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완벽해지고 싶었다.
실수하지 않고, 부족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언제나 긴장 속에서 살았다.
조금만 잘못해도 마음이 무너졌고,
사람들의 눈빛 하나에도 쉽게 흔들렸다.
칭찬 한마디에 기뻐하면서도,
비난 한마디에는 며칠을 잠 못 이루었다.
그때의 나는 늘 ‘잘해야 한다’는 말에
묶여 있었던 것 같다.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내 감정을 눌러야 했고,
‘착한 사람’으로 남기 위해
내 진심을 숨겨야 했다.
그렇게 억눌러온 시간들이 쌓여
어느 날 갑자기 터져버렸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나를 너무 오래 몰아붙였다는 걸.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고
누군가 나에게 말해주길 바라면서도
정작 나는 단 한 번도
그 말을 나 자신에게 해준 적이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나와 조금 다르게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래, 오늘도 버텼잖아.”
“힘들었겠구나.”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그 말들을 매일 조금씩 반복하다 보니
마음 안에서 무언가가 느슨해졌다.
예전에는 한순간의 실수에도
스스로를 무너뜨렸는데,
이제는 그런 나를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보다
나를 용서하는 일이 더 어렵다는 걸
살아오며 알게 되었다.
왜냐면 우리는
늘 ‘나답지 못했던 나’를 먼저 비난하니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진짜 용서란,
완벽하지 않은 나를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일이라는 걸.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말하지만,
사실 인생의 어느 순간엔
‘그냥 지금의 나면 된다’는
조용한 깨달음이 더 큰 위로가 된다.
이제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조금 느리고, 조금 서툴고,
가끔은 불안한 나를
그대로 안아주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비로소 진짜 평화가 찾아왔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 마음의 온도로 사는 법.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지만,
이제는 나와 화해했다.
불완전함 속에도
충분히 따뜻한 나의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때의 나는 늘 나 자신이 싫었다.
무언가를 망치면 하루 종일 자책했고,
조금만 부족해도 “왜 나는 이럴까”를 입에 달고 살았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웃고 살아가는 것 같은데,
나는 늘 마음속에서 나를 심문하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모든 자기 비난이,
사실은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였다는 걸.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기억,
사랑받지 못했던 순간,
이해받지 못했던 말들.
그런 시간들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미워함으로써
세상의 냉정함보다 먼저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나를 먼저 꾸짖으면,
다른 사람에게 덜 아플 거야.”
그렇게 믿었던 어린 마음은
비난이라는 이름의 갑옷을 입고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도 참 애썼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미워하던 그 마음조차
결국은 나를 지키고자 했던
서툰 사랑의 방식이었다는 걸.
하지만 오래된 방어는
언젠가 우리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나를 미워하며 쌓아온 견고한 성벽이
이제는 나 자신을 가두는 벽이 되어버렸다는 걸
나는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그 벽을 허물기 시작한 건
누군가의 따뜻한 한마디였다.
“그렇게 살아온 당신, 참 대단해요.”
그 말은 나의 오래된 방어를 살짝 흔들어 놓았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나를 향해 말을 걸었다.
“괜찮아. 그때의 너는 버티느라 그렇게 한 거야.”
“조금 미워했지만, 사실은 사랑하고 있었잖아.”
그 말을 반복할수록
내 마음은 조용히 풀려나기 시작했다.
자기 비난의 언어가
이해와 연민의 언어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제야 보였다.
그토록 오랫동안 나를 미워하던 그 마음 안에도
사실은 나를 지키려는 따뜻한 온기가 숨어 있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마음은 한 번도 나를 버린 적이 없었다.
비난 속에서도, 두려움 속에서도,
늘 나를 살리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울었다.
그 눈물은 후회의 눈물이 아니라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나 자신을 다시 만나게 된 눈물이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심문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묻는다.
“오늘 하루, 괜찮았어?”
그리고 대답한다.
“응, 나름대로 잘 버텼어.”
