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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 이야기

소설 쓰기, 그 여덟 번째 이야기

by 다작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축복스러운 문학 활동은 시 쓰기다. 그리고 다른 축에는 같은 가치로서의 소설 쓰기가 있다. 물론 태초의 모든 문학의 시원이 집단무가인 걸 감안하면 소설보다는 시에 무게가 더 실린다. 여기에서 문학 활동이라 함은 말이나 글로써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을 말하는데, 시와 소설은 문학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다. 즉 시를 쓰고 소설을 쓴다는 것은 문학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활동이라는 것이다.

의외로 사람들은 소설 쓰기를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흔히 글을 쓰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쓰는 글은 아무래도 에세이, 즉 수필로 시작하는 듯하다. 수필에도 일종의 방법론이 있을 테지만,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 누구라도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극히 사견이기는 하나, 글쓰기의 최종적인 도착점은 시 쓰기 혹은 소설 쓰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대체로 우리는 아무나 소설을 쓸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어떤 측면에선 꽤 신빙성 있게 여겨지는 것도 우리가 소설 쓰기를 주저하는 이유가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소설을 쓰려면 이것저것 알아야 할 사항들이 많다. 예를 들어 소설 구성의 3요소를 떠올려 보면 보다 더 명확해진다. 모두가 알고 있듯 소설 구성의 3요소는 인물, 사건, 그리고 배경이다. 어떤 시대를 살아가면서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크고 작은 일들을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곧 소설이다. 그렇다면 소설을 구성한다는 건 이야기의 배경을 설정하고, 어떤 인물들을 등장시킬 것인지를 결정하며, 또 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어떤 일들을 작품 속에서 보여줄 것인지 등에 대해 구성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솔직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봤을 때, 소설 구성에 있어서 인물과 사건과 배경 중 어떤 것을 가장 먼저 설정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거의 동시다발로 이루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때로는 각각의 요소가 순차적으로 발생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에 이 세 가지 구성요소의 설정에 있어 내가 어떤 식으로 접근했는지를 일례로 들까 한다. 원래는 작품성이 보장된 기존 소설을 거론하는 것이 맞겠지만, 설명의 편의를 위해 불가피하게 나의 단편소설인 『언니의 외출』을 예로 들어보겠다.


어느 날 밤, 나는 잠을 자기 위해 방에 누워 있었다. 문득 한 여인이 떠올랐다. 내가 알던 여인이 아니라 느닷없이 머릿속에 등장한 여인('인물')이었다. 그 여인은 지금 자신의 방('배경') 안에 있다. 일반 주택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리 부유해 보이지 않는 집이다. 그 여인은 내게 자기를 따라오라는 듯 가만히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상상 속에서 나는 그 여인의 동태를 예의 주시한다. 아직 잠에서 깰 시간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한밤중이어야 할 시간이었다. 문을 최대한 소리 나지 않게 열고 그녀는 밖으로 나갔다('사건'). 몇 가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혼자 자다가 일어나 잠시 나갔다 온다면 그다지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게 못 된다. 그래서 난 그녀의 방에 또 다른 사람('인물')을 등장시키기로 했다. 그리고 그 인물 때문에 주인공이 밖으로 나가는 걸 들키지 않아야 할 만한 상황을 생각했다. 대개 이런 상황이라면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혼날까 싶어서 들키지 않으려는 것과 아니면 반대로 그를 걱정시키지 않으려는 것 등이겠다. 만약 전자라면 새로 등장한 인물은 그녀보다 연장자일 가능성이 높을 테고, 후자에 해당한다면 연령에 제한이 없지 않을까? 이처럼 인물과 인물 사이에서의 어떤 말과 행동의 머뭇거림이나 선택 상황 등이 발생하면 갈등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때의 갈등은 사건의 전개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일단 나는 그때까지 생각했던 것들로 몇 개의 문장으로 한 문단을 적어 보았다.


(A) 한 시간이 지났다. 발소리도, 문 열고 닫는 소리도 최대한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한다. 방 안에 들어오자 한숨부터 내질렀다. 나는 안쪽에서 문을 잠갔다. 자다가 일어나 밖을 나갈 때는 그럴 수 없지만, 한 시간 후에 돌아오면 반드시 문을 잠가야 한다. 물론 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몇 번이나 확인을 해야 잠에 들 수 있다. 거실 건너 큰방에 엄연히 아빠가 있는데도, 나는 단 한 번도 문 잠그는 것을 잊지 않는다.


