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기, 그 열한 번째 이야기
큰마음먹고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에서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써 보면 금세 커다란 벽에 마주치고 만다. 사람마다 경우가 다르겠지만, 소설을 쓰다 보면 대체로 A4 2장쯤 못 가 막히게 된다. 아니다, 이건 내 경우에 해당한다. 내가 아는 한 지인은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고 시작했는데, A4의 절반을 채우기 힘들었다고 했다.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거나 소설을 쓰는 데에 나름의 단련이 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 이른 순간에 멈추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소설 한 편의 분량이 대체로 어느 정도 될까,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그래도 명색이 소설 한 편 쓰겠다고 덤벼들었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완성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리라.
단편 소설: 200자 원고지 70매 내외
특히 요즘이 신춘문예 공모 시즌이니 각종 공모 안내 요강을 보면 이런 식으로 분량이 책정되어 있다. 더러 어떤 곳에서는 80매를 기준으로 하기도 하고, 심지어 100매 내외라고 명시된 곳을 본 적도 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70, 80, 그리고 100 등은 200자 원고지를 기준으로 한 것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 대단한 어패가 있다. 요즘과 같은 시대에 누가 원고지에 글을 쓴다는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공모전 요강을 보면 아직도 그들은 200자 원고지를 운운하고 있다. 이걸 조금 더 상세하게 이해하려면 우리는 한글 문서 작성 프로그램을 들여다봐야 한다.
한글 문서 작성 프로그램을 사용할 때 초기 설정 상태에서 아무것도 손대지 않으면, 글자 크기는 10포인트, 줄 간격은 160%가 된다. 그 상태에서 그대로 글을 쓰게 되면, A4 1장을 쓸 때 41줄 정도를 쓸 수 있다. 41줄이라고 하면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할 것이다. 대화체가 많거나 문단을 띄운 부분이 많으면 200자 원고지로 최소 8장쯤 되고, 만약 글자가 빡빡한 상황이라면 최대 11장에 이르는 분량이다. 일단 이것만 확인한 뒤에 다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각종 공모전에서 요구하는 소설의 분량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여기에서 각종 공모전이라고 하는 건, 일간지의 신춘문예 공모전과 전문 문학 계간지의 공모전 등을 포함한 것을 뜻한다.
단편: 200자 원고지 70매 내외
중편: 200자 원고지 250~300매 내외
장편: 200자 원고지 1000~1200매 내외
이걸 초기 설정 상태 그대로 글을 쓴다고 가정했을 때, A4 용지로 환산해 보면 아래와 같다고 보면 된다.
단편: A4 7~9매 내외
중편: A4 23~38매 내외
장편: A4 125~150매 내외
여기에서 분량의 상한선과 하한선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앞에서 말했듯 우리가 쓴 글에 대화체로 된 부분이 많으냐, 아니면 묘사나 설명에 의한 부분이 많으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분량을 제시해 놓으면 얼핏 이 정도 못 쓰겠나 싶은 생각이 들 테다. 물론 글쓰기에 익숙한 사람이나, 몇 번이라도 소설이라는 형태의 글을 써 본 사람은 그리 어렵지 않게 쓸 수 있을 테지만, 초보자의 경우 막상 써 보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아니 꽤 어렵다는 걸 느끼곤 한다. 원고지로는 10장 내외, 혹은 A4 용지에 쓸 경우에는 1장 내외를 쓰기가 참 버겁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글쓰기 관련 책을 읽다 보면, 원고지 10장을 쓸 때가 가장 힘들다는 대목을 보곤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게 15매가 되기도 하는데, 오죽하면 인터넷 서점에서 '원고지 10장'이라는 말로 검색하면 버젓이 책까지 나와 있을 정도다. 그 책의 요지는, 원고지 10장만 쓸 수 있다면 그 힘으로 어떤 작품이든 쓸 수 있으니 딱 원고지 10장까지만이라도 써 보자는 것이다. 창작 의지를 불태운다는 점에서, 또 어떻게든 고난을 이겨내고 완결해 보자는 의미에서 보자면 분명 의미 있는 책이긴 하나, 이 말은 조금도 믿을 만한 게 못 된다. 물론 개인적으로 그 책의 내용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고 싶은 마음은 아예 없다.
