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전족 Urban-binding #17

지구단위계획

by Celloglass

지구단위계획은 도시의 일부 지역에 옷을 입히는 작업이다. 같은 땅이라도 건물을 얼마나 높이 지을 수 있는지, 도로와 공원은 어디에 배치할지를 정한다.


도시 속 생활과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제도이자,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골목과 건물 배경에 숨어 있는 규칙이다. 문제는 이 제도가 살아 있는 규정이라기보다는 낡은 참고서처럼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서울만 해도 일부 지역의 지구단위계획은 여전히 오래된 스캔본 지침을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20년 전 자료가 수정 없이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도시·군 기본계획은 「국토계획법」에 따라 20년 단위로 수립되며, 5년마다 타당성을 재검토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운영은 ‘부분 수정’에 치중하다 보니 전체 계획은 누더기처럼 이어지고, 일관성은 약해진다. 그러다 보니 지구단위계획은 큰 방향을 담은 참고서 역할에 그치고, 현장에서는 수많은 개별 지침과 고시가 문제집처럼 쌓여 적용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담당자의 잘못이라기보다, 법과 지침이 겹겹이 중첩된 구조 때문이다.


하나의 건물을 짓기 위해 참고서뿐 아니라 수많은 문제집까지 풀어야만 한다.


정치적 계산도 이 혼선을 부추긴다. 시장이나 도지사가 임기 안에 성과를 내세우기 위해 기존 계획을 근본적으로 손질하기보다 새로운 지침과 고시를 덧붙이는 방식을 택한다. 법과 제도를 개정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별도의 개발계획이나 지침은 단기간에 발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도시는 장기적 계획의 발전보다 임기별 정책집으로 변한다.


최근 서울시가 주거지역 용적률을 한시적으로 50% 상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부동산 시장을 부양한다는 명분 아래 별도 규정을 신설했지만, 정작 도시계획 체계 전체에서는 일관성이 무너진다.


문제는 이런 규정은 뉴스나 보도자료를 챙기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도시는 자율주행 시대, AI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여기에 RE100 같은 국제적 요구가 정책으로 반영되면, 또 다른 규제가 추가된다. 세상은 급격히 변하는데, 우리 도시계획은 여전히 과거의 옷을 입은 채 편집과 땜질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도시계획은 변화에 유연하게 반응되어야 한다.


지금의 지구단위계획은 변화를 선도하기는커녕, 여전히 낡은 참고서 역할에 머물러 있고, 수많은 문제집으로 보정하는 수준이다. 이런 현실에서는 대응이 어렵다.


내가 이 시리즈를 연재하기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구조적 결함을 드러내고, 도시계획의 본질을 다시 묻기 위해서다.


도시계획은 사회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부분 편집으로 덧칠하는 방식이 아니라, 근본 틀을 다시 짜야한다. 과감히 고치거나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앞으로의 변화 속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우리의 도시는 이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낡은 문제집 속에서 답을 찾는 척만 하고 있는가.


도시를 감시하고 제안하는 일은 결국 시민의 눈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모순을 말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정치인의 정책집 속에 갇히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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