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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이야기 2

소설 쓰기, 그 다섯 번째 이야기

by 다작이

인터넷 서점 등에서 '첫 문장'이란 단어로 책을 검색하면 무려 50여 권이 넘는 책들이 소개되고 있다. 하긴 이것도 꽤 오래전에 검색했던 것이니 지금은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만큼 글쓰기에 있어서 '첫 문장 쓰기의 중요성'이 어디에서든 강조되고 있다는 반증이겠다. 즉 작품을 집필하는 데 있어 모든 사람들이 강조하는 것이 바로 첫 문장 쓰기가 아닌가 싶다. 심지어 그건 전문작가의 생각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각종 공모전에서 심사를 맡은 이들도 예외 없이 강조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첫 문장을 쓰는 게 너무 어렵다며 호소하곤 한다.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나는 마치 그 첫 문장을 쉽게 쓰고 있는 것처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렵고 쉬운 정도를 말하는 게 아니라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그놈의 '첫 문장'을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사실 '시작이 반'이라는 말까지 있는 것만 보더라도, 첫 문장만 써도 그 글의 절반을 쓴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로 첫 문장 쓰기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 난제가 아닐 수 없다. 뭔가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런 느낌, 적어도 어떤 강렬한 임팩트를 첫 문장에서 독자에게 안겨주고 싶은데,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게 쉽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만큼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것이 아니겠나 싶다.

오죽하면 인터넷에 검색한 결과 주옥같은 작품들이라며 그 작품 속에 적힌 첫 문장이 예시로 나와 있을 정도였다.


여름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려 놓은 전시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었다. ☞ 현진건, 『운수 좋은 날』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를 보았다. ☞ 김승옥, 『무진기행』
1897년의 한가위.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 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 박경리, 『토지』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언제 떠올랐는지 모를 그믐달이 동녘 하늘에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 조정래, 『태백산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 김훈, 『칼의 노래』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 한강, 『채식주의자』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 집행인이었다. ☞ 정유정, 『7년의 밤』


일단은 인터넷에 소개된 것 중에서 '첫 문장' 몇 개만 뽑아봤다. 물론 내가 다 읽어 본 소설들로만 추렸다. 그래야 이야기하기가 쉬울 테니까.

누가 읽어봐도 잘 쓴 문장이라는 건 분명하다. 최소한 많은 사람들이 찾아서 읽고, 또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라는 것만 봐도 그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걸 일종의 좌절감에 빠진다고 해야 할까? 이미 사람들에게서 좋은 작품들로 인정받은 소설들의 첫 문장을 읽으면, 이렇게 쓰니까 사람들에게서 사랑받는 작품이 되는구나,라는 생각에 빠지게 한다. 더러는 첫 문장이라는 것이 작품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결과 글을 쓰는 사람들은 첫 문장에 집착 아닌 집착을 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예를 들어 공모전에 작품을 제출했다고 가정한다면 심사위원들이 작게는 수백 편에서 많게는 천 편이 넘어가는 그 많은 작품을 일일이 읽어 본다고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결국 심사위원들은 '첫 문장'을 포함해, 짧게는 한두 문단에서 길어봤자 A4 1장 정도를 읽을까 말까 하지 않겠냐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건 앞의 글인 '첫 문장 이야기 1'에서도 이미 얘기한 바가 있다. 사정이 그러니 사람들은 이 '첫 문장'에 지나칠 정도로 공을 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첫 문장'을 멋지게 쓴 사람이, 그다음 문장들을 엉망진창으로 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첫 문장의 중요성을 조금은 퇴색시켰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냥 쉽게 얘기해서 모든 문장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그건 어떤 글에서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연히 스토리가 위주인 소설 쓰기에서는 보다 더 긴 호흡이 필요할 테니, 각 문장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겠다.


소설 쓰기라는 것은 결국 수백 혹은 수천 개의 문장이 연결되어 한 편의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작업이다. 그건 마치 여러 개의 객차가 체인에 연결되어 목적지로 가는 기차와도 같은 것이다. 연결된 객차의 수가 많을수록 운행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KTX나 SRT처럼 속력이 빠른 기차일수록 운행 전에 더 세밀한 점검이 필요하듯, 단편소설을 쓸 때보다 중편소설에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고, 장편소설을 쓰는 경우에는 아예 새로운 차원의 접근이 필요할 수도 있다. 비록 소설가는 아니지만, 내가 소설을 써 본 일천한 경험을 떠올려 봐도 이건 명백한 사실인 듯하다.

좋다. 단편이건 중편이건 혹은 장편을 쓰건 간에 소설의 서막을 여는 것은 그 작품의 첫 문장이라는 건 인정한다. 일단 여기에서는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첫 문장'이라고 지칭을 하고 넘어가겠다. 많은 작가들이 초고 상태의 원고를 퇴고할 때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 바로 첫 문장 다듬기라는 건 누구나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첫 문장은 작품을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만나게 되기 때문에 사실상 그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라 하겠다. 게다가 앞서 말한 것처럼 각종 공모전이나 신춘문예 등에서 심사위원들이 가장 눈여겨보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서 누군가가 제출한 작품의 '첫 문장'이 사람을 사로잡을 만한 정도가 된다면 일단 그 원고는 합격점을 부여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자, 그렇다면 위에서 예시로 든 위의 작품들의 첫 문장을 다시 한번 읽어 보자.

