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시쳇물
원효대사의 해골물. 어두운 밤, 원효대사는 어느 한적한 곳에 머물렀다. 그곳은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차, 목이 마르기 시작하였다. 마침, 근처 바가지에 물이 담겨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가지에 담겨진 물을 벌컥 마셨다. 매우 시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바가지가 없었다. 보이는 것은 해골이었다. 그가 머물던 곳도 집이 아니라 무덤이었다. 결국, 해골에 담긴 물을 마셨던 것이다. 해골에 담긴 물을 마셨다는 것을 알고, 구역질이 나기 시작 하였다. 해골 바가지를 보지 않았더라면 구역질을 했을까? 해골이라는 틀이 얹혀지자 거의 반사자동적으로 반응을 한 것이다. 해골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이것이 흔히들 아는 ‘원효대사의 해골물’ 이야기다. 이 경험을 빗대어 일체유심조라 하기도 한다. 보통, 이를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라 한다.
태국 코팡안에 방문하였다. 풀문파티로 유명한 섬이다. 한 달에 한 번, 보름달이 뜨면 매우 큰 파티가 열린다. 코팡안의 방문 목적은 파티보다는 명상 수행 때문이었다. 마침내 한 명상 센터에서 매월 10일마다 진행하는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 하였다. 명상은 자유롭게 진행이 되었다. 종종 거주하는 스님과 함께 명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명상 리트릿에 참여할 경우, 먹는 것은 줄이더라도 마시는 것은 평소보다 더 섭취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함이기도 하다. 실제로, 허기진 상태에서 무엇을 마신다면, 허기짐이 조금은 줄어드는 것이 느껴지곤 한다. ‘물로 배를 채운 다’는 말도 있지 않나? 숙소와 스님들이 주로 머무는 장소 사이의 식당에서 언제든지 물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물은 큰 쇠통에 담겨 있었다. 한동안, 그 안에 있던 물을 계속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잘 마셨다. 물맛이 괜찮았다. 물에 좀 민감한 편이다. 허나, 물맛이 괜찮다고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물이 담겨있는 쇠통의 뚜껑이 열린 것이 보였다. 그 물통 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을 자극했다. 굳이 볼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 안을 보고 잠시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개미의 시체가 물속에 둥둥 떠 있었던 것.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안을 보라고 그렇게 열어 놓은 것 같다. 꽤 오랫동안 채식을 유지해 오던 중이었다. 아침마다 스님들의 탁발로 모은 음식을 먹을 때면, 고기가 들어간 음식만을 쏙 빼놓고 먹곤 했다. 이를 거기 계신 스님들과 봉사자들이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그 동안 개미의 시쳇물을 아무 거리낌 없이 마셨던 것이었다. 원효대사처럼 구역질이 나고, 큰 깨달음을 얻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매우 강한 인상을 남겨준 경험이었다.
개미의 시쳇물인줄 모르고 마셨을 때는, 그냥 물이었지만, 수많은 개미 시체 떼 가 물에 떠다니는 것을 보고는 물을 마시는 것이 망설여졌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게 되었다. 고깃물과 개미 시쳇물의 차이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 후 탁발로 모은 음식들 중에서도, 고기를 골라 먹는 시범을 보였다. 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마음이 더러워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설사로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