그렇게 마음은 오늘도 나를 지키고 있다.
예전처럼 거칠게 가 아니라,
이제는 부드럽고 다정한 온기로.
나는 늘 ‘조금만 더 나아져야 한다’는 생각 속에 살았다.
조금만 더 완벽해지면, 조금만 더 단단해지면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줄 것 같았다.
그래서 부족함은 언제나 숨겨야 할 결점이었다.
그것을 드러내면 사랑받지 못할 것 같아서,
늘 괜찮은 척, 웃는 척을 하며 버텼다.
하지만 그런 시간 속에서
어쩐지 마음은 점점 지쳐갔다.
누구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애쓰던 그 시절,
나는 결국 나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돌이켜보면
그때 곁에 있던 사람들은
내가 완벽해서 머문 게 아니었다는 걸.
부족하고 흔들리고 불안했던 나를
그냥 있는 그대로 봐준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그때의 나는 몰랐다.
불완전함 속에서도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이 피어나고 있었는지를.
삶은 완벽할 때보다
흔들릴 때 더 많은 진심을 드러낸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에서
우리의 마음은 조금 더 깊어지고,
그 안에서 자라난 온기가 누군가에게 닿는다.
이제 나는 안다.
부족함은 결점이 아니라
사람다움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걸.
조금 서툴러도 괜찮고,
조금 느려도 괜찮다.
그 모든 부족함이
결국 나를 사람답게 만든다.
누군가의 완벽함보다
불완전한 진심이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그건 마치 금이 간 도자기 속으로
빛이 스며드는 순간처럼,
상처와 결함이 오히려 더 깊은 빛을 품기 때문이다.
부족함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나와 화해했다.
더 이상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함께 살아가야 할 ‘나’로 느껴졌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돼.
그 부족함 속에도 충분한 아름다움이 있으니까.”
나는 언제부터인가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었다.
다른 사람처럼 웃고,
다른 사람처럼 사랑하고,
다른 사람처럼 괜찮아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늘 나를 비교했다.
누군가는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누군가는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누군가는 아무 일 없는 듯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 속에서 나는 늘 ‘덜 된 사람’처럼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처럼 살지 못하는 나,
자꾸 뒤처지는 나,
언제나 불안에 휩싸여 있던 그 시절의 나를
나는 참 많이 미워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미움 속에도 마음은 나를 지키고 있었다.
그건 자신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비교하고, 불안해하고, 자책하던 그 마음의 밑바닥에는
“나도 사랑받고 싶다”는 간절한 외침이 숨어 있었다.
나는 몰랐다.
내가 그렇게 아프게 나를 몰아붙이던 이유가
사실은 ‘나도 괜찮은 사람이고 싶어서’였다는 걸.
나를 미워하던 시절에도
마음은 나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씩 나를 용서할 수 있었다.
남들과 달라도 괜찮다고,
조금 느려도 괜찮다고,
그렇게 말해주는 법을 배워가면서.
이제는 안다.
‘다른 길’로 살아가는 건
틀린 게 아니라,
그저 ‘나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누군가는 직선으로,
누군가는 곡선으로 걷는다.
누군가는 먼저 도착하고,
누군가는 멈춰 선다.
그 모든 길이 다 삶이다.
그러니 오늘은
이 말을 나에게 조용히 건네본다.
“남들과 달라도 괜찮아.
너는 여전히 아름답고,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이야.”
그 말이 내 안에 닿는 순간,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졌다.
비로소 나는 ‘나의 속도’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남들과 다르다는 건 결함이 아니라,
삶이 나에게 건넨 고유한 문장이다.
그 문장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며
나는 다시, 나 자신에게 다정해지는 법을 배우고 있다.
가끔은 세상이 너무 차갑게 느껴질 때가 있다.
누군가의 시선 한 줄기,
말 한마디가 유난히 날카롭게 다가와
내 안의 작고 여린 마음을 다치게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늘 나에게 먼저 화를 냈다.
‘왜 그렇게 약하니.’
