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주민등록번호 ISBN, 발급 절차 따라가기
첫 책을 준비하며 ISBN의 발급 과정을 알아보던 설렘을 기록으로 남겨본다. 이 13자리 숫자를 어떻게 발급받는지, 독자로서 책을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달랐던 그 감정과, 앞으로 익숙해져야 할 이 과정을 차근차근 곱씹어 보려고 한다.
책을 펼치면 뒤표지나 판권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코드 주변의 긴 숫자들, 이것이 바로 ISBN이다. ISBN은 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를 나타내는 말이며, 전 세계에서 출간되는 모든 책을 구별하기 위한 국제 표준 도서번호이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주민등록번호처럼 각 책마다 고유한 13자리 번호가 부여되는 것이다.
이 번호가 있어야 도서관에서 책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이 가능하며, 전국 어디 서점에서든 주문할 수 있다. 특히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같은 대형 온라인 서점은 모두 ISBN을 기반으로 책을 관리한다. ISBN이 없는 책은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공식적인 유통망에 올라갈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예비 작가들이 "개인도 ISBN을 받을 수 있는 건가?"라고 궁금해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개인이 직접 ISBN을 신청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개인이 직접 신청하지 않고, 1인 출판사를 등록하거나 출판 플랫폼을 활용하는 현실적인 방법들을 사용할 수 있다.
많은 블로그나 커뮤니티에서 "개인도 ISBN을 발급받을 수 있다"라고 설명하지만, 이는 부정확한 정보다. 국립중앙도서관 ISBN센터의 공식 규정에 따르면, 인쇄사 및 출판대행사는 ISBN을 신청할 수 없으며, 개인이 직접 ISBN을 신청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개인 작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현실적인 방법은 세 가지다.
개인사업자 또는 법인 사업자등록증을 바탕으로 출판사 신고를 하면 된다. 출판사를 신고하는 절차는 그리 복잡하지 않고, 대부분 온라인으로도 처리가 가능하다. 출판사 신고를 마치고 등록번호와 신고필증이 있다면 국립중앙도서관 ISBN센터에서 발행자번호를 신청할 수 있다.
출판사 설립 이야기: https://brunch.co.kr/@drvector/31
사업자등록 이야기: https://brunch.co.kr/@drvector/35
교보문고 POD는 작가회원으로 가입 후 POD도서 등록신청을 할 때, ISBN 발급이 가능하며 교보문고 온라인 서점에 자동으로 등록된다. 납본을 대신해 주는 서비스도 있으니 활용해 볼 만하다. 또 다른 대형 POD 플랫폼인 부크크(BookK)는 플랫폼 자체 ISBN을 제공하면서 전자책과 종이책을 동시에 출간할 수 있다. 인디펍 같은 개인 출판 전문 플랫폼도 번거로운 출판사 등록 없이 ISBN 발급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경우 출판사의 ISBN을 사용하게 되므로 완전한 독립출판은 아니지만,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1~2권 정도의 출간을 계획한다면 출판 플랫폼 활용을 권하고, 지속적인 출간 계획이 있다면 1인 출판사 등록을 고려해 볼 만하다.
ISBN을 신청하기 전에는 몇 가지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정확한 제목과 부제목, 본명 또는 필명으로 사용할 저자명, 신국판이나 A5 같은 판형 및 규격, 전체 페이지 수, 인쇄비와 유통마진을 고려한 예상 가격, 실제 출간 가능한 발행일, 그리고 KDC(한국십진분류법) 기준의 도서 분야 등이다.
특히 중요한 점은 종이책과 전자책의 ISBN이 다르다는 것이다. 같은 내용의 책이라도 판형이나 형태가 다르면 각각 별도의 ISBN을 받아야 한다. 또한 개정판을 내거나 판형을 바꾸면 새로운 ISBN이 필요하다. 도서 1 종당 1개의 번호가 부여되는 것이 원칙이다.
