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전족 Urban-binding #21

Epilog

by Celloglass

우리는 우리의 도시를 사랑하지 않는다. 삶의 터전이고 일상이지만, 기록되지도 않고 스쳐 지나간다. 해외에 나가서는 그 도시의 골목과 풍경을 기억하면서도, 정작 우리의 도시는 무뎌진다.


이 도시가 갇혀 있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에서 영감을 얻어 ‘전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지금의 도시가 옥죄어진 모습은 내 생각과 많이 닮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시의 가로활성화 방안이었다. 상업지역 내 업무시설이 밀집해 슬럼화가 된다는 이유로, 고층빌딩 저층부에 상가를 유치하면 거리가 밝아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변화한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 여전히 뚜렷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상업지역은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낳는다. 오피스텔과 생활형 숙박시설을 규제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불법 전입신고가 예상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건축 허가와 분양 절차를 거친 수분양자들을, 불법 가능성만으로 사지로 내몰았다. 법으로 허가해 놓고, 법으로 국민을 범죄자로 만든 셈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사회문제가 되자 건물주들을 부덕한 집단으로 매도만 했지, 코로나 시절 자발적으로 임대료를 낮춘 ‘착한 임대인’에게는 사회적 관심조차 없었다. 자유시장경제에서 빈부격차는 당연한 현상인데, 건물 소유자라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받았다.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집주인도 같은 잣대로 비난할 것인가. 집값 안정은 공공주택 공급으로 해결을 나서면서 왜 이 문제는 침묵하는가.

공공이 제 역할을 못한 것이다. 늘 공공이 할 일들을 민간에게 양도한다. 무상급식은 차별을 우려해 공평하게 지급해야 된다고 주장하면서 주거에서의 공평함은 외면했다.


자신의 임기 내 공공임대주택을 확보하기 위해 민간사업자들에게 특혜를 주고 강제로 임대주택 수를 확보하고 있다. 입주한 공공임대 입주자들은 차별을 받으니 전혀 공공성이 없어 보인다.


특혜로 받은 용도지역 상향과 용적률 완화로 원주민들의 조망권과 일조권을 침해함에도 공공시설이 있다는 이유로 합법화되고 있다.


결국 사업 시행자만 좋지 어느 누구도 좋은 사람이 없다.


우리는 불편한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다. 그 기억을 지우기 위해 폭파조차 서슴지 않는다. 조선총독부 철거는 그 상징이었다. 아픈 역사일수록 보존하고 대면했어야 하지만, 우리는 쉽게 버리고 잊었다. 지금은 그 자리를 기억하는 이조차 드물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또 다른 추억을 찾아다닌다. 옛길을 걷고, 낡은 노포에서 향수를 느끼며, 오래된 자전거에 가족을 태워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삶은 보존하지 않는다. 재개발과 재건축은 환영하고, 낳고 자란 동네의 기억은 새 아파트를 위해 버려진다.


도시의 불균형은 여전히 존재한다. 대중교통 요금은 같아도, 어떤 동네의 지하철 역사는 명품의 옷을 입는다. 기반시설은 모두의 것이지만, 특정 지역만 그 특권을 누린다.


도시의 전족은 과거와 현재를 잇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변화하지 못했기에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낡은 도시계획과 지역지구 설정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결국 새로운 기술과 비전은 신도시에서 시작될 것이다.


행정부처 수장의 비전공자 임명은 늘 아쉬운 대목이다. 건설 분야는 늘 전문가 대신 비전문가가 맡는다. 그 결과 신공항 사업은 담합으로 무산되고, 고속도로는 휘어진다. 미래 기술은 이야기되지만, 정작 미래 도시는 준비되지 않는다. 비전공자들에 의해.


우리는 수치스러운 과거는 지워버리면서, 현재를 옭아매는 제도는 바꾸지 않는다. 그러면서 미래를 준비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미래는 늘 그들의 임기와 함께한다.


《도시의 전족》은 그런 모순을 기록하기 위해 썼다. 도시를 옥죄는 규제와 제도, 그리고 기억하지 못하는 사회를 보여주고 싶었다. 어릴 적 보았던 영화 <백 투 더 퓨처>가 현실이 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떤 도시를 준비하고 있는가. 그것이 이 시리즈가 던지고 싶은 마지막 질문이다.


끝으로, 매번 찾아와 글을 읽어주고 조회수를 올려주신 독자분들, 그리고 함께 고민을 나눈 여러 작가님들께 감사드린다.


– 2025.08.22 Cellog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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