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기, 그 여섯 번째 이야기
드디어 삶을 마감하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은 한 청년이 결행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길에서 돌아다니는 개 한 마리를 보게 된다. 혼자 외롭게 배회하는 개의 모습이 삶의 의욕을 상실한 채 떠돌아다니는 자신과 같다고 느꼈다. 어딜 가든 줄곧 따라다니는 개를 보며, 남자는 비로소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개를 돌보기 위해 자살을 포기하고 건실하게 살아가게 된다. 꽤 오래 전의 내 얘기다. 안타깝게도 그때의 그 개는 내 옆에 있지 않다. 어느 순간엔가 다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마치 그 결심을 확인이라도 했다는 듯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 일이 내가 처음으로 소설을 쓰게 된 계기였다. 아마도 내 기억이 맞다면 A4 용지로 10장 안팎을 썼던 걸로 알고 있다. 대체로 A4 9장 안팎이 단편소설의 분량인 걸 감안하면 내 처녀작은 단편의 기준치를 약간 넘는다. 완성했을 당시엔 어쩌면 그것이 내게 삶의 새로운 의욕을 선사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 작품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도 몰랐다. 야구를 봐도 어떤 선수가 첫 안타나 첫 홈런을 치거나 혹은 첫 타점을 내면 그 공을 어떻게든 회수해서 해당 선수에게 기념으로 주곤 한다. 타자만 그런 게 아니라 투수도 마찬가지다. 첫 삼진, 첫 세이브, 첫 승을 해도 공을 준다. 시쳇말로 이건 국룰이다.
명색이 소설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하면서 아쉽게도 이 첫 소설은 내게 남아 있지 않다. 그것도 몇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마도 몇 번인가 컴퓨터를 바꾸며 이전 자료를 새 컴퓨터로 옮기는 과정에서 유실한 모양이었다. 사실 지금이라도 읽어본다면 형식만 소설을 본땄을 뿐이지, 그건 결코 소설이라고 칭할 수 없는 글이었다. 시점 처리, 배경 및 심리 묘사, 대화 서술 방식과 그 내용의 수준 등 하나부터 열까지 유치하기 짝이 없던 글이었다. 그래도 첫 소설인데, 하는 생각이 드니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지금 다시 쓴다면 그때보다는 훨씬 더 잘 쓸 자신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다시 쓰고 싶은 마음까지는 없다. 물론 이러다가 또 언젠가 필(feel)을 받으면 언제라도 쓸지는 모르겠다. 지금으로서는 안타까워도 기억 저편에 묻어둬야 할 것 같다.
첫 소설을 쓴 이후로 근 30여 동안 소설을 써왔던 건 아니었다. 그 소설을 완성한 후 최소 4~5년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고, 중간중간에 몇 년 정도씩은 글을 전혀 쓰지 않기도 했다. 그러던 중 직장을 다니면서 동화책 몇 권을 읽고 난 뒤에 느닷없이 다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았다.
'나도 동화나 한 번 써 볼까?'
그런 생각까지는 기특했지만, 당시 그런 내 태도엔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 '동화를'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써야 할 글을 '동화나'라고 생각하고 덤벼들었으니 잘 될 턱이 없었다. 게다가 아무 지식도 없이, 그 흔한 문학 이론이나 동화 작법에 대한 이해도 전혀 없이 무턱대고 글을 썼었다. 그때 쓴 첫 동화가 작은 공모전에서 최종심에 오르게 되었다. 신문지면에 내 이름 석 자가 당당히 인쇄된 영광을 안아보기도 했던 나는, 그때만 해도 내게 글을 쓰는 재주가 꽤 있는 줄 알았다. 왜 그렇지 않았겠는가? 난생처음 써 본 동화가 덜컥 최종심까지 올랐으니 조금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었겠나 싶다.
