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신이 경험한 일에 대해 써 보자.

소설 쓰기, 그 열 번째 이야기

by 다작이

아침에 글을 쓰려고 휴대전화를 펼쳤다. 뭘 쓸까 하는 고민이 들던 중에 문득 떠오른 낱말이 하나 있었다. 연포탕.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들 중의 하나였다.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아무리 화가 나는 순간이 있어도 연포탕 한 그릇 훌훌 먹고 나면 화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 정도다. 마침 며칠 전 저녁 식사로 든든하게 먹은 참이었다. 고맙게도 아내가 정성스럽게 끓여준 것이다. 물론 나 먹으라고 끓인 건 아니지만, 원님 덕에 나발까지 불었으니 여한은 없다. 맛있게, 그리고 든든하게 먹어서인지 하루를 마감하는 기분이 조금은 더 산뜻했다. 모처럼 만이었다. 그래서일까, 머리도 맑아지는 기분이었고, 어쩐지 글도 잘 풀렸다. 그런데 이때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뜻하지 않게도 글을 쓰려는 찰나에 다른 방해 요소가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나는 글을 쓸 때 방해 작용이 생기면 무시한다. 그러나 이번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새로운 소설의 소재가 떠오르는 중이었다. 몇 분 정도의 시간 동안 몇 가지 낱말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이럴 때에는 무조건 그 단어를 기억해야 한다. 아니 어딘가에 기록해 두어야 한다. 얼른 휴대전화의 메모장 앱을 열어 사라지기 전에 몇 개의 낱말을 메모했다. 뭐, 굳이 이름을 거창하게 붙이자면 내가 한 일의 시작은 단어 연상 작업쯤에서 비롯된 게 아니겠나 싶다. 이왕 이렇게 새 소설의 첫 회를 쓰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적어볼까 한다.


연포탕이 떠오르자마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몇 개의 낱말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떠다녔다. 앞서 말했듯 휴대전화의 메모장에 하나하나 옮겨 적었다.


연포탕, 저녁 식사, 아내, 남편, 결혼생활.


그러고 보니 제대한 지 벌써 반년이 넘은 아들과의 일화까지 떠올랐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한 어느 날 주방에서 사건은 시작됐다. 저녁으로 뭘 먹을까 하던 참에 온 집안을 가득 메운 냄새로 마음이 설레고 말았다. 솥뚜껑을 열어보나 마나 그 냄새의 정체는 연포탕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찬장에 있는 국그릇과 국자를 챙겨 한 사발 퍼 담으려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아내가 기어이 한 마디를 했다.

"요즘 기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아서 끓였어. 좀 있으면 집에 온다고 했거든."

마지막 말을 듣지 않았다면 고맙다는 말과 함께 국을 떴겠지만, 이미 들어버렸으니 그럴 수 없었다. 말은 먹어도 된다고 했어도 엄연히 나 먹으라고 준비한 게 아니었다. 기어이 먹겠다면 아주 조금만 먹으라는 뜻이었고, 가능하다면 먹지 말라는 의미로 들렸다. 개인적으로 아들에겐 악감정이 없으나, 자연스럽게 연상된 낱말 속에 아들이라는 말도 포함시켰다. 이젠 연상된 낱말들을 하나하나 얼기설기 엮어야 한다.


연포탕, 아침식사, 아내, 남편, 결혼생활, 아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떤 순서로 낱말들을 연결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그 각각의 낱말이 배치된 위치를 하나의 문단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낱말들을 중심으로 몇 개씩의 문장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최초의 문장 하나가 튀어나와야 한다. 굳이 여기에서 내가 진리처럼 통용되는 ‘첫 문장’이라고 말하지 않고 ‘최초의 문장’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첫 문장의 중요성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게 위함이다. 그건 내가 이전의 글들에서도 줄곧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글쓰기에 있어서, 특히 소설을 쓰는 데 있어서 그 어떤 문장도 첫 문장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겐 작품의 '첫 문장'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글쓰기란 결국 최초의 문장에 다음의 문장을 더하고, 다시 거기에 다음다음의 문장을 더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어쨌건 간에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새 소설의 최초의 문장은 아래와 같다.


식전 댓바람부터 거실에서 얼쩡대는 민철의 발소리에 서우는 눈을 떴다.