여기에서 읽는 사람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은, 왜 그녀가 자다 말고 일어나 1시간 동안이나 밖으로 나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분명 뭔가 비밀이 있어야 했다. 이때 설정한 비밀은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 내내 독자의 호기심을 이끌어낼 수 있다. 뻔히 다 아는 얘기라면 굳이 시간을 들여서 읽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의 비밀은 문을 몰래 열고 나갔다 들어오는 그녀의 행동과 원인을 필연적으로 수반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비밀은 바로 친족 간에 벌어지는 성폭력이었다.

그래서인지 막상 위의 경우처럼 몇 문장을 적고 보니 문제가 생겼다. 그다지 흥미를 못 이끌어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 즉 비밀을 담은 인물이 자신의 행동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경우엔 비밀을 가진 사람이 직접 사건을 얘기하는 게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다. 이미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비밀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고나 할까? 그러면 이때 설정한 화자인 '나'보다는 아무래도 비밀을 가진 사람을 옆에서 바라보는 시각(또 다른 인물의 등장)이 더 합당해 보인다. 여기에서 바로 '시점'이라는 문제가 떠오르게 된다.


시점은 작품 속의 화자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 위해 시선의 각도, 서술의 발화점, 그리고 관점 등을 뜻한다(☞ 다음 백과, <시점> 항목 참조)고 한다. 학자마다 여러 방식으로 시점을 분류하고 있는데, 현재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은, 1인칭 주인공 시점, 1인칭 관찰자 시점, 작가관찰자(제한적) 시점, 그리고 전지적 작가 시점 등 네 가지다. 어쨌거나 각각의 시점을 요약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1인칭 주인공 시점

'나'가 화자로 등장하는 소설로, '나'라는 등장인물이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되어 사건을 서술한다. 작품 속의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에 적합한 표현 방식인데, 인물의 초점과 서술의 초점이 일치하고 자유자재로 사건을 내밀하게 분석할 수 있고 심리 묘사가 가능하다.


(2) 1인칭 관찰자 시점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인 '나'가 주인공의 이야기를 서술하는데, 여기에서 '나'는 단순한 관찰자이며 주인공은 별도로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인물의 초점은 주인공에게 있기 때문에 모든 서술은, 단지 '나'의 눈에 비친 세계만을 그려낼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3) 3인칭 제한적 시점(작가관찰자 시점)

화자가 특정의 이름이나 '그', '그녀', '그들'이라는 적당한 칭호로 등장인물들에 대해서 서술하는 방식으로, 화자가 제삼자로서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자기 자신을 이야기 속에 있는 하나의 등장인물로 한정시키는 표현 방식이다. 서술자가 외부관찰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므로 1인칭 시점에 비해 서술의 범위가 훨씬 광범위하고 일체의 해설이나 평가를 내리지 않고 객관적인 태도로 외부적인 사실만을 관찰하고 묘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극적이고 객관적인 특성 때문에 현대 사실주의 소설에 많이 사용되는 시점이다.


(4) 3인칭 전지적 시점(전지적 작가 시점)

화자가 특정의 이름이나 '그'·'그녀'·'그들'이라는 적당한 칭호로 등장인물들에 대해서 서술하는 방식인데, 화자가 화자가 사건이나 등장인물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표현 방식이다. 등장인물의 말이나 행위 중 자기가 선택하는 것만을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의 사고, 감정, 그리고 동기 등을 자유롭게 들여다보는 특권을 가진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서술자가 작품 속에 폭넓게 관여하므로 작가가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비평이 가능하다.


이들 외에도 아주 희박하게 볼 수 있는 2인칭 시점도 있다. 나무위키에서 '소설의 시점' 항목을 찾아보면, '2인칭 시점'은 실제로는 '(서술자에 따른) 소설의 시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1인칭 또는 3인칭 시점에서 주어로 쓰이는 인칭대명사에서 단지 '너'만 도입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굳이 이런 시점이 있다고 운운하는 것은 작품의 서술자가 독자를 작중 등장인물과 동일화해 독자에게 이야기하듯 진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리 서술자가 2인칭 대명사로 지칭된다고 해도 독자에게는 그저 제3의 인물일 뿐이며, 그 시점을 가진 주체는 스스로를 1인칭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2인칭 시점이라는 것은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결국 2인칭 시점이라고 불리는 문체 자체의 특징이 분명히 있기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글의 스타일이나 기교일 뿐 별개의 시점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한 편의 소설을 쓸 때 우리는 각 시점의 특징에 맞춰 쓸 수 있다. 어떤 작품이냐에 따라 그 의도하는 바를 가장 적절하게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시점을 선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작품을 쓰는 중간에도 얼마든지 시점에 변화를 주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가령 다음의 문단을 한 번 보자.