대략 5년 정도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응모했었다. 결과는 보나 마나였다. 이후로는 최종심은커녕 본심에도 오르지 못했던 걸로 알고 있다. 아마도 일간지나 문예지 지면 등에 전혀 언급이 없는 걸 보면 예심도 통과하지 못했다고 생각된다. 그래도 동화를 쓰는 그 기간 동안 글을 쓰는 게 더없이 좋았다.
왜 더 잘 쓰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기본도 없고 글 재주도 시원찮은 형편에 그저 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늘 동화라는 장르의 특수성 때문에 작품을 쓸 때마다, 혹은 쓴 작품을 공모전에 제출할 때마다 좌절을 맛봐야 했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 낱말 선택은 물론 서술이나 묘사에 있어서도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였을까? 문득 최종심에 올랐던 그 첫 동화를 소설로 각색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난 지금처럼 소설을 쓰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내가 쓴 것이 「마이 네임 이즈 케빈」이었다.
난 소설을 쓸 때 소설창작론 등에 의존하지 않는다. 부끄럽게도 난 그런 거 잘 모른다. 아니 굳이 알고 싶은 마음도 없다. 집에 웬만한 소설창작론이나 소설 작법에 대한 책은 많지만, 어디까지나 참고만 할 뿐이다. 물론 어느 정도 체계적으로 공부한다면 내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테고, 그 결과 더 나은 소설을 쓸 순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난 무엇이든 많이 해본 놈이 더 잘하게 될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보다 더 쉽고 빠른 길보다는 느리지만 어쩌면 가장 확실한 방법을 선택했다. 굳이 여기에서 이름을 붙이자면 나의 「소설 창작론」 정도가 되지 않을까?
첫째, 그 어떤 글이든 나는 쓸 수 있다는 마인드컨트롤을 먼저 한다. 시작도 하기 전에 겁을 너무 집어 먹는다면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난 이 마인드컨트롤로 적지 않은 소설을 완성했다. 물론 여기에서 작품성이나 소설적 형태로서의 완성도는 따지려 하지 않는다. 늘 내가 하는 말이지만, 이것저것 다 따지면 이 세상에 그 어느 누구도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마음을 통제하며 소설 집필에 몰두한 결과 단편과 중편, 그리고 장편까지 적지 않은 소설을 썼다. 아마도 처음부터 마음을 그렇게 먹지 않았으면 어찌 되었든 끝까지 쓰지 못했을 테다. 다만 지금 쓰고 있는 단편소설 역시 완결이 될지 중도에 포기할지 현재로서는 나도 모른다. 그저 글이 이끄는 대로 따라갈 뿐이다.
둘째, 내부 검열관의 말은 철저히 무시하기로 한다. 내부 검열관은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비하를 하고 어떻게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말한다. 흔히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초자아를 나타낸다고 하는데, 글을 써 본 사람들은 이 내부 검열관의 존재를 자주 확인한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적어도 몇 번은 대면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 고약한 녀석은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언제든 어디에서든 출몰한다. 특히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나서 그 글을 어딘가에 올리려고 할 때 '이딴 것도 글이냐'라고 하거나 '어떻게 고작 이런 글을 온라인상에 올릴 생각을 하느냐'라는 식으로 말을 걸어오곤 한다. 물론 타인의 귀엔 그 목소리가 결코 들리지 않는다. 오직 내게만 들릴 뿐이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글을 발행하려 할 때 더 멈칫거리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솔직히 그 상황에선 그의 말을 듣고 싶어지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최소한 그의 말에 따라 글의 발행을 일단 보류하면 타인의 냉대한 시선이나 따가운 질책, 그리고 성의 없거나 부정적인 내용의 댓글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즉 괜스레 글을 올렸다가 망신이라도 당하거나 사람들이 흉을 보면 어쩌나 싶은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게 된다. 그래도 글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발행이 우선 목표이니 난 녀석을 철저히 무시하는 방법을 택했다. 만약 녀석의 말에 따른다면 나는 이 공간에 소설은커녕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올리지 못하게 될 게 뻔하다.
