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작가 : 양귀자
출판사 : 쓰다.
양귀자 작가님의 ‘모순'을 읽고 꽤 신선하게 느꼈다.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느낌의 소설이었다. 그리고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 책은 ‘모순'이라는 단어를 한참 동안이나 생각하게 만들었다. 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책들을 좋아한다.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지만 결코 정답은 없는 그런 책. 한참 ‘모순'의 여운이 가라앉을 때쯤 서점에서 또 다른 양귀자 소설을 발견했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제목부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첫 페이지를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삶이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절망의 택스트다.
나는 오늘 이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텍스트 그 자체를 거부하였다. 나는 텍스트 다음에 있었고 모든 인간은 텍스트 이전에 있었다.
이건 오만이 아니다. 나는 이제까지 한 번도 내가 이 땅의 사람들과 같은 조건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조건이라는 말에서 다소의 불순함이 풍긴다면 기꺼이 태도라는 말로 바꿀 용의가 있다.
나는 나를 건설한다. 이것이 운명론자들의 비굴한 굴복과 내 태도가 다른 점이다.
나는 운명을 거부한다. 절망의 텍스트는 그러므로 나의 것이 아니라 당신들의 것이다. 9p
나는 딱 이 한 바닥의 글을 읽고 이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무슨 내용인지도 몰랐다. 그저 글 자체가 마음에 들었을 뿐이다. 단호한 저 말투는 망설이는 나를 명확하게 만들었다.
강민주라는, 자신을 신과 동급으로 명시하는 한 젊은 여자가 세상의 여자들을 위해서 최고의 남자 배우를 납치하여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이야기하려면 페미니즘을 이야기 안 할 수가 없다. 사실 나는 조금 두려웠다. 82년생 김지영의 그 사태를 두고서 여자인 내가 이 책을 읽고 리뷰하면 ‘페미'가 되어 남성을 역차별하고 여성의 부당함만 주장하는 사람이 되어있을까 봐. 단호하게 말한다면 나는 그렇게 뜻이 변질되어 버린 페미니스트는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순수한 의미에서 페미니스트냐?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강민주 보다도 백승하가 더 이해되었다. 모든 남자가 그런 것도 아니고 많은 개선을 통해 최근에는 여성들도 많은 기회가 주어졌지 않았느냐 하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 생각과 동시에 앞서 강민주가 여러 차례 들었던 가정폭력의 사례와 실제 내 주변의 사례들을 생각하니 ‘정말 그런 것인가’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이 땅의 많은 여자에게 일어나는 불행과 고통에는 적극적으로 공감하지만 여성차별의 역사와 지배구조의 악의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233p
내가 딱 이랬던 것 같다. 여자의 불행과 고통에는 적극적으로 공감하지만 나는 여성차별의 역사와 지배구조의 악의성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복합화한 사회일수록 여성들에 대한 억압 또한 복합적으로 자행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233p) 나는 어쩌면 현대의 남자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이것들을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은 내 성격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여자가 힘이 없어진 것은 과학적인 것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여자가 폭력을 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안 되지만 역사가 그렇게 흘러온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자들이 불합리와 폭력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역사가 만들어진 이유는 과학적인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흘러온 것이 아닐까. 이것이 불합리와 폭력이라는 것을 알게 된 지금 우리는 바뀌어야 한다. 이 낡은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남자는 육체적인 힘이 있어야 사냥을 할 수 있었다. 그래야 여자를 지킬 수 있었다. 그래서 남자는 육체적으로 힘이 센 사람들이 살아남고 여자 또한 그런 남자들을 선택했다. 그 옛날에는 여자들은 남자 없이는 살 수 없었다. 그래서 여자들은 남자들의 폭력과 부당함이 있어도 꼼짝하지 못했다. 생존을 위해서는 남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물학 이야기'라는 책에서 처럼 지금은 생존을 위해 남자가 ‘꼭’ 필요한 존재는 아니게 되었다. 남자의 신체적인 힘이 필요 없어졌을 때 이런 페미니즘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러나 문명이 발달하고 인간 사회가 성숙해짐에 따라 먹이나 거처 같은 생활 자원을 여성이 혼자 확보할 수 있게 되면 남성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필연적으로 변한다.
즉 강하기만 한 남자는 필요 없어지는 것이다.
오늘날처럼 남녀를 막론하고 본인 능력으로 일을 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시대에는 여성 혼자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생물학 이야기 64p)
이런 역사가 된 것은 어쩔 수 없다. 반대로 여자가 힘이 세고 남자가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면 ‘남자'와 ‘여자'만 바뀌었을 것이다. 이런 사상과 역사는 우리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오래전부터 이루어졌기 때문에 결코 단번에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여성 인권에 대한 생각들을 비교적 최근에 깨달았다는 것이 많이 안타깝다. 폭력은 절대로 없어져야 하는 것이고 지금보다도 훨씬 더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목소리를 크게 낸다고 하더라도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소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소설은 30년 전에 쓰인 소설인데 현재의 상황과 똑같다. 82년생 김지영의 사태와 비교하면 이 소설이 나왔던 30년 전에 페미를 인식하는 생각이 더 깨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여성에 대한 인식들이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후퇴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면서 언젠가 먼 미래에는 지금 페미니스트들이 만족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자들은 이런 역사를 지내왔고 절대 여자가 될 수 없기에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마치 백승하처럼.) 그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오래 걸릴까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렇기에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해를 못 한다며 화를 내는 것이 남녀 갈등만 조장할 뿐이라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지금보다도 조금 더 부드러운 방법이 필요하다. 그것이 무엇일까.
