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치고는 너무 절묘했던

중국 구화산 방문기

by 강가

어느 정도 달렸는지는 모르겠다. 곧 도착할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중국 남부에 위치한 난닝에서 상하이행 기차표를 끊었지만, 그 전에 내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너무 힘들었기도 했다. 30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입석을 끊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은 화장실이 있는 칸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갔다. 담배를 태우러 오는 사람들의 담배 연기를 견디기는 것이 도전적이었다. 잘 시간이 되자, 두 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빈 자리에 쪼그리며 잠을 청했다. 왜 이런 고행을 선택 했을까?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그랬을까? 물론, 선택의 여지가 많이 없기도 했다. 난닝역에서 기차 판매원이 입석만 있다고 했을 때, 잠시 생각 한 후에, 곧바로 결정을 내렸다. 한번 도전해 보기로. 하지만, 그 도전이 후회로 변하게 된 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힘들었기 때문이었는지 갑자기 소주가 가고 싶어졌다. 10여년전, 아름다운 수로 위에 놓인 마을이 아직도 마음속 그림처럼 남아있기도 했다. 그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 아쉬움이 매번 있어 왔다. 마침, 다시 방문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그리고 즉흥적으로 결정을 내렸다. '상하이가 아니다. 소주로 가자.' 지금 가고 있는 이 기차는, 직행 열차가 아니었으므로, 여러 역에 정차를 하였다. 확실 했던 것이라면, 상하이 도착 전에 한번은 소주에 들린다는 것. 소주는 상하이와 그렇게 멀지 않았기에, 상하이 도착하기 전 특정 기차역에서 내리면 될 것 이라고 생각했다.


상하이에 도착할 시간이 가까워 지고 있었다. 어두워 지고 있었다. 밤에 도착 예정이었으나, 곧 상하이에 도착할 것이다. 한 역에 정차를 했다. 사람들이 분주히 내리는 중이었다. 기차가 정착하기 바로 전, 역 간판에서 ‘zhou’라는 글을 본 것 같았다. 바로 급히 내리고 있던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중국어 회화를 할 줄 몰랐으므로, 소주의 중국어 발음인


'쑤저우? 쑤저우?'


이런 식으로 물었다. 아주머니가 대답을 했다.


“쑤저우!”


그렇구나. 여기구나. 여기가 내릴 곳이구나.'


급히 짐을 챙기고 내렸다. 어두운 밤. 낯선 곳.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소주를 방문했을 때는 버스로 왔으므로, 기차역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막연히 기차역을 좀 나와서 중심가에 가면 된다고 생각 했다. 그런데, 나아 갈수록 점점 낯선 기분이 강하게 들기 시작하였다. 이상했다. 소주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쑤저우?”


모른다는 표정인 것 같았다. 밖으로 나가니, 홍보 간판이 보였다. 간판 지도를 보니 소주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취저우라 써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쑤저우가 취저우로 바뀐 줄 알았다. 하지만, 곧 아님을 알게 되었다. 중국에는 도시명 뒤에 쑤저우(우리나라 말로는 주)가 붙는 도시가 수십 개가 넘는다. 쑤저우, 항저우, 광저우, 등등. 쑤저우도 그 중 하나였고, 이 도시 또한 취저우라고 불리는 도시였다.


이미 취저우 (池州, Chizhou)다. 어쩔 수 없었다. 지나간 기차를 다시 붙잡고 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미 지나간 기차는 결코 다시 오지 않는다. 완전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지나간 기차를 다시 오게 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에 역행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 예상치 못한 사건을 받아 드리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지나간 기차에 미련을 갖는 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란 결코 없다. 미련은 애착을 갖게 하고, 이러한 애착이 더 힘들게만 할 뿐이다. 저항만 만들어 낸다.


길에는 크게 두 방향이 있는 것 같다. 저항의 길 그리고 비저항의 길. 대부분 저항의 길을 선택하곤 했던 것 같다. 최소한의 저항의 길로 들어설 기회가 주어짐에도 기어코 저항의 길을 택하곤 하였다. 개인적 욕망이 관여될 때 더욱이 그렇다. 기어코 하고 싶은 것 그리고 원하는 것을 하고야 만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다. 수 많은 저항이 기다리고 있었음을.


저항이 클수록 파괴력도 높아진다. 충격파가 사람 몸 속에 있는 고체 (주로 신장결석)를 파괴하는 원리이다. 충격파는 웨이브이고 파동이다. 충격파는 저항이 높은 고체를 만날 때야 반응을 더 강하게 하곤 한다. 의료용으로 쓰이는 충격파는, 액체나 부드러운 피부는 큰 파괴 없이 사람의 몸을 관통을 한다. 이것은 기본적인 물리적 영역에서의 반응이지만, 마음에도 적용이 된다. 무엇인가에 강직하게 저항을 하면 할수록 더 큰 상처를 받곤 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지 않나? 오히려, 이를 기회라고 생각을 했다. 낯선 곳, 잘 모르는 곳을 여행 할 좋은 기회구나. 하늘이 무슨 교훈을 주기 위해서 그 아주머니가 쑤저우라고 말을 하게 한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면, 그 아주머니는 똑바로 말했는데 내가 잘못 들은 것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취저우다.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주변에 볼만한 곳은 없는지 알아 보았다. 그리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되었다. 취저우에서 유명한 관광지는 다름아닌 중국 불교 4대 성지 중 하나인 구화산이었던 것. 놀랐던 이유는, 불교 성지에 방문 하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다만, 구화산은 리스트에는 없었다. 가장 유명하다는 오대산에 방문할 계획이었다.