‘왜 또 상처를 받니.’
‘좀 더 단단해지면 좋을 텐데.’
하지만 이제는 안다.
단단해지는 건 나를 무감각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연약함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일이라는 걸.
강해진다는 건,
눈물을 참는 게 아니라
흐를 수 있게 허락하는 용기라는 걸.
어쩌면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외로웠던 이유는
세상이 나를 버린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버텨내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보다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 시간이 더 길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세상이 나를 품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나를 품지 않았던 거라고.
나를 미워하고 탓하던 그 마음이
가장 깊은 고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는 걸.
그 순간부터
조금씩 모든 게 달라졌다.
누군가가 나를 인정하지 않아도,
사소한 실수로 하루가 엉망이 되어도,
나는 내 편이 되어보기로 했다.
“괜찮아. 오늘도 최선을 다했어.”
그 말 하나가 내 하루를 바꿔놓았다.
누구도 몰랐지만,
그건 내 안의 어린 나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위로였다.
나를 받아들이는 일은
거대한 변화가 아니라
아주 작은 용기의 누적이었다.
조금 덜 미워하기,
조금 더 다정히 바라보기,
조금은 느리게 걸어보기.
그렇게 마음이 풀리자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예전엔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던 풍경이
이상하리만큼 따뜻해졌다.
누군가의 미소가 낯설지 않았고,
햇살이 내 어깨에 닿는 순간
조용히 숨을 고르는 여유가 생겼다.
세상은 원래 내 편이었다.
다만 내가 그 품을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제는 안다.
나를 받아들이는 순간,
세상은 이미 나를 품고 있었다는 걸.
어느 날 문득,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도 유난히 피곤했던 날이 있었다.
누구에게 상처받은 것도 아닌데,
마음 한편이 묘하게 저릿하고 무거웠다.
그때 나는 내 안의 한 목소리를 들었다.
“조금만 쉬어도 괜찮아.”
그 한마디가 이상할 만큼 낯설었다.
왜 이렇게 단순한 말을
그동안 나 자신에게 한 번도 해준 적이 없었을까.
나는 늘 나를 채찍질하며 살아왔다.
‘조금 더 잘해야지.’
‘조금만 더 버텨보자.’
‘이 정도는 누구나 다 견디잖아.’
그렇게 내 안의 작은 신호들을 외면하며
무너지는 걸 미루고 또 미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를 몰아세우는 마음이
사실은 나를 잃지 않기 위한 마지막 버팀이었다는 걸.
그때의 나는 게으르거나 약했던 게 아니라,
그저 너무 오랫동안 버텨온 사람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허락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나를 향한 수많은 기대와 평가,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낸 기준들 속에서
그 ‘그대로’라는 말은 마치 무책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무책임이 아니라
진짜 회복의 시작이었다.
나는 이제야 안다.
‘괜찮은 척’이 아니라 ‘괜찮지 않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마음이 조금씩 숨을 쉬기 시작한다는 걸.
완벽해지려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삶은 오히려 단단해진다는 걸.
그래서 나는 요즘 나에게 자주 묻는다.
“오늘은 어땠어?”
“지금 이 순간, 정말 괜찮아?”
그 물음 앞에서 가끔은 대답이 막히고,
눈물이 먼저 터져 나올 때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눈물이 흘러나온 자리에는
따뜻함이 남는다.
그건 슬픔이 아니라,
나를 향한 다정함의 첫 시작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허락하는 시간은
결코 나약함의 시간이 아니다.
그건, 내가 나에게 돌아오는 시간이다.
세상이 뭐라 하든,
누가 어떻게 보든,
지금 이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안아주는 그 순간
마음은 다시 살아난다.
우리는 자꾸 변해야 한다고,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가장 큰 변화는
“그냥 나로 있어도 괜찮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게 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
있는 그대로의 나를 허락해 보자.
그 허락 안에서
삶은 다시 부드러워지고,
마음은 다시 나를 품는다.
