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사실 내가 좋아하는 배우인 박정민 배우님 때문에 접하게 되었다. 왜 오디오북으로 먼저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도 박정민 배우님의 인터뷰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배우님의 인터뷰들을 보면 내가 왜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굉장히 솔직하다. 꾸민 것 하나 없는 그 말투가 너무 매력적이다. 어쨌든 배우님이 이 프로젝트와 책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알게 되었고 읽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궁금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책은 어떻게 쓰였는지,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들과 내용들이 들어있을지. (팬심 때문에 샀다는 말을 이리도 주저리주저리 썼다.)
우울증을 갖게 된 손열매(주인공)가 친구에게 빼앗긴 돈을 되찾기 위해 친구의 본가(완주)에 갔다가 어쩌다 잠시 머물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각지도 못한 사랑을 하고 자신도 모르게 우울증도 치유가 되는, 힐링과 슬픔이 공존하는 스토리라고 할까나.
집집마다 쓰는 솜베게가 한 번에 터진 것처럼 동네 물가에서 출발한 희고 부드러운 씨앗들이 열매의 머리와 양미의 어깨와 어저귀의 손등을 덮었다. 87p
책을 보면서 제일 감탄했던 부분은 행동과 상황 묘사이다. 그저 평범하게 쓰일 수 있는 장면들을 세세하게 표현해서 상상의 디테일을 만들어주었다. 특히 87p에서 수양버들 씨앗을 표현하는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어떻게 씨앗 하나로 이렇게 따뜻한 장면을 만들 수 있을까. 이제 수양버들 씨앗을 보면 이 문장과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를 것 같다. 나도 평범한 것들을 신박하게 표현하도록 연습하고 노력해야지.
그리고 책에서 ‘마스크'가 나오는데 되게 반가웠다. 다행히도 영화를 잘 보지 않는 내가 옛날에 굉장히 재밌게 보았던 영화였다. 그 재밌는 영화를 어린 손열매가 할아버지에게 더빙을 해주는 장면이 상상이 되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읽었던 것 같다. 마스크 말고도 다른 영화들도 언급하는데 거의 다 모르는 영화들이어서 조금 아쉬웠다. 내가 그 영화들을 전부 알았다면 더 재밌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라플위클리의 ‘게임’ 편에서 이동진 평론가님이 모든 영화는 배경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겠지. 그러니 이런 소설도, 영화도 더 재밌게 보려면 더 많이 읽고 공부하고 봐야 할 것 같다.
오디오북을 염두에 두고 쓰인 소설이어서 그런지 책 속에도 소리를 묘사하는 부분들이 있다. 장면을 전환할 때나 대사가 나오기 전에 깔리는 음악소리와 배경 소리가 자세하게 적혀있다. 이 부분은 오디오북으로 들어야 실감이 날 테지만 그냥 읽기에도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묘사 덕분에 소설이 현장감 있게 느껴졌고 이야기 속에 깊게 몰입할 수 있었다. 내가 많은 소설을 읽지는 않았지만 이런 부분들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사람들에게 부모란 때론 온화한 태양 같기도 어느 날은 상당한 심술을 품은 태풍 같기도 한, 자식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자기 주도성을 갖기 어려운, 날씨나 계절 같은 존재인데 수미는 늘 건조하고 덤덤했다. 32p
-내가 생각하는 부모님에 대한 복잡하고도 이루 말하기 어려운 마음들을 대신 적어놓았다.
장례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을 위해서 지내는 건데 가족이 없으니 내일 바로 나간다고 하대. 61p
- 맞는 말이지만 슬픈 말이기도 하다. 모두가 그를 기리기 위해 장례를 치른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를 떠나보낸 사람들의 힘듦을 덜어내기 위해서 치르는 의식 같은 거니까.
닭알도 있잖여? 지가 깨서 나오면 병아리, 남이 깨서 나오면 후라이라고 했어. 186p
난 왜 이런 개그(?)가 좋을까. 웃기면서도 울림을 주는 문장이다. 김금희 작가님은 천재 같다. (카페에서 읽는데 육성으로 웃음이 터져서 놀랬다. 사람이 한 명 밖에 없어서 다행이었다.)
완주. 국어사전에는 ‘목표한 지점까지 다 달리다.’라고 쓰여 있다. 인생에는 ‘목표한 지점’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달릴까? 이 달리기 끝에는 뭐가 남아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