어떤가? 시쳇말로 임팩트가 확, 하고 느껴지는 것 같은가? 첫 문장의 중요성을 말할 때마다 늘 거론되는 그 부분, 즉 첫 문장을 읽었을 때 도무지 그다음을 읽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강렬한 충동이 느껴지느냐고 묻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이 문장들을 읽었을 때, 반드시 다음 문장을 계속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그 뒤가 궁금해서 도무지 견딜 수 없다는 생각까지 들지도 않는다. 그나마 조세희 선생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한강 씨의 『채식주의자』, 그리고 정유정 씨의 『7년의 밤』 정도는 궁금증을 자아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이들을 끝까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는 않는다. 물론 이건 어쩌면 내가 이 작품들을 이미 다 읽어봤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위에 열거한 그 어떤 작품도 읽지 않았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문득 읽었느냐 안 읽었느냐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작품을 쓴 작가의 유명세 따위가 작품을 끝까지 읽게 하는 추동력을 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예를 들어 김훈 선생이나 박경리 선생이나 혹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라면 믿고 읽을 수 있다, 하는 그런 생각들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건 어쩌면 '첫 문장'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다는 얘기가 되는 게 아닐까?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유명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설국』의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이 왜 그렇게도 유명한지 당신은 이해가 가는가? 나처럼 작품성이 높다고 인정받은 이 작품의 첫 문장에서도 별 감흥이 없다면 백 번 양보해 첫 문단을 고스란히 옮겨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예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솔직히 나는 모르겠다. 그리 길지 않은 소설이라 내 기억으로는 최소한 두세 번은 읽은 작품이었다. 물론 내가 이 소설을 소화할 만한 식견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첫 문장의 아름다움이나 위력을 이해하기는커녕 첫 문단 전체를 통째로 옮겨 놓아도 별다른 감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 말은 곧, 거의 정설처럼 믿고 받아들이는 첫 문장의 중요성이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앞에서 잠시 말했듯 나는 조금은 다른 얘기를 해 볼까 한다. 과연 첫 문장 쓰기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믿는지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정말 첫 문장만 잘 시작하면 작품의 절반은 쓴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설령 그것이 명백한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완벽한 첫 문장 쓰기에 너무 집착하면 그 어떤 글도 쓸 수 없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첫 문장의 중요성을 따진다면 바로 이어지는 문장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고, 그 다음다음 문장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말은 곧 어느 문장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뜻일 텐데, 왜 유독 첫 문장에 그리 집착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히려 작품의 맨 마지막 문장 역시 첫 문장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닐까? 기껏 작품을 읽는 동안 유지되어 왔던 감흥이 마지막 문장 하나로 일시에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겠다. 그렇게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작품의 집필에 있어 텐션을 유지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사실 내게 첫 문장은 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의미 외엔 아무것도 없다. 적지 않은 글을 써온 나는 그만큼 첫 문장을 많이 썼다. 소설은 물론 수필까지 최근 2년 반 넘는 시간 동안 대략 3천여 편에 이르는 글을 썼다. 단순하게 계산해 봐도 내게는 그놈의 첫 문장이 무려 3천 개나 있는 셈이다. 물론 누군가가 내게 '3천 개나 되는 첫 문장을 제대로 쓰지 않았으니 당신의 글에는 그만큼 임팩트가 없는 것이다'라고 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우선 내가 쓴 첫 문장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왜냐하면 글이 완성되면 어김없이 첫 문장을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처음부터 완벽하게 쓰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 어떤 문장이든 문장 완성에 있어 끝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는 건, 글을 쓰고 있는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수정한 문장을 점심때 읽어 보면 너저분하기 짝이 없고, 그렇게 고심을 들여 다시 고쳐봐도 저녁에 보면 이것도 문장이라고 썼나 싶을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내가 처음 썼던 문장의 원형은 온데간데없게 되고 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있던 문장 중의 하나가 앞으로 밀고 들어와 떡 하니 버티고 있을 때도 부지기수다. 심지어 그렇게 공들여 쓴 첫 문장을 통째로 삭제하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다.