ISBN 관련해서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가 "최소 몇백 부는 인쇄해야 ISBN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완전히 잘못된 정보다. 이런 인식은 과거 대량 인쇄(옵셋 인쇄)가 기본이던 시절의 관념이 남아있는 것으로, 실제로는 단 1부만 인쇄해도 ISBN을 부여받을 수 있다.
POD(주문형 인쇄)나 전자책이 일반화된 지금, 인쇄 부수와 ISBN은 전혀 관계가 없다. 오히려 요즘은 소량 인쇄나 전자책으로 시작해서 독자 반응을 본 후 추가 인쇄를 결정하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다. ISBN은 책의 정체성을 위한 것이지, 인쇄 부수를 제한하는 장치가 아니다.
실제 ISBN의 발급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1인 출판사를 등록했다면 국립중앙도서관의 ISBN ISSN UCI 납본센터 웹사이트(https://www.nl.go.kr/seoji/main/index.do)에서 모든 절차를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다.
먼저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하고 출판사 정보를 등록한다. 처음이면 ISBN과 관련한 온라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 간단하지만 잘 모르면 이 교육을 들으면 관리 시스템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된다. 그다음 발행자번호를 신청하는데, 이 과정에서 보통 3~5일 정도가 소요된다. 발행자번호는 출판사의 고유번호와 같은 것이며, ISBN의 일부분으로 사용된다. 발행자번호를 받은 후에는 개별 도서마다 ISBN을 신청할 수 있다.
도서 기본 정보 입력 단계에서는 서명, 저자명, 판형, 가격, 발행일, 분야 등을 상세히 기록한다. 모든 정보를 정확히 입력해야 하므로 미리 정리해 둔 자료가 도움이 된다. 이 정보들이 거의 확실하게 정해지는 책 편집의 마지막 단계정도에서 신청을 고려하고, ISBN 발급 이후에 판권지 등에 작성하여 편집을 마무리해야 하므로 적절한 시점을 잘 고려하여 신청하면 된다. 신청 시에는, 중복되는 번호가 없는지 직접 검색을 해서 확인하는 과정이 있다. 안내가 잘 되어 있으니 잘 따라가며 확인하면 어렵지 않다. 이후 심사 과정을 거쳐 ISBN이 부여되면 이메일로 통지받는다. 개별 도서의 ISBN 발급은 보통 1~3일 정도이며, 경우에 따라 당일 처리되기도 한다.
중요한 주의사항들도 있다. ISBN만 받고 실제로 책을 출간하지 않으면 관리상 문제가 생길 수 있다. ISBN은 실제 출간할 책에 대해서만 신청하는 것이 원칙이다. 또한 다른 책에 동일한 ISBN을 재사용하거나 임의로 ISBN 형식을 변경해서는 안 된다.
표지 디자인을 할 때는 ISBN 이 포함된 바코드의 기재 위치를 미리 고려하고, 바코드를 표준이미지로 사용할지, 디자인을 조금 더 넣을 것인지 등을 미리 결정해 두면 좋다. ISBN이 확정된 후에야 온라인 서점 등록을 진행할 수 있다.
ISBN을 발급받은 도서에는 납본 의무가 따른다. 국립중앙도서관에 2부, 국회도서관에 1부씩 총 3부를 납본해야 한다. 처음에는 "왜 공짜로 책을 줘야 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매우 의미 있는 과정이다.
납본을 통해 내 책이 국가의 공식 기록으로 영구 보존된다. 언젠가 후손들이 이 시대의 문화와 생각을 이해하려 할 때, 내 책도 그 자료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납본은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작가로서 문화사에 기여하는 뜻깊은 행위다. POD나 전자책의 경우에는 별도의 예외 규정이 있으니, 해당 사항을 미리 확인해 보자.
우리 출판사의 첫걸음도 이 작은 번호에서 시작되었다. ISBN은 단순한 식별번호가 아니라 작가로서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 첫 번째 열쇠였다. 독립출판이나 개인출판을 꿈꾸는 모든 분들에게 전하고 싶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자신의 상황에 맞는 최적의 경로를 선택하여 용기 있게 첫걸음을 떼어보자.
세상은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13자리 숫자가 당신의 꿈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