민철과 서우라는 등장인물이 드디어 나타났다. 민철은 한 집안의 남편이고, 서우는 민철의 아내다. 이제 곧 이 두 사람을 둘러싸고 더 많은 사람들이 속속 등장할 것이고, 그들은 몇 개의 사건들을 만들어 낼 것이며, 그 사건들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나름의 갈등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며칠 전 저녁때의 나처럼, 한 남자가 있는데 아내가 정성스럽게 끓여 준 연포탕을 아침식사로 먹고 출근했다,라는 식으로 글을 쓰면 그건 아무런 갈등 요소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야기에서의 중요한 요소 중인 ‘갈등’을 만들기 위해 실제로 일어난 일과는 정반대로 상황을 비틀어야 한다.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뒤통수라도 후려갈기고 싶었다. 마음 같아선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붓고 싶었지만, 문을 열어놓은 채 잠들어 있는 아들이 신경 쓰였다. 앓느니 죽는다고 이럴 때에는 모른 척하고 무시하는 게 상책이었다. 어차피 몇 분만 버티면 제풀에 나가떨어질 인간이었다.
실눈을 뜬 채 시계를 보니 아침 5시 35분이었다. 민철이 일어나서 움직일 시간이 결코 아니었다. 아침부터 뭔가에 꽂힌 게 있는 것이다. 식탁과 냉장고 사이에 멈춘 듯 얼쩡대는 기색이 느껴졌다. 철민은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다. 말하나 마나 뻔했다. 빌어먹을 놈의 저 인간이 어젯밤에 정성스레 끓여놓은 연포탕 냄새를 맡은 것이다. 하긴 먹는 것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탐욕적인 인간이 바로 민철이었다. 어떻게 해서 끓인 연포탕인데 그 귀한 걸 저 인간이 처먹도록 내버려 둘 순 없다.
"왜?"
딱 한 마디만 던지면 된다. 먹고 싶은 마음과 직접 차려 먹어야 하는 번거로움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민철을 제압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분명 저 인간은 지금 당장 서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밥을 차려주길 바라고 있을 테다. 명색이 남편이 출근하면 아내가 아침밥을 차려야 한다는 게 민철의 지론이었지만, 그런 얄팍하고 못된 마음을 모를 리 없던 서우였다. 당연히 이 나이 들어서까지 그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서 서우를, 남편인 민철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아들만 신경 쓰는 한 여자로 둔갑시킨다. 서우는 아들에게 먹이기 위해 지난밤에 끓여놓은 연포탕을 민철이 먹을까 봐 신경이 곤두서 있다. 연포탕이야 다 먹으면 또 끓이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무런 갈등도 일어나지 않는다. 최소한 입속에 들어가는 것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민철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서우로 만들어야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남편인 철민은 아침에 연포탕을 꼭 먹고 출근하고 싶었지만, 쓴 입맛만 다신 채 빈속으로 출근해야 했다. 그건 서우에겐 어림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왜,라고 대뜸 던진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나는 자신이 민철의 아침을 챙겨줄 마음이 없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뭘 처먹든 네 마음이지만 연포탕은 손대지 말라'라는 엄포의 의미였다.
늘 들르던 시장의 단골 가게에서 낙지와 전복을 본 서우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전방에 가 이 추위에 고생하고 있는 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마침 휴가가 예정되어 있던 차라 뭘 먹일까 내심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다. 한창나이에 군에 간 아들이 안쓰러운 서우였다. 아래로 딸도 하나 있었지만, 솔직히 눈에 넣어도 더 안 아픈 쪽은 딸보다는 아무래도 아들이었다. 뭐든 서우가 해주는 음식은 투정 없이 잘 받아먹던 아들이었다. 아무리 비싸고 귀한 음식이라 한들 아들의 입에 들어가는 게 아까울 리 없었다. 그렇지만 민철의 입에 들어가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입 속에 들어가는 숟가락이라도 뺏어 내동댕이치고 싶은 심정이라고 해야 할까? 그 정도로 치졸해지고 싶지는 않으나, 마음이 그렇게 움직이는 데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그다음으로 필요한 건 그렇다면 왜 그렇게 서우가 민철이 연포탕을 먹는 게 못마땅한지 이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는 게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사람들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적어도 서우에겐 그게 진리일 리가 없다. 그때껏 살아온 서우에겐 손바닥이 마주치지 않아도 소리가 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게 문제겠다. 게다가 서우는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고 생각한다. 엄연히 말해서 그 굴뚝에 불을 지핀 사람은 바로 민철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법만 무섭지 않다면 민철이 먹는 음식에 아무도 모르게 약이라도 섞고 싶은 마음이 있을 정도로 민철을 싫어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중매쟁이의 말을 믿는 게 아니었다. 하긴 그것이 엄밀히 따지자면 서우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갖은 사탕발림의 수작 하나 가려내지 못한 서우 모친의 얇은 귀 때문인지도 몰랐다. 중매쟁이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인자한 시아버지, 점잖은 시어머니, 그리고 요즘 사람답지 않게 차분한 남편을 만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고…….
그 알량한 구청 공무원이 뭐라고 말끝마다 아들이 공무원인 걸 마치 벼슬이라도 되는 양 내세우던 시아버지라는 인간은, 교양머리라고는 없이 무식한 티가 넘치는 위인이었다. 젊었을 때부터 계집질하는 데 이골이 나 있었고, 어떤 음식이든 한 번 꽂히는 음식에 대한 식탐은 보는 사람마다 고개를 내저을 정도였다. 어느 것 하나 사람 같은 모습을 갖추지 못한 그는 밖에선 평이 무척 좋았다. 원래 집구석에서 인정 못 받는 한심한 위인일수록 나가서는 더 잘하는 법이다. 타인에겐 한없이 너그럽고 인자해도 가족에게 베푸는 것은 아까워하는 그런 인간 밑에서 자란 민철이 과연 뭘 보고 배웠을까?
반면에 시어머니는 모든 면에서 삶을 포기한 듯 보이는 사람이었다. 어차피 자기 뜻대로 되는 인생이 아니었다. 경제권을 틀어쥔 채 들었다 놨다 하는 위인과 평생을 살며 터득한 나름의 생존전략인지도 모른다. 만사가 귀찮은 그녀의 그런 모습들이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겐 충분히 점잖은 것으로 비쳤을 테다. 어찌 보면 여자의 삶으로선 꽤 불쌍한 삶이었지만, 막상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될 대로 되라고 하며 내던진 삶이었다.