언젠가부터 나는 ‘기다림’이라는 말을 싫어하게 됐다.
기다린다는 건, 뭔가 부족하다는 뜻 같았고
지금의 내가 충분하지 않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애써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척,
기대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보았다.
그게 더 단단한 태도 같았고
그렇게 해야 상처받지 않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마음은, 그런 이성을 따르지 않았다.
아무리 모른 척해도,
아무리 괜찮은 척해도,
어딘가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어떤 사람일 수도 있었고,
아주 오래전 잃어버린 나 자신일 수도 있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다정히 불러주며
“괜찮아, 이제 그만 애쓰자”라고 말해주기를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다림은 외로움의 다른 이름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그저 묵묵히 버티며 하루를 견디는 마음.
누군가 나를 봐주길 바라면서도
정작 다가오는 손길엔 서툴게 고개를 돌리던 마음.
나는 그 마음을 오랫동안 몰랐다.
아니, 알면서도 외면했다.
그건 너무 부끄럽고, 너무 약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기다린다는 건 약함이 아니라,
아직 마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이미 닫혀버린 마음이라면
그 누구도, 그 어떤 온기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 기다림이 고맙다.
아무도 몰래 나를 대신해
세상과 연결되는 끈을 놓지 않고 있었던 마음.
상처투성이였지만, 여전히 사랑을 믿던 마음.
그게 진짜 나였다.
진짜 나는 늘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의 다정함을,
나 자신에 대한 이해를,
그리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이제야 안다.
기다림은 멈춤이 아니라
마음이 나를 향해 보내는 조용한 신호라는 걸.
“나는 아직 괜찮아지고 싶어.”
“나는 아직 사랑을 믿고 싶어.”
그 메시지를 읽어내는 순간,
마음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다시 피어난다.
나는 이제 그 기다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건 내 안의 사랑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뜻이니까.
언젠가 그 사랑이
다시 누군가를 따뜻하게 품을 날을 꿈꾸며
오늘도 나는,
조용히 나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살다 보면,
언제부턴가 자신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사실이
은근히 불안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남들처럼 말하지 않고,
남들처럼 웃지 않고,
남들처럼 살아오지 않은 나.
그 다름은 처음엔 괜찮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용히 불편해졌다.
다들 비슷한 길을 가는 것 같은데
나만 자꾸 엇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무언가 잘못된 건 아닐까.
그래서 억지로 비슷해지려 애썼다.
다른 사람의 리듬에 맞춰 걷고,
다른 사람의 말투를 따라 하고,
다른 사람의 꿈을 내 꿈처럼 말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럴수록 마음은 점점 더 공허해졌다.
그때는 몰랐다.
남들과 같아지는 게 나를 지켜주는 게 아니라
조용히 나를 잃어가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나답게 산다는 건
누군가보다 뛰어나게 사는 것도,
눈에 띄게 다른 선택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 마음의 속도와 리듬을 존중하며
내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다.
나는 느리게 걷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겐 답답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느림 속에는
세상이 놓치는 것들을 보고 듣는 힘이 있다.
바람의 결, 빛의 움직임,
그리고 마음의 미세한 떨림 같은 것들.
다른 사람처럼 살지 않는다는 건
세상과 어긋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건 세상 속에서
‘나’로 존재하겠다는 가장 용기 있는 선언이다.
어쩌면 우리는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외로운 게 아니라,
그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서 외로운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그대로 허락하는 순간,
외로움은 조금씩 사라지고
대신 나를 닮은 평온이 찾아온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비슷해지려 애쓰던 시절이
나를 지켜주기 위한 생존의 시간이었음을.
그리고 지금,
다시 나답게 살아보려는 이 시도가
비로소 회복의 시간이라는 걸.
나는 이제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나보다 앞서 있고,
누군가는 나보다 느리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피어나는 존재니까.
다른 사람처럼 살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나로 태어났고,
나답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늘의 나는 충분히 괜찮다.