(B) 한 시간이 지나서야 언니가 들어왔다. 발소리도, 문 열고 닫는 소리도 최대한 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느껴졌다. 방 안에 들어오자 한숨을 내지른다. 안쪽에서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자다가 일어나 밖을 나갈 때는 그럴 수 없지만, 한 시간 후 다시 돌아오면 언니는 반드시 문을 잠근다. 그것도 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몇 번이나 확인한 뒤에 언니는 잠에 든다. 거실 건너 큰방에 엄연히 아빠가 있는데도 언니는 단 한 번도 문 잠그는 것을 잊지 않는다. 단 둘이 있는 거면 모르겠지만 아빠가 있는데 습관처럼 그러는 모습을 보면 사실 이해가 안 간다.


(A)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사건을 서술해 가는 방식인데, 내가 이 소설을 제일 처음 구상했을 때 도입한 방식이다. 앞서 말했듯 작품 속의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에 인물의 초점과 서술의 초점이 일치하고 자유롭게 사건의 내적 분석과 심리 묘사가 가능하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주인공을 제외한 다른 등장인물, 여기에서는 특히 언니의 모습(말, 행동 등)에 대해 서술할 때 제약이 많이 따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과연 이 작품에서 주인공이 '나'라고 단정 지을 수 있겠냐는 문제가 따른다. 전체 내용을 보면 엄연히 주인공인 언니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불가피하게 시점에 변화를 줘야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글이 (B)다. (B)는 3인칭 제한적 시점(작가관찰자 시점)인데, 이 시점에 따라 작품을 서술하면 서술자인 동생이 외부관찰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므로 1인칭 시점에 비해 서술의 범위가 훨씬 광범위하고 객관적인 태도로 외부적인 사실만을 관찰하고 묘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소설을 쓸 때 정해진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설령 그런 것이 있다고 해도 습작 단계에 있는 나 같은 아마추어 작가지망생이나 이제 본격적으로 소설을 써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별 도움도 되지 않는다. 작품의 시공간적 배경을 설정할 때,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때,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서술할 때 너무 한꺼번에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말고, 하나하나 풀어 나가 보면 어떨까? 즉 내 얘기는 어떤 형태로든 쓰다 보면 서서히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직접 부딪쳐 보는 것 외에는 그 어떤 방법도 없을지도 모른다.




소설 쓰기 팁 5. 시점을 바꿔가며 글 쓰기


소년은 개울가에서 소녀를 보자 곧 윤초시네 증손녀 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소녀는 개울에다 손을 잠그고 물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서는 이런 개울물을 보지 못하기나 한 듯이.
벌써 며칠째 소녀는 학교서 돌아오는 길에 물장난이었다. 그런데 어제까지 개울 기슭에서 하더니 오늘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서 하고 있다.


모든 글은 상황에 따라서 그 서술의 시점을 바꿀 수 있다. 위의 예시 글은 고 황순원 선생의 「소나기」의 일부분이다. 일단 표현한 걸로 보면 3인칭 제한적 시점, 작가관찰자 시점으로 보인다. 연습 삼아 이 두 문단을 각각 1인칭 주인공 시점과 3인칭 전지적 시점으로 바꿔 써 보자.

만약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쓸 때는 소년의 입장이든 소녀의 입장이든 한 가지를 택할 수 있는데, 각각 그때의 소년 및 소녀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즉 주인공의 세밀한 심리 묘사를 돋보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이겠다.

또 3인칭 전지적 시점(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표현할 때는 소년과 소녀의 모든 행동과 사고, 감정, 그리고 동기 등을 자유롭게 살릴 수 있다는 장점을 살리는 게 좋지 않을까?


(1) 3인칭 제한적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2) 3인칭 제한적 시점 ☞ 3인칭 전지적 시점(전지적 작가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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