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선생님이 IB 한국어를?

– 누가 책임질 건가요



"International School"


우리 아이들은 국제학교에 다닌다.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며, IB 커리큘럼을 따른다. 첫째 아이는 이곳에서 12년을 다녔고, 지금은 한국 대학에 진학했다. 둘째도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이다.

몇 년 전,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학교에 한국어 수업이 신설되었다. 처음엔 학교 측에서도 꽤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꼭 들어야 할 과목’처럼 분위기를 조성했다.

하지만 해외에서의 삶은 늘 변수가 많다. 한국어 수업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환경에서, 새로운 과목을 선택하는 것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어 박사학위와 IB 전문 자격을 모두 갖춘 선생님이 담당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고민했다. 이미 초등 1학년때부터 중국어를 배우고 있었고 만약 한국어를 선택한다면 중국어를 포기하는 시스템이었다.

“선생님이 중간에 다른 나라로 떠나시면 어떡하죠?”

내 질문에, 그분은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 그럴 일 없을 거예요.”
나는 그 말을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내 첫 번째 실수였다.

그 믿음으로 둘째 아이는 과감히 한국어 수업을 선택했고, 언제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때로는 나조차 어렵게 느끼는 단어들을 막힘없이 사용하며 대화하는 아이를 보며, ‘그래도 국어 수업 듣게 하길 잘했구나’ 싶었다.

첫째 아이, 영어는 원어민 수준이지만, 한국어는 그보다 부족하다. 일상 대화는 문제없지만, 말의 뉘앙스나 이면의 뜻은 여전히 어렵다.

한 번은 아이들이 어릴 적에 말썽을 부려

“오늘 저녁에 국물도 없어!”라고 혼낸 적이 있다.
식사 시간이 되어 국그릇에 국이 담겨 있는 걸 보고, 아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엄마, 아까 국물 없다며?”

그 말에 웃음이 났고, 동시에 뭔가 씁쓸했다.
모국어의 감각은, 교과서만으로는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이 새삼 가슴에 와닿았다.

2년이 흘렀다.

어느 날, 저학년 학부모로부터 연락이 왔다.
“혹시 들으셨어요? 한국어 선생님이 그만두신대요.”

나는 소문을 믿지 않는 편이라, 바로 선생님께 연락했다.

“학교와 계약 조건이 맞지 않아 떠나게 됐어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기분이었다.
선생님 개인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 단호한 약속은 뭐였을까. 그 말을 믿고 아이를 맡긴 내가 어쩌면 가장 어리석었던 걸까.

학교에도 확인 메일을 보냈고, 학년 담당 교사와 미팅을 했다. 결론은 같았다.

“그럼 후임 선생님은 누구죠?”


“세 분으로 구성된 새 한국어 팀이 들어오기로 했습니다.”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내게 학교는 더 이상의 정보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나는 내 방식대로 믿을 수 있는 루트를 통해 조사해 놨다.
한 명은 기존의 초등 한국어 선생님, 또 한 분은 한국에서 중학생을 가르쳤다는 선생님,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정말 충격이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을 1년 정도 가르친 경험이 있는 분, 자카르타에서 교사 경력도 없는 그분이, 우리 둘째의 국어 선생님이 된다고 했다.

이게 말이 되는가.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과목을, 경험해보지 않은 새내기 교사가 가르친다는 사실이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학교는 이미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고 했고, 교장 선생님이 직접 뽑았다고 했다. 더구나 국어 선생님들은 초, 중, 고 담당으로 나눠 가르치지 않고, 1·3·5·7·9·11학년2·4·6·8·10·12학년을 번갈아 가르친다고 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다음날, 고학년 학부모였던 내가 신경 쓰였는지 교장 선생님 면담 요청 메일이 왔다.
나는 교장 선생님 면담 제안을 거절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 학교에서 첫째가 12년을 다녔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이 학교 시스템의 작동 방식과 한계를 뼛속까지 체감했다.
이미 계약은 체결됐고, 내 목소리가 반영될 여지는 없었다.


그해 1년 동안, 저학년 학부모들은 회의하고 항의하고 싸웠다. 나는 조용히 지켜봤다.

어차피 바뀌지 않을 일들에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았다.

당연히 둘째 아이도 새로운 선생님의 수업 퀄리티에 불만족했고 전 국어 선생님을 그리워했다.


그리고 올해, 학교는 마치 ‘비밀’이라도 되는 양, 새로운 선생님이 온다고 했다. 알아보니, 또다시 “초등학년을 가르쳤던 분”이었다.

왜 또 ‘초등’인가?

나는 내 아이가 고등학교 IB 한국어 수업을, 그에 맞는 수준으로 받기를 원한다.


“IB 트레이닝받으면 되잖아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말, 틀리지 않다.

하지만, 왜 그 ‘트레이닝의 실험 대상’이 내 아이여야 하는가?

이기적인 말인 줄 안다.
하지만,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은 늘 이기적이다.
특히 교육 앞에서는 더 그렇다.

돌이켜보면,
그 처음 선생님의 약속을 그대로 믿은 내가 바보다.
사람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
그게 나의 약점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국어 수업을 듣게 하지 않았으면 더 나았을까?
모르겠다.
후회와 안도는 언제나 나란히 온다.

나는 이제 배운다.

학교는 ‘교육기관’이면서 동시에 ‘기업’이라는 것.
어떤 말도, 어떤 약속도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언제나 플랜 B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내 아이의 교육 문제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부모만이 끝까지 책임질 수 있다.

기대는 내려놓았다.
하지만, 포기는 하지 않는다.

어떤 교사가 오든, 어떤 상황이 펼쳐지든,
나는 내 아이의 가장 가까운 교사이자,
가장 오래 남을 조력자다.

‘내가 바보였다’는 그 깨달음이,
언젠가는 아이를 위한 나의 힘이 되기를 바란다.




by 23년 차, 자카르타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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