+조금씩 사람들 생각에 스며들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PC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디즈니는 PC가 범벅이라며 욕을 먹는다. 너무 대놓고 PC를 버무려서 마치 ‘우리는 깨어있는 인간이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너네는 차별주의자야.’라고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을 가르치려 드는 느낌을 준다. 이는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PC를 포함시켰지만 욕을 먹지 않는 작품이 ‘주토피아'라고 생각한다. 주토피아에는 흑인도, 백인도, 아시아인도 나오지 않지만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서 현실에 있는 차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PC든, 페미니즘이든, 비건이든, 동물보호든 사회에 말하고 싶은 바가 있다면 티가 나지 않게,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드는 콘텐츠가 중요하지 않을까.
*PC : 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의 약자
작가는 이 말도 곁들여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강민주가 백승하를 납치해서 모든 여자들이 남자에 대한 환상을 깨고 여자의 모든 것들을 바꾸지 못했다. 심지어 그 방법은 여자인 백승하의 아내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어쩌면 작가는 허구인 이 소설을 통해서 여성에 대한 생각을 비추는 동시에 이런 방법은 안될 거라고 경고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남자의 폭력에 맞서는데 여자가 똑같이 남자에게 폭력으로 대한다고 해서 여자의 위치가 올라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뿐이다. 여자든, 남자든 폭력은 절대적으로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 폭력은 세상에서 사라지는 날이 오기는 할까. 폭력이 없는 그런 유토피아는 존재할까?
이 소설에서 강민주를 통해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김인수와 황남기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김인수는 이 소설에서 제일 소름 끼쳤던 인물이다. 싫다는 말을 돌직구로 날려도 집착하는 스토커다. 나도 강민주와 똑같은 생각을 했다. 이 정도 말했으면 포기하겠지. 하지만 김인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강민주는 김인구가 평범한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저 ‘평범'해 보였던 사람이 제일 무서운 사람이었다. 강민주는 끝까지 김인구를 끊어 내지 못했다. 강민주는 김인구에 대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강민주는 황남기가 없었다면 이 일을 꾸미지도 못했을 것이다. 남자를 그렇게도 혐오하는 강민주가 왜 남자의 도움을 받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 강민주는 남자의 육체적인 힘이 필요했다. 제일 어이없었던 것은 황남기의 살인이다. 황남기는 ‘사랑한다'라는 변명으로 강민주를 죽였다. 이 두 사람은 여자들이 당할 수 있는 폭력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승하와 사랑에 빠진 것이 굉장히 현실적인 내용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였어도 최고의 배우와 매일 토론하고 이야기하고 웃고 연극을 한다면 사랑에 빠졌을 것이다.. 그렇게 이성적이고 차가운 강민주가 사랑 앞에서 녹아버려 원래의 목표를 까맣게 잊어버린 것 자체도 너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강민주도 여자였고 남자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궁금해서 몇 시간 동안 찾아보게 되었다. 다양한 반응에 매우 흥미로웠는데 그중에서도 ‘동그람이'라는 유튜버의 리뷰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간단명료하게 정리를 해주었다. 공감 가는 부분이 참 많았다. 그리고 말을 되게 시원시원하게 하며 친구와 거리낌 없이 말하는 듯한 느낌을 주어서 영상을 보는데 되게 재밌었다. 피식피식 웃게 되는 포인트들이 있다. 나. 소. 망을 읽었다면 보기를 추천한다. (이 글을 쓰는데도 많은 도움을 준 것 같아서 꼭 언급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유튜버 ‘동그람이’님 감사합니다.)
나는 책에서 무엇보다 ‘강민주의 노트'가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그녀의 사상을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말하는 듯한 그 노트들은 나에게 그녀가 살아있는 것 같은 생생함을 주었다. 그 텍스트들은 ‘강민주'라는 사람을 거침없이 표현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노트들을 여러 번, 천천히 읽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 노트들 중에서도 이 부분이 제일 마음에 든다.
비극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우리 모두가 주인공인 비극 말이다. 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에 맞춰, 비극을 상연하는 무대의 커튼은 스르르 위로 말려 올라간다. 죽음만이 그 커튼을 다시 내릴 수 있는 지겨운 공연. 앙코르도 받을 수 없는 단 한 번의 공연.
할 수 있는 일은 이 비극이 황홀해지도록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 사람마다 가치가 다르듯이 황홀함에 대한 척도도 물론 다르다. 모두 자기 방식대로 내용을 완성하고 자기주장대로 형식을 이끌어간다. 평가는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평가는 신이 내린다 해도 절정을 느끼는 것은 삶의 주인공인 바로 우리다. 황홀함은, 다른 모든 것은 다 절대자가 관장한다 하더라도, 그 감정만은 우리가 소유한다. 인간이 움켜쥘 수 있는 유일한 것, 그래서 모든 비극은 황홀감을 지향한다. 21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