한동안 나는 ‘나’를 좋아하지 못했다.
무엇을 해도 부족해 보였고,
조금의 실수에도 마음이 무너졌다.
거울 속의 얼굴은 늘 피곤해 보였고,
그 안의 나는 자꾸만 작아졌다.
그 시절의 나는,
누군가의 칭찬에도 웃지 못했다.
“괜찮다”는 말이 들리면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마치 들키지 않기 위해,
더 완벽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밀려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혹시,
내가 나를 너무 오래 미워해온 건 아닐까.
다른 사람에게는 한없이 다정하면서,
정작 내게는 단 한 번도 따뜻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 마음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때로는 예민하고, 쉽게 상처받고,
가끔은 이유 없이 불안하다.
하지만 그게 ‘나’다.
그 불완전함 속에,
나를 지켜온 진심이 있었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품어주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과 닮아 있다.
내가 나에게 다정해지지 않으면,
그 어떤 온기도 오래 머물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래서 요즘 나는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나를 다시 좋아해도 괜찮을까?”
그 물음 안에는
조심스러운 희망이 있다.
조금은 서툴지만,
그래도 다시 나를 품어보고 싶은 마음.
나를 좋아한다는 건
거만함도, 이기심도 아니다.
그건 ‘나를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용한 회복의 선언이다.
나는 나를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아직 완전히 좋아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미워하지는 않는다.
그건 생각보다 큰 변화였다.
언젠가 내가 정말 나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때는 세상도 조금 다르게 보일 것이다.
바람의 온도, 사람의 말투,
그리고 내 하루의 빛깔까지도.
나를 다시 좋아해도 괜찮다.
이미 나는 충분히 애썼고,
지금도 여전히 살아내고 있으니까.
이제는 나를 벌주는 대신,
나를 이해해 주고 싶다.
그게 어쩌면
진짜 치유의 시작일지도 모르니까.
오래도록 거울을 마주 보는 일이 어려웠다.
비추어진 얼굴이 낯설었고,
그 속의 내가 늘 어딘가 불만스러워 보였다.
“조금만 더 예뻤으면 좋겠다.”
“조금만 더 강했으면 좋겠다.”
“조금만 더 괜찮은 사람이었으면…”
그렇게 나를 다그치는 말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나를 사랑하기보다,
끊임없이 평가하고, 비교하고, 수정하려 했다.
거울은 늘 냉정했고,
그 속의 나는 늘 미완성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피곤한 얼굴로 거울 앞에 서서
습관처럼 한숨을 쉬려던 순간,
무심히 스친 시선 속에서
이상하게 따뜻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이 사람, 참 오래 버텼구나.’
그 한마디가 마음 안쪽에서 일어났다.
순간, 눈물이 났다.
아무 이유도 없는데,
그저 오래도록 나를 버티게 한
그 얼굴이 너무 애틋했다.
그날 처음으로,
거울 속의 내가 다정해 보였다.
흠 많고 부족한 그 얼굴이,
이제는 미워지지 않았다.
그 안에 담긴 시간과 상처,
포기하지 않고 살아온 날들이
조용히 나를 감싸는 것 같았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나를 미워했던 이유는
사실 미워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랑받지 못했던 시간들을
억울하게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나는 그때부터 조금씩 연습하기 시작했다.
거울을 볼 때마다
“괜찮아, 오늘도 잘했어.”
그 한마디를 건네는 일.
그 말이 처음엔 어색했지만,
조금씩 내 얼굴의 표정이 달라졌다.
눈가가 부드러워지고,
입꼬리가 조금 더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누군가의 다정함이 필요했던 내가
이제는 나에게 다정해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는 걸.
우리가 평생 사랑해야 할 사람은
누구보다 먼저 ‘나’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한 약한 얼굴까지
그대로 안아주는 순간,
비로소 진짜 회복이 시작된다.
오늘 거울 속의 내가 조금 더 다정해 보인다면
그건 세상이 나를 바꾼 게 아니라,
내가 나를 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