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꼴 보기 싫은 사람

그림자와 친구되기

by 김경은

제1회: 나를 불편하게 하는 얼굴들


우리는 누구나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끼친 것도 없고,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예절을 잘 지키고, 상식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마주하는 순간, 신경이 곤두서고 마음 한구석에서 설명할 수 없는 거부감이 올라온다. "저 사람, 왜 이렇게 꼴 보기 싫지?"라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른다.


거부감은 우리의 의식적 사고가 아니라, 무의식의 깊은 층위에서 솟아난다. 나는 분명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몸은 이미 경직되어 있고, 감정은 날카롭게 반응한다. 이 모순적 경험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심리학자 칼 융은 이런 현상을 '그림자(Shadow)'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림자는 우리가 살아오면서 억눌러온 자아의 한 부분이다. 사회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낙인찍은 욕망, 어린 시절부터 금지당한 감정, 혹은 내가 스스로 외면했던 상처와 결핍이 그림자의 형태로 무의식 속에 숨어든다.

그림자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다른 사람의 얼굴을 빌려 우리 앞에 나타난다. 내가 받아들이지 못한 나의 어두운 부분이 타인의 행동 속에 비쳐질 때, 우리는 불편함을 느낀다. 그 순간 우리는 사실 상대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숨겨진 그림자를 향해 반응하는 것이다.


〈가십걸〉 속 블레어와 세레나는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끝없이 질투한다. 그 질투는 상대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나도 저런 빛을 갖고 싶다"는 욕망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블랙 스완〉의 니나는 완벽한 '백조'를 연기하지만, 억눌러온 욕망과 본능은 '흑조'로 되살아난다. 그녀가 가장 불편하게 여긴 것은 무대 위 경쟁자가 아니라, 자기 안의 억압된 욕망이었다.

이 드라마와 영화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불편한 얼굴은 사실 나 자신의 또 다른 얼굴이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말도, 글도, 계산도 아니다. 아이가 본능적으로 익히는 첫 번째 기술은 바로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이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눈빛을 읽는다. 웃음을 지을 때 엄마가 기뻐하면 웃음을 반복하고, 울음을 터뜨렸을 때 부모가 불편해하면 울음을 억누르려 한다. 칭찬받는 행동을 늘리고, 꾸중을 부르는 행동을 줄이는 방식으로 아이는 자신을 조율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좋은 아이'라는 가면이다.


이 가면은 단순히 사회적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적 전략이다. 사랑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인 아이는, 무조건적으로 '좋은 아이'의 역할을 내면화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좋은 아이'가 되는 순간, '나쁜 아이'로 평가될 수 있는 모습들은 무의식 속으로 억눌리기 시작한다.

심리학자 칼 융은 이 현상을 이렇게 설명했다."의식은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발달한다. 그 과정에서 부적합한 요소들은 무의식 속으로 억압된다. 그것이 바로 그림자의 기원이다."

여기서 말하는 '부적합한 요소'란 단순히 폭력성이나 게으름 같은 부정적 특질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오히려 창의성, 자기 주장, 느긋함 같은 건강한 자질도 사회적 규범에 맞지 않으면 억눌린다. 부모가 늘 "부지런해야 한다"는 가치를 강조하면 아이는 게으름과 휴식의 욕구를 버리고, 학교에서 "조용한 아이"가 칭찬받으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은 충동은 금세 무의식 속으로 밀려난다.


드라마 〈지니 앤 조지아〉의 지니는 겉으로는 모범적인 딸, 책임감 있는 학생의 모습을 유지한다. 어머니 조지아가 보여주는 화려한 삶과 비밀스러운 과거를 감당하기 위해, 지니는 늘 '괜찮은 아이'처럼 행동한다. 학교에서 성실하고, 또래 집단에서 무리 없이 어울리려 애쓰지만, 그 가면 뒤에는 혼란과 분노, 정체성의 갈등이 숨어 있다.

이처럼 '좋은 아이'의 가면은 단순한 역할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일부를 포기해야만 유지되는 장치다. 그 과정에서 버려진 욕망과 감정이 그림자로 남는다.

억눌린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지하에 가라앉은 불씨처럼 남아 있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른 사람의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람을 볼 때 이유 없이 싫다는 감정을 느낀다.


직장에서 권위적인 상사를 만났을 때 과도한 혐오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상사의 문제만이 아니다. 어쩌면 내 안에서 오래전부터 억눌려온 권력 욕망이나 자기 주장 욕구가 그의 모습 속에 비쳐 돌아온 것이다. 우리는 상대를 향해 "꼴 보기 싫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내 안의 그림자가 불편함을 일으키는 것이다.


지금 떠오르는, 이유 없이 싫은 그 사람은 누구인가?

그 얼굴을 볼 때마다 올라오는 불편한 감정은 무엇인가?

혹시 그 얼굴 뒤에는, 당신이 외면해온 또 다른 당신이 숨어 있지 않은가?


이 질문은 단순히 타인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나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다음 회 예고"울지 마", "화내지 마", "너무 기뻐하지 마"...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감정을 검열당하며 자랐다. 그렇게 버려진 감정들은 어디로 갔을까? 제2회에서는 억압된 감정이 어떻게 '버려진 자아'가 되어 우리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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