 진열된 수많은 책 중에서 독자의 손길을 이끌어내는 마법 같은 존재, 바로 책 표지이다. 책 표지는 단순히 제목과 저자를 보여주는 포장지가 아닌, 책의 정체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강력한 도구이자 독자들이 가장 먼저 마주치는 책의 얼굴이다.
"나는 디자인 전공자도 아니고, 그래픽 툴도 잘 못 다루는데... 책 표지 디자인을 직접 할 수 있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처음이라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책 표지 디자인은 누구나 충분히 할 수 있다. 빵을 만들 때 레시피가 있듯, 책 표지 디자인에도 차근차근 따라갈 수 있는 순서가 있기 때문이다. 이 가이드만 따라오면 여러분도 세상에 단 하나뿐인 멋진 책을 만들 수 있다.
본격적인 디자인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어떤 툴을 사용할지 정하는 것이 현명한 시작이다. 자신의 숙련도와 작업 스타일에 맞는 툴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Canva(캔바): 책 표지 디자인에 매우 적합한 툴이다. 특히 디자인 초보자에게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쉽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 때문이다. 복잡한 기능 없이도 드래그 앤 드롭 방식으로 쉽게 디자인할 수 있고, 다양한 무료 및 유료 템플릿과 고품질의 이미지, 폰트, 아이콘 등을 제공하여 디자인에 필요한 재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미리캔버스: Canva와 유사한 국내 서비스이다. 한글 폰트나 한국적인 이미지를 더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 많아 초보자에게 좋다.
어도비 포토샵(Adobe Photoshop) / 일러스트레이터(Illustrator): 디자인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툴이다. 이미지 편집, 합성 등 세밀하고 전문적인 작업을 할 수 있으며, 인쇄용 디자인에 최적화된 기능을 제공한다. 다만, 유료 구독이 필요하고 사용법이 다소 복잡해 어느 정도 학습이 필요하다.
마이크로소프트 파워포인트(PowerPoint):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간단한 표지 디자인은 충분히 가능하다. 도형, 텍스트, 이미지 삽입 기능이 직관적이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다만, 전문 디자인 툴에 비해 해상도나 인쇄 관련 설정이 제한적일 수 있어 고품질의 인쇄물을 원한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어떤 툴을 사용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펼쳤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전체적인 디자인 구성을 머릿속으로 구상해야 한다.
디자인 프로그램을 켜기 전에 먼저 할 일이 있다. 바로 책을 펼쳤을 때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는 것이다. 종이에 대략적으로 스케치를 하면 더욱 쉽다. 실제 책을 엎드려 펼친 뒤, 위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책등을 중심으로 왼쪽엔 뒷표지, 오른쪽엔 앞표지가 펼쳐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책 표지 양쪽에 접혀 들어가는 날개도 표지 디자인에 포함하여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날개가 없는 표지인 경우는 앞/뒤 표지와 책등만 고려하면 된다.
이처럼 표지를 날개처럼 넓게 펼쳐놓고 보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보는 책 표지 디자인은 사실 한 장의 거대한 종이에 인쇄된 후 재단과 접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책의 전체 구조를 미리 상상하면 앞표지와 뒷표지, 책등, 그리고 날개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파악할 수 있고, 전체적인 디자인을 더욱 조화롭게 구성할 수 있다.
이 단계는 마치 건축가가 건물을 짓기 전에 설계도를 구상하는 것과 같다. 머릿속에 펼쳐진 그림이 선명할수록 실제 디자인 작업은 훨씬 수월해진다.
머릿속 그림이 어느 정도 그려졌다면, 이제 구체적인 치수를 계산할 차례이다. 이 과정은 표지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기초 공사가 된다.
가장 먼저 출판할 책의 가로, 세로 사이즈를 정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판형은
신국판(152x225mm): 소설, 에세이 등
46판(128x188mm): 시집, 에세이 등
A5(국판)(148x210mm): 단행본, 시집 등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사이즈가 있으니, 책의 성격에 맞게 책 크기를 먼저 확정한다. 가능한 규격 가이드 중 선택하는 것이 (특히 초보자들에게는) 무난하다.
디자인 프로그램에서 작업을 시작할 때는, 실제 사이즈에 여유분을 더해야 한다. 이를 사방 여백(Bleed)이라고 부른다. 인쇄 후 재단 과정에서 오차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보통 각 면에 3mm씩 더해준다. 예를 들어, 152x225mm 크기의 책이라면, 사방 여백을 더해 158x231mm로 작업해야 안전하다. 이 여백까지 이미지를 채워 넣어야 잘리는 부분 없이 깔끔하게 인쇄된다.
책등의 두께, 즉 세네카는 책의 페이지 수와 종이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종이의 g(그램) 수나 부피감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 인쇄소 홈페이지에 가면 종이 종류별 세네카 계산기를 제공한다. 여기에 페이지 수를 입력하면 책 두께가 자동으로 계산되니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종이 종류를 검색해보면, 많이 쓰이는 종류는 두께값이 대략적으로 제공되고 있어, 이를 활용하여 세네카를 직접 계산하는 것도 좋다. 아래는 교보문고POD 출판 시 선택할 수 있는 내지의 종류와 그 두께이다.