곱게 기른 꽃밭을 누군가가 망치려 든다면 좋아할 사람은 없을 테다. 여기까지 썼다면 내친김에 그 귀한 음식에 감히 손대선 안 된다는 걸 한 번 더 확실히 해 두어야 한다. 원래 먹는 걸로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만큼 기분 나쁘거나 서러운 일도 없다. 물론 여기에서는 그렇게 해서라도 민철의 감정에 흠집을 내려는 서우의 마음에 손을 들어줘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스토리의 힘이기 때문이다.


이번엔 망설임의 시간이 조금 더 길었다. 서우는 이럴 때 한 번 더 질러줘야 한다는 걸 안다.
"아까부터 왜 거기서 서성이고 있어?"
"아, 밥이나 먹고 출근할까 싶어서……."
"먹을 만한 반찬도 없을 텐데 뭐 하고 먹으려고?"
버젓이 새로 해 놓은 국이 있지만, 재차 '너 따위'에게 먹일 국은 아니라는 걸 다짐받는 어투였다. 눈치를 채고 물러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모른다고 해도 상관이 없다. 어디 하루 이틀 일이던가?
"아, 아니, 그냥 출근해야겠네. 생각해 보니 늦을지도 모르겠네."
몇 초간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기어이 포기하고 돌아설 모양이었다. 제 손으로 차려먹기 싫은 마음이 앞선 듯 보이지만, 정작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에 절대 손을 댈 수 없다는 걸 명백히 알아차린 것이다.
자동도어록의 잠금 소리가 들렸다. 주방에서 버티고 서 있던 그 3분 남짓한 시간을 외면하길 잘했다. 이 꼭두새벽에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구청에서 뭘 할지는 하등의 관심이 없다. 밖에 나가서 누가 보건 말건 아무 데서나 줄담배나 처피워대고 편의점을 들락날락하며 군것질이나 하고 있을 민철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든지 말든지 서우는 신경을 끄기로 했다. 경제적으로 손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자기 털끝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밖에 나가서 무슨 짓을 하든 무시하기로 했다.


일단 첫 회분만 썼다.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이 소설을 쓴 나 역시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뿐이지만, 그저 어느 정도는 읽을 만한 꼴이 되었으면 좋겠다.




소설 쓰기 팁 6. 실생활에서 소재 건져 올리기


소설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당신이 직접 경험한 일에 대해 쓰는 것이 가장 좋다. 이런 일이라면 어떤 자료 조사도 필요하지 않고, 굳이 그 일을 겪은 사람을 찾아 인터뷰하지 않아도 된다. 만약 당신이 직접 경험한 일에 대해서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가능하다면 '어떤 일'을 둘러싸고 당신에게 일어난 다양한 감정들의 흐름에 대해 써 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일이 일어난 당시의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다. 게다가 우리가 점쟁이가 아닌 이상 타인의 마음을 어찌 알겠는가?

소설을 써 보기에 앞서 메모장을 꺼내어 어떤 일이 당신에게 있었는지 떠올려 보자. 또 그때 당신에게 일어났던 감정을 하나하나 적어 보자.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일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당신의 가족이나 혹은 직장 동료 및 지인들의 말과 행동을 써 보고,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그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를 짐작해서 써 보자.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9화당신의 직업에서 첫 소설을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