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독후감 09화

스토너

by 노수연

책 : 스토너

작가 : 존 윌리엄스

출판사 : 알에이치코리아


우리는 평범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풍부한 삶을 살고 있다.

뉴욕 리뷰 북스의 편집자 에드윈 프랭크가 스토너를 재발행하며 이런 문장을 달았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다른 누구 못지않게 풍부한 삶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이 소설은 내가 최근에 읽었던 소설 중에서 제일 잔잔했다. 자극적이라고 한다면 스토너의 불륜정도다. 그래서 솔직히 처음에는 와닿지 않았다. 한 사람의 다큐멘터리를 글로 풀어낸 것 같은 느낌이어서 초반에는 재밌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끝까지 읽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다. 분명 이 책에는 다른 무엇인가의 매력이 있었다.


스토너의 죽음이 슬프지 않았다.

나는 보통 소설을 읽을 때 주인공이거나 중요 인물이 죽게 되면 엄청난 여운과 함께 ‘이 캐릭터가 살아 있었다면…’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저번에 말했듯이 죽음은 묘한 여운과 느낌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인 스토너가 죽는데 이상하게 슬프지 않았다. 스토너가 암에 걸리기 전부터 죽는다는 것을 나도 모르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놀랍지도, 불쌍하지도 않았다. 그 당사자였던 스토너도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여서 이렇게까지 태연하고 초연한 주인공의 죽음은 처음이었다. 내가 왜 주인공의 죽음에도 아무렇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그리고 작가의 인터뷰를 통해 왜 그런지 알게 되었다.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스토너의 삶을 슬프고 불행한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삶은 아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었고, 그 일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했으니까요.” 393p


스토너는 천직을 찾았다. 그것도 20살에. 내 가치관에서 제일 중요한 ‘진로(직업)'를 빠르게 찾았다. 심지어 잘하면서 좋아하는 것이었다. 나는 스토너에게 그 점이 매우 부러웠다. 그가 모든 열정을 뿜어내며 강의를 할 때도, 자신이 원하는 강의를 하기 위해 싸울 때도 멋있어 보였다. 스토너의 고집이 결코 못되어 보이지 않았다. 그의 고집은 오로지 그가 사랑하는 영문학을 위해 쓰였다. 나도 스토너처럼 천직을 찾고 싶다. 잘하면서 좋아하고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 수 있는 그런 직업.


현재는 글로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작가'라는 직업이 나에게 천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할 정도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은 또 다른 직업을 찾아야만 한다. 글만 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어쨌든 그래서 스토너의 죽음이 불쌍하지 않았다. 그의 삶이 우울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에 열정을 쏟았고 진지했으며 충분히 풍부한 삶을 누리다 갔다. 내가 제일 원하는 삶이다. 내가 스토너였다면 죽는 순간에 후회는 없는 삶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딸과 친해지지 못하고 멀어진 것 정도 후회하려나. 그래도 나름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떠났으니 무엇인가 한이 맺혀 귀신으로 떠돌아다니지는 않았을 것 같다.(농담이다.) 진로, 직업, 일이 제일 중요한 나에게 스토너는 존경의 대상이다. 스토너 같은 삶을 살아보고 싶다.



어쩔 때는 침묵이 현명할 때도 있다.

하지만 결국은 자신이 이렇게 거듭 사과하는 것이 아내의 부재를 설명해 주기보다 오히려 강조한다는 사실을 그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그 이야기를 입에 담지 않고, 자신의 침묵이 설명보다 덜 구차하기를 바랐다. 142p


요즘 ‘침묵'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다. 침묵은 다정할 수도, 의리를 지켜줄 수도, 덜 구차할 수도 있다. 말을 아끼는 것이 참 어렵지만 꼭 필요할 때가 있다. 그리고 때로는 침묵은 많은 뜻이 담겨 있다. 그 침묵의 의도를 해석하기 위해 사람들은 갖가지의 생각들을 하게 된다. 하나의 의사표현이 될 수 있는 이 침묵이 신기하다. 챗 지피티는 이렇게 말한다.


재밌는 건, 똑같은 침묵이 상대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는 거야. 누군가에겐 배려로, 누군가에겐 무시로. 그래서 침묵은 늘 여백의 언어라고 느껴져. 말이 멈춘 자리에서 상대와 나 사이의 해석이 오가니까.