더 흥미로운 점이라면, 구화산은 신라왕족이었던 김교각 스님의 등신불 (사람의 육체를 넣은 불상)을 모시는 사찰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곳이 불교 4대 성지인 이유는, 지장보살이 거주하는 곳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신라의 김교각 스님이 지장보살로 추존 되었다. 지장보살은 한 때, 고대 인도의 사제 계급인 브라민여성의 삶을 산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그녀는 불심이 매우 컸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지옥에 간 것을 알게 되었고, 지옥으로부터 구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지옥이 텅 빌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지장보살은 중국에서 인기 있는 보살 중 하나라 고려된다. 구화산이 중국 불교의 4대 성지가 된 것만으로도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아마도, 스케일이 큰 서원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지옥이 완전히 텅 빌 때까지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소요가 될까? 허나, 지옥이 텅 빈다고 해서 그것이 또 완전한 끝은 아닐 것이다. 불교의 세계관에서는, 지옥 말고도 다양한 세계가 존재한다. 지옥은 중생이 태어나는 육도 세계 중 하나일 뿐.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을 육도 세계라고 한다. 이 세계에서 지옥은 가장 낮은 수준의 세계이고 천상이 가장 높은 수준의 세계다. 불교 에서는, 수 없이 많은 업의 결과로 다양한 세상에 태어나고 죽고를 끊임없이 반복 한다고 한다. 태어나고 죽음의 핵심에는 욕망 혹은 갈망이 자리잡고 있다. 이 다양한 생에서도,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매우 드문 기회라고 한다. 인간은 영적인 (혹은 마음. 불교에선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음) 수행을 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고 태어난다. 천상에서 태어나는 것을 축복이라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너무 삶이 편해서 다른 측면의 삶을 쉽게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천상은 말 그대로 안락하고 편안해서 현상유지가 되기 쉬운 곳이다. 또한, 복이 다하면 천상에서의 생활도 마감이 되어 버린다. 인간과 천상 외의 다른 세계에서는 지은 죄에 대한 형벌을 받는데 대부분의 삶을 할애 해야 하므로 다른 측면에 길을 고려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왜 영적인 수행일까? 인간으로 태어나 수행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자유 (불교식으로는 해탈)에 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수행을 하므로, 우리는 이 세상이 더 잘 이해하고, 윤회의 굴레 바퀴 (혹은 연기의 끊임없는 작용) 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일까. 더 나아가, 한 사람만의 자유를 떠나 모두가 자유가 되는 이상향. 이것이야 말로 지장보살이 바라던 최종목표일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멀리 가려면 가까운 곳에서,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처음부터 멀리 그리고 높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과정을 밟아야 한다. 지옥은 육도 세계에서도 가장 낮은 차원이다. 지옥이 끝나면, 완전히 텅 비어 버리면, 그 다음은 아귀가 거주하는 곳. 그리고 모든 세상이 텅 비어 버린다면, 대승불교의 핵심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공에 모두가 합일이 되는 그러한 세계가 오게 되지 않을까. 아니면 이 세상 모두가 텅 비게 되는 것일까.


그렇게 다음날 바로 구화산으로 향했다. 도착을 하고 놀랐다. ‘이렇게 많은 사찰들이 있을 줄이야!’ 족히, 크고 작은 100여개의 사찰이 있는 듯 보였다. 핵심 사찰을 올라가는 계단의 길이도 어마어마하다. 계단을 올라 가기 전, 게이트의 크기 역시 엄청나다. 이렇게 큰 사찰의 게이트를 본적이 없었을 것이다. 역시 중국은 규모가 크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흥미로운 점이라면, 구화산이란 이름이 말해주듯, 숫자 9와 깊이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9라는 숫자를 매우 성스럽게 여긴다. 9는 숫자의 끝을 의미하기도 하다. 9는 황제의 숫자라고도 불린다. 황제의 게이트에만 각 문에 9개의 표식이 붙을 수 있는 암묵적 권한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신라왕족 김교각 스님99세에 열반을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구화산에는 99개의 산 봉우리가 있으며, 99개의 계단도 있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묵은 숙소의 방번호가 999호였다. 2층에 위치해 있지만, 이를 999호로 바꾼 것이다. 구화산이 얼마나 숫자 9와 관련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숙소 방도 999호로 만든 듯 하다.


구화산은 종교, 역사, 문화, 웰빙이 만나는 곳 과도 같았다. 물론, 무엇을 이은다 한 들, 이어지지 않을까. 그래도 안타까움은 어찌 숨길 수가 없었다. 상업화가 크게 된 관광지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음 목적지로 행선을 틀었다.


그러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가?’


오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오게 되었다. 어쩔 때는 의도한 데로 안되고, 어쩔 때는 의도한 데로 된다. 하려고 하는 것이 안 되기도 하고, 하려고 하는 것이 잘 되기도 한다. 가려고 하는 곳에 못 가게 되기도 하고, 가려고 하는 곳에 잘 가게 되기도 한다.


우연히 방문한 곳에서 신라의 왕자였다던 김교각 스님의 흔적이 사뭇 반가웠다. 여행의 묘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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