셋째, 나는 소설 속의 문장을 쓸 때, 그리고 문단을 쓸 때 '1+1', '1+1+1', '1+1+1+1' 등과 같은 방식으로 쓴다. 쉽게 말해서 최초의 문장 하나를 쓰고, 이어서 그다음 문장을, 또 거기에 그 다음다음 문장을 덧쓰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지금까지 내가 쓴 모든 소설들이 그렇게 해서 완성되었다. 우선 맨 먼저 떠오른 문장을 단숨에 빈 화면에 적는다. 가령 「이 남자의 영업 비밀」은 이런 최초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P그룹 본사 사원 연수실로 안내받은 나는 긴 복도를 따라가며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모든 글(특히 소설)이 그렇듯 일과 중에 교육을 받으러 간 호텔 라운지의 카펫을 밟으며 걷던 도중에 떠오른 문장이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고작 그 한 문장이 완성되는가 싶더니 며칠 후 한 편의 소설로 변신했다. 이후 두 번째 문장이나 그다음 혹은 그 다음다음의 쓸 때 목표는 간단하다. 무조건 앞 문장과 이어지게 쓰면 된다. 다른 건 생각하지 않는다. 문장을 쓰는 단계에서 낱말 선택이나 표현을 조금 더 세밀하게 다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너무 거기에만 생각이 매몰되면 머릿속에 떠오른 다양한 표현들의 대부분을 놓치게 된다. 그건 초고를 완성한 뒤에 다시 되돌아와 수정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 만약 누군가에게 내 소설을 보였을 때 어떤 악평이 쏟아지더라도 마음을 다잡는다. 차라리 이럴 때에는 내 마음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모로 보나 낫다. 어차피 내가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그건 가족도 모른다. 물론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그걸 굳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건 어디까지나 내게만 중요한 의미를 지닐 뿐이다. 그래서인지 내 소설을 읽었을 때 간혹 악평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악평은 충분히 참고는 하되 좌절은 절대 금물이다. 좌절이 이어지면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그런 좌절이 지속되면 소설은 고사하고 일상적인 글도 쓰기가 힘들어진다.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그냥 굳게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그래서 한 번 덮어놓으면 어지간해선 뒤집어 놓을 수 없는 콘크리트라며 생각하라는 것이다.
지금의 나로서는 더 많은 소설을 쓰는 것이 목표다. 쓰다 쓰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보다 훨씬 더 근사한 소설을 쓰게 될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소설을 쓴다.
소설 쓰기 팁 4, 최초의 문장 쓰기 그리고 문장 이어가기
내친김에 최초의 문장을 던져보는 연습을 해 보자. 앞에서 예시로 든 「이 남자의 영업 비밀」의 첫 문장(이미 완성한 소설이니 여기에서는 첫 문장이라고 지칭하는 게 옳을 것 같다)을 옮겨 본다.
1단계: 최초의 문장 쓰기
☞ P그룹 본사 사원 연수실로 안내받은 나는 긴 복도를 따라가며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다음 단계는 '1+1', '1+1+1', '1+1+1+1'과 같은 방식으로 문장을 덧붙이는 것이다. 당장의 목표는 대략 한 문단 정도를 쓰면 되지 않을까 싶다. 더러 어색한 감이 있더라도 일단 쓰고 보자. 견딜 수 없을 정도라고 해도 나중에 수정하면 된다. 물론 그렇게 되면 최초의 문장을 제외한 나머지 문장을 모두 손봐야 할 것이다.
2단계: 문장 이어가기
☞ P그룹 본사 사원 연수실로 안내받은 나는 긴 복도를 따라가며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내가 어느새 이런 곳에까지 초청을 받아 오게 되다니…….’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다. 모든 게 단행본 판매 실적 덕분이었다. 약 3주 전에 출판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 책까지 포함하면 총 네 권을 그곳에서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