원고지 10매는 A4 1장이 조금 넘고, 원고지 15매는 A4로 2장이 채 안됩니다. 주로 내가 써 본 경험에 의하면 원고지 15매는 A4 1장과 3/4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아무튼 소설을 쓰다 보면 여기에서 반드시 한 번은 막히게 된다. 그래서일까, 나는 소설의 첫 회를 쓰는 게 가장 어려웠다. 그것만 넘어서면 2회, 3회, 혹은 그 이상 진행되는 것도 별 문제가 없었다. 어쨌거나 이렇게 한 번 막힌 곳에서 겨우 풀어내고 그 고비를 넘어가면 차례차례로 더 많은 장애물에 가로놓이곤 했다. 쉽게 말해서 A4 3장, 4장, 그리고 5장 등 그때마다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는 얘기다.
원래 작품을, 혹은 소설을 쓰다 보면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 처음 시작하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중반부까지 가는 동안 시쳇말로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되고, 종반부로 가면 거의 온몸을 걸레 쥐어짜듯 누군가가 휘어잡고 비틀어대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라도 완결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 과정에서 중도에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단편소설보다 훨씬 분량이 많은 중편소설은 그 정도가 훨씬 더 심하고, 특히 장편소설의 경우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완결을 앞둔 마지막 몇 문단 혹은 몇 문장을 남겨 두었을 때에는 온몸에서 사리가 나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아니다, 이렇게 묻는 게 맞을 것 같다. 별도로 헤쳐 나갈 방법은 사실상 없다. 애석하게도 세상에 그런 비책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다이어트 책을 읽거나 관련된 영상을 열심히 섭렵한다고 해서 살이 빠지는 게 아니듯, 글이란 건 그때그때 닥치는 위기를 어떻게든 이겨내고 자신이 직접 써야 문장이 쌓이는 것이고, 그 문장들이 모이고 모여 결국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달콤한 말에 속지 말았으면 한다. 왜, 마치 특별한 비책이라도 있는 듯 떠도는 항간의 소리들을 달콤한 말이라고 단정을 짓느냐 하면, 진정으로 원고지 10매를 넘기기 어렵다면 앞에서도 말했듯 20매, 30매도 넘기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왕 작품 집필에 들어갔다면 자신의 힘과 의지를 믿고 어떻게든 끝까지 끌고 나가 보는 수밖에 없다. 정 안 되면 쓰다가도 중단해야겠지만, 완결작을 한 편이라도 갖고 싶다면 참고 써 보라는 말 외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소설 쓰기에는 그 어떤 비책도 없다는 걸 명심했으면 한다. 그런 비책은 작품을 쓰는 본인 안에만 있을 뿐이다. 외부에는 그것과 관련된 그 어떤 것도 없으니 괜히 찾는답시고 시간 낭비하는 일이 없기만을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말이 난 김에 브런치에서 소설을 쓸 때의 분량에 대해 얘기해 보고 글을 마치려 한다. 나는 한 회 분의 분량을 대략 원고지 15장 정도로 책정해 놓고 쓰곤 한다. 앞에서 말한 대로 계산하자면, 대략 70줄 정도, 즉 A4 1장과 3/4 정도가 된다. 그 정도 쓰면 한 회 분량이라고 생각하고 웬만하면 끊는다. 너무 짧게 쓰면 읽는 사람에게 허전함을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너무 길면 끝까지 읽고 싶은 마음을 사라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 70줄 혹은 A4 1장과 3/4도 길다는 생각이 든다. 짧은 동영상과 자극적인 사진들에 길들여진 세상이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롭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소설을 처음 쓰는 사람이 그런 글을 쓴다는 건 확률적으로 제로에 가깝다. 가능하다면 소설의 한 회 분으로, 짧으면 A4 1장에서 길면 A4 1장 반 정도를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소설 쓰기 팁 7. 원고지 10~15매 쓰기
말이 난 김에 원고지 10매에서 15매를 목표로 짧은 소설을 한 편 써 보자. 물론 완결의 형태가 아니라도 된다. 흔히 말하는 엽편 소설도 좋고, 단편소설의 첫 회도 좋다. 이럴 때는 자신이 경험한 일에서 소재를 찾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일단은 첫 관문을 넘어야 하니, 원고지 10~15매를 하나의 장애물이라고 생각하고 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