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다.
발리를 일곱 번쯤 갔을까.
한국에 사는 누군가에게 "인도네시아에 산다"라고 말하면, 열에 아홉은 이렇게 답한다.
“응, 알지. 발리!”
자카르타는?
한국에서 지인들이 자카르타에 놀러 오면, 여행 코스에 발리는 거의 무조건 추가된다.
마치 ‘인도네시아 = 발리’라는 공식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것처럼.
나도 한때는 발리에 가고 싶어 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말한다.
발리는 더 이상 내게 인도네시아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곳은 인도네시아도 아니고, 호주도 아니고, 중국도 아니다. 그냥 세계가 짬뽕처럼 섞여버린 거대한 관광지일 뿐이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언어는 인도네시아어보다 영어가 더 많고, 옷가게에서는 로컬 브랜드보다 H&M, 자라, 빌라봉 같은 외국 브랜드가 더 눈에 띈다. 음식은 사떼나 나시고렝보다 ‘트러플 나시고렝’, ‘퓨전 미고렝 피자’ 같은 정체불명의 퓨전이 주류가 되어버렸다.
그 길을 걷는 사람들 대부분은 현지인이 아니라 외국인이다. 발리는 더 이상 인도네시아 전통을 온전히 품고 있는 섬이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본토 인도네시아인들에게조차 ‘다른 나라처럼 느껴지는 섬’이 되었다.
발리의 전설 같은 현실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주제를 깊이 들여다보게 될 때가 있다. 한 번은 발리 지역의 문화를 설명해야 할 일이 생겨 자료를 찾다가, 파푸아 지역의 손가락 절단 풍습만큼이나 강한 인상을 남긴 이야기를 하나 알게 됐다.
바로 발리의 트루냔(Trunyan)이라는 마을 이야기다. 이곳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관광지 발리’와는 전혀 다른 얼굴을 지니고 있다. 시신을 땅에 묻지 않는 마을. 그렇다고 화장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흰 천으로 감싼 후
대나무를 작은 피라미드 모양으로 엮어 만든 구조물에 안치한다. 그리고 그 상태로 지면 위에 그대로 둔다. 땅속도 불속도 아닌, 자연 그 자체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놀라운 건, 이렇게 시신을 노출해 두는데도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비밀은 ‘타루 멘얀(Taru Menyan)’이라는 신성한 나무에 있다. 이 나무는 자연적으로 향을 내뿜는데, 그 향이 시신의 부패 냄새를 중화한다고 한다.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온 말에 따르면, 이 나무 아래에서는 어떤 시신도 악취를 풍기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장례 의식을 아무나 치를 수 있는 건 아니다. 트루냔 마을의 공동묘지는 신성한 구역으로 여겨지며, 결혼한 성인 남성만이 그곳에 안치될 수 있다. 방문 또한 제한적이며, 마을 사람들의 허락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
시신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부패하고, 뼈만 남는다. 그리고 그 뼈 중 두개골만 따로 모아 신성한 장소에 옮겨 놓는다. 이 모든 과정은 자연에 대한 존중, 그리고 조상에 대한 깊은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관광지로 알려진 발리 한편에는,
이처럼 자연과 인간, 삶과 죽음이 조화롭게 이어지는 전통이 지금도 살아 있다.
어쩌면, 삶의 끝을 자연 속에 맡기는 그들의 방식이야말로 가장 근원적인 순환 아닐까.
사진출처 National Geographic Indonesia
음식 용어 각주
•사떼 (sate): 닭·염소·소고기 등을 꼬치에 꿰어 숯불에 구운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 보통 땅콩 소스와 함께 먹음.
사떼 (sate), 사진출처 Dapurkobe
•나시고렝 (nasi goreng): '나시(nasi)'는 밥, '고렝(goreng)'은 볶다 - 인도네시아식 볶음밥.
나시고렝 (nasi goreng)
•미고렝 (mie goreng): '미(mie)'는 면 - 인도네시아식 볶음 라면으로, 인스턴트 제품으로도 유명.
미고렝 (mie goreng), 사진출처 Fimela.com
by 23년 차, 자카르타 언니
참고 자료
BBC Travel - Trunyan: The Bali village where the dead are not buried
National Geographic Indonesia - Desa Trunyan dan Tradisi Pemakaman Terbuka
Atlas Obscura - Trunyan Cemet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