최소한 작가도 아닌 내가 감히 첫 문장 쓰기의 중요성을 부인하려는 게 아니다. 전문 작가들도 그렇게 강조하는 첫 문장을 내가 뭐라고 평가절하하겠는가? 당연히 첫 문장을 써야 작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도 맞는 말이고, 첫 문장이 있어야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들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첫 문장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내 창작 태도가, 더 나은 글을 쓰는 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지도 모른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인정한다. 다만 첫 문장 쓰기의 중요성에 너무 함몰되다 보면 오히려 글을 쓰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될 소지가 크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첫 문장을 못 써서 자신의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면, 스토리부터 시작해서 인물의 구성과 배경까지 완벽히 세팅이 되었는데도 첫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글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때 첫 문장이라는 것은 분명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있어 장애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난, 첫 문장 쓰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글을 쓸 때는, 특히 소설을 쓸 때는 일단 어떤 문장이든 떠오르는 대로 하나를 던져놓는 게 중요하다. 그게 그 소설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격이다. 그렇게 던진 문장이 내 글의 '첫 문장'이 될 수도 있고, 아예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 뒤를 이어 만들어 놓은 문장이 첫 문장으로 밀고 들어올 수도 있다. 어쩌면 일종의 발상의 전환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처음 쓰게 된 문장에게 '넌 내 글의 첫 문장이 아니라 최초의 문장이다'라며 슬며시 못 박아 두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최초의 한 문장을 쓰고, 새로운 문장을 더 보태는 것이 글쓰기다.


스위스의 로제마리 마이어 델 올리브라는 사람이 한 말이다. 글쓰기 강의를 하는 사람이라고 하니 글쓰기 코칭 전문가쯤 되는 모양이다. 물론 이 말에서도 글의 첫 문장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딱 세 어절을 주목했으면 한다. 바로 '최초의 한 문장'이라는 대목이다. '최초의 한 문장'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마도 그것이 반드시 그 글의 '첫 문장'이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게다가 뒤이어 나오는 '새로운 문장을 더한다'라는 표현에도 방점을 찍을 필요가 있다.

글을 쓰려는 사람들은 첫 문장에 대한 부담감을 과감하게 떨쳐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담감 때문에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한다면 그런 부담감은 오히려 독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려 한다.


소설(글)에서의 첫 문장 쓰기,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일단 연습 삼아 한 번 툭, 하고 최초의 문장 하나를 던져 놓아 보라. 그 문장을 디딤돌 삼아 바로 뒤의 문장, 거기에 그 다음다음의 문장이 이어지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의 말처럼, 최초의 한 문장에 새로운 문장을 더 보태는 것, 그 과정이 바로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첫 문장'이라는 표현 대신 '최초의 문장'이라는 말을 썼으면 한다. 왜 굳이 멀쩡한 말을 놔두고 '최초'를 언급하느냐 하면 누누이 말했듯 '첫 문장'에 너무 집착하면 작품을 집필하는 데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나는 작품의 '첫 문장'은 없다고 생각하며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첫 문장'이 아니라 '최초의 문장'이라고 인식한다는 말이다. 그 최초의 문장 다음에 또 다른 문장이 오고,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문장이 오는 것이 바로 글이다. 이 과정을 수백 혹은 수천 번 반복하면 작품 한 편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익히 아는 바로 그 첫 문장뿐만 아니라 모든 문장이 똑같이 중요한 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내가 하는 얘기가 그저 말장난에 불과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소설을 쓸 때,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그 빌어먹을 '첫 문장'에서 힘을 덜 빼면, 당신이 소설을 써 나가는 데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나는 장담한다.

첫 문장에 너무 매달리지 않았으면 한다. 그냥 작품을 쓸 때의 '최초의 문장'이라는 의미 정도만 부여하고 소설을 쓰라는 말이다. 그나마 초고를 완성한 상태에서 최초의 문장인 그 첫 문장을 다듬는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고작 작품을 이제 막 쓰기 시작하면서 '첫 문장'을 갈고 다듬는 어리석은 행위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주변에서 소설을 쓰는 사람 중에, 작품 집필의 초기 단계에서 그 '첫 문장'을 두고 골백 번도 더 고치는 사람을 여러 명 본 적이 있다. 바로 이런 경우가, 우리가 인식하는 '첫 문장'의 중요성이 창작자에게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될 것이다.


첫 문장,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첫 문장이 아니라 최초의 문장이라 생각하고, 일단 그 최초의 한 문장을 던져놓은 뒤, 꼬리에 꼬리를 물어 소설을 쓰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 소설 쓰기, 생각하기 1


(1) 교문을 나서자마자 누군가가 차를 멈춰 세웠다.

(2) 어깻죽지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3) 세연을 잃었다. 그것도 한순간에…….

(4) P그룹 본사 사원 연수실로 안내받은 나는 긴 복도를 따라가며 꿈을 꾸는 것 같았다.

(5) 아마도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라면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위의 다섯 문장은, 그동안 내가 쓴 단편소설 중에서 다섯 편을 골라 그 첫 문장을 옮겨 적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중에 단 하나의 문장이 모 공모전에서 최종심까지 올랐던 적이 있는 문장이다. 첫 문장의 가치나 위력으로 봤을 때, 당신은 그 문장이 어느 문장인지 찾을 수 있겠는가? 또는 어떤 첫 문장이 당신에게, 그다음 내용이 궁금해지게 만드는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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