백색모조 150g 0.17mm
백색모조 80g 0.09mm
백색모조 100g 0.12mm
이라이트 80g 0.13mm
미색모조 100g 0.12mm
미색모조 80g 0.09mm
스노우 100g 0.09mm
세네카(mm) = (책 전체 페이지 수 / 2) * (1장당 두께)
이렇게 계산하고, 소수점 이하는 올림한다. (풀칠 시 약간의 여유분을 두기 위해)
이제 모든 정보가 모였다. 책의 전체 펼친 사이즈는 다음과 같이 계산할 수 있다.
가로: (뒷표지 가로 길이) + (세네카 두께) + (앞표지 가로 길이) + (날개가 있는 경우 앞날개 가로길이 + 뒷날개 가로길이) + 사방 여백*(각 3mm씩 6mm, 가이드에 따라 다름)
세로: (책 세로 길이) + 사방 여백*(각 3mm씩 6mm, 가이드에 따라 다름)
예를 들어, 신국판 책(152x225mm)에 200페이지이고 책 두께가 10mm라면, 전체 펼친 표지 사이즈는 다음과 같다.
가로: 152mm + 10mm + 152mm + 6mm = 320mm
세로: 225mm + 6mm = 231mm
최종적으로 320mm x 231mm 사이즈로 작업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정확한 치수 계산은 표지 디자인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단계이니 꼼꼼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단, 사방여백을 적용할 때는 사용하고자 하는 플랫폼(예. 교보문고POD, 부크크 등)의 표지 디자인 가이드에 따른다. 예를 들면 교보문고POD 의 경우, 각 날개에도 사방여백을 적용하고 있으니, 규정을 꼼꼼히 확인하여 전체 사이즈에 반영한다.
전체 표지 사이즈를 계산했다면, 이제 디자인 프로그램에 맞춰 가이드라인을 그려야 한다. 이 가이드라인은 디자인의 '설계도'와 같아서, 작업 시 혼란을 방지하고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게 해주는 기준선이다.
가이드라인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표시한다.
각 구역의 경계 (앞표지, 뒷표지, 책등, 앞날개, 뒷날개)
안전 영역 (여백)
접히는 부분
이 가이드라인은 디자인 작업시에만 참고하고 작업이 완료되면 숨김 처리하여 최종 표지 파일에서는 인쇄되지 않도록 한다.
이제 드디어 본격적으로 디자인할 시간이다. 앞에서 설정한 가이드라인 위에서 창의력을 마음껏 펼쳐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다.
이미지: 책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를 활용해 볼 수 있다. 직접 찍은 사진이나 유료/무료 이미지 사이트에서 고화질 이미지를 찾아 사용할 수 있다. 이미지를 사용할 때는 저작권 문제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이미지 배치를 할 때는 전체적인 균형을 고려하면 좋다. 예를 들면 앞 표지에 메인 이미지를 배치하고, 뒤 표지에는 여백을 크게 두거나 보완적인 요소로 힘을 빼서 안정감을 주는 느낌이 무난하다. 전체적으로 커버하는 이미지라면 이음새 부분이 자연스럽도록 신경 쓴다.
타이포그래피: 제목과 저자명은 책의 얼굴과 같다. 책의 분위기에 맞는 폰트를 신중하게 선택하고, 가독성을 고려해 크기와 위치를 정해야 한다. 폰트의 크기, 굵기, 자간을 조정하여 디자인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미지 위에 글이 올라간다면, 색에 묻혀 글씨가 안보이지 않도록 색감을 잘 선택한다.
색상: 책의 내용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색상을 고민해 보자. 밝고 경쾌한 느낌의 책이라면 화사한 색을, 진지하고 무거운 내용이라면 차분한 색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색상 팔레트를 미리 정해놓고 작업하면 전체적인 통일감을 유지할 수 있다. 인쇄 시 색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면 좋다.
너무 많은 요소를 넣으려고 욕심내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심플하고 미니멀한 디자인이 세련된 느낌을 줄 때가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의 정체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것이다. 앞표지, 뒷표지, 책등이 하나의 통일된 스토리를 전달하도록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책 표지 디자인은 복잡한 작업처럼 보이지만, 처음이라고 해서 겁먹을 필요는 없다.
'툴 선택 → 치수 계산 → 가이드라인 설정 → 디자인 작업'
이렇게 4단계 순서만 잘 지킨다면 누구나 멋지게 완성할 수 있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한 디자인을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이 가이드를 통해 기본적인 원리를 익히고 여러 번 시도하다 보면, 여러분의 책에 가장 잘 어울리는 표지를 디자인하는 '감'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디자인이 중요한 책이라면 비용이 들더라도 전문가에게 맡겨 완성도 높은 표지를 제작하는 것도 좋은 옵션이다.
내 손으로 만든 첫 번째 책 표지가 독자에게 특별한 첫인상을 남기기를 바라며, 내 표지 디자인 작업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