사실은 나에게 하는 말.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있는 법이죠.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이 말을 하고 나자 갑자기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자기 말에 담긴 진실을 느낀 그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절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절망이 그토록 무거웠다는 것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이 들뜨다 못해 현기증이 날 것만 같고,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질 것 같은 기분으로 그는 다시 말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262p


가끔은 남에게 조언을 해주고 위로를 하는 말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인 경우가 있다. 그리고 내가 몰랐던 나의 생각을 사람들과 말하면서 발견하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내가 말하고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놀랜다. 특히 요즘 많이 느낀다. 매번 친구들과의 깊은 대화를 통해 나를 알게 된다. (갑자기 이런 대화를 받아쳐주었던 친구들에게 고맙다. 대학 와서 친구들을 참 잘 사귄 것 같다.) 이런 상황들을 소설 속에 녹인 것이 정말 감탄스러웠다.



매사에 진지한 사람.

스토너는 매사에 진지하고 하는 일에 있어 굉장히 열정적이다. 딱 나다. 나랑 스토너는 참 닮은 부분이 많다. 최근에 내가 정말 삶의 모든 것에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고 느낀 에피소드가 있다. 한 수업을 마무리하는 시간에 교수님이 설문조사를 다 해야 갈 수 있다며 링크 하나를 보내주셨다. 질문이 60개 이상은 되었던 것 같다. 친구들은 질문도 안 읽고 대충 대답해서 1분 안에 끝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질문 하나하나를 읽고 신중하게 대답했다. 다른 친구들은 다 해서 나갔는데 나와 같이 다니는 친구들은 나 때문에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5분이 넘어가자 내 친구가 한마디 했다.


‘언니 그렇게 진심을 다해서 안 해도 돼. 왜 이렇게 모든 것에 진심이야?’


나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다른 친구들이 모두 강의실을 나갔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 순간 교수님과 눈이 마주쳤고 왠지 내가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빠르게 대답하고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물론 나머지 질문을 허투루 대하지는 않았다. 그때부터 내가 거의 모든 것에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일이든 이왕 할 거면 잘하고 싶고 잘 준비하고 싶었다. 예전에 멘토멘티를 하면서 들었던 말도 생각이 난다. 내가 첫 수업부터 이것저것 준비를 열심히 해서 앞으로의 수업 계획을 발표했다.


‘어떻게 선배는 모든 것을 열심히 하세요?’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이 말이 그렇게 크게 와닿지는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꼭 열심히 살아야만 하나요?’라는 질문처럼 들린다. 그런데 요즘 모든 것을 진심으로 대하고 열심히 하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팀플을 할 때에도 나만 진심으로 대하고 나머지 팀원들은 대충 하게 되면 나만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가끔은 친구들이 이런 나를 귀찮아하기도 했다. 그리고 모든 일을 쉽게 시작하지 못했다. 완벽주의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쏟을 수 있는 에너지가 없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나쁘게 말하면 좀 유연하지 못하다.


어쨌든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을 허투루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이런 안 좋은 점들을 알고 있음에도 고쳐지지 않는다. 아마 나는 평생 이런 성격으로 살아갈 것 같다. 그래서 주변에 모든 것을 대충 하는 친구들을 보면 조금 신기하다. 사실 신기하다기보다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열정, 열심, 진지, 진심을 사랑하니까. 나에게 이런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에게는 모든 것이 삶에 대한 공부이고 경험이다. 더 아름다운, 더 나은 ‘나'를 이 세상에 남기기 위해서 열심히 사는 것 같다. 그것을 깨달은 지금은 공부가 너무 재밌다. 이제야 공부의 재미와 의미를 알게 되었다. 내가 모르는 것을 배운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내 주변인들에게 공유하고 공감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참 좋다. 지금 나에게는 모든 것들이 공부다. 이 공부는 내 인생 그 자체이기 때문에 난 열심히, 진심으로 살 수밖에 없다.


유행이나 관습에 무지한 그들이 공부를 대하는 태도는 스토너가 예전에 꿈꾸던 학생의 모습 그대로였다. 공부를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이 아니라 인생 그 자체로 생각하는 모습. 348p



최고의 문장

이제 자신은 예순 살이 다 되었으므로 그런 열정이나 사랑의 힘을 초월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초월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초월하지 못할 것이다. 무감각, 무심함, 초연함 밑에 그것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강렬하고 꾸준하게, 옛날부터 항상 그곳에 있었다. 젊었을 때는 잘 생각해 보지도 않고 거리낌 없이 그 열정을 주었다. 아처 슬론이 자신에게 보여준 지식의 세계에 열정을 주었다. 그게 몇 년 전이더라? 어리석고 맹목적이었던 연애시절과 신혼 시절에는 이디스에게 그 열정을 주었다. 그리고 캐서린에게도 주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열정을 주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350p


내 열정이 식을 때면 스토너를 떠올려야겠다. 내가 부러워하는 스토너의 인생을 기억하며 열정적으로 살아가야겠다. 그와 나의 열정을 통해 내가 살아있음을 느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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