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지와의 만남

by 강가

바바지 사두를 만나러 가 보기로 하였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의식에 자리 잡았다는 것은, 우연은 아니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특별한 계획을 세웠던 것이 아니었으므로 마땅히 할 일이 없기도 했다. 그렇게, 바바지 사두를 만나기 위해 그 터번 수행자가 알려준 길로 올라갔다. 묵티나스는 해발이 약 4,000m 가까이 된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찬다. 그런데 바바지가 머문다는 장소는 그 마을 비슈누 사원에서도 더 한참은 올라가야 했다. 그리고 가는 길의 경사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걸어 올라 가는 것 자체가 고행이었다.


‘바바지 사두 보러 올라 가다가 포기하는 사람이 많겠구나!’


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비슈누 사원을 지나고 한 티베트불교 수도원을 지나니, 좌우로 두 갈래의 길이 보였다. 이는 비단 사람의 인생길에 놓인 기로와도 같아 보였다. 사람은 종종 인생에 있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기도 한다. 어느 곳으로 가야 할 지 정하기 망설여지곤 한다. 특히,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잘 모를 때에는 더 그러한 경향이 강하다. 크게 망설이는 이유는,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길인지 이미 다 잘 안다면, 크게 망설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쉽게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삶이란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 법. 그래서, 가끔은, 그냥 모든 것을 맡기고 나아가는 것이 속 편할 때가 있는 것 같다. 그 수행자가 알려준 방향이 생각이 나질 않았다. 아마도, 어느 쪽으로 갈 지는 정확히 알려주지는 않은 것 같았다. 무슨 식당도 있고 이래저래 말은 했던 것 같지만 일일이 디테일 하게 물어보기 뭐해서, 그냥 알았다고만 계속 했었다. 그래서, 정확한 위치와 방향을 머릿속에 담지 않고서 길을 나선 차였던 것이다.


그래서, 직감에 의존을 하였다. 그냥 별 생각 없이 한 방향으로 향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직감으로 갔던 방향이 맞았다. 운이 좋았다. 물론, 다른 방향으로 갔었다고 해도 의미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길은 그 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나중에 반대편 길로 가보니, 티베트불교에서 존경 받는 파드마삼바바의 상이 있는 곳과 연결됨을 알 수 있었다.


방향을 선택하고 올라 가 보니, 화성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녹색 빛깔의 식물은 많지 않았다. 사막처럼 식물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큼지막한 돌도 보이고, 척박한 그런 황무지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긴 철망 다리가 나타났다. 길이는 족히 100m는 되어 보였다. 무엇보다 망사였다. 절벽 밑이 훤히 보였다. '떨어지면 바로 즉사일 것이다.' 란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발을 내딛고 가려고 하니, 온 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강한 바람으로 인해 긴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리고 강한 공포의 바람의 소리가 들려왔다. ‘휭휭’. 가끔 ‘우우웅’.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힘들게 올라와서 돌아가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도전해 보기로 하였다. 전진하였다. 처언처언히, 조심스럽게 갔다. 두 손은 양쪽 레일을 꼭 붙잡고 나아 갔다. 떨어지지 않기 위한 발악과도 같았으리. 쉽지는 않았으나 결국에는 다리를 건널 수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생존에 대한 큰 공포심이었다.


다리를 건넌 후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허름해 보이는 건물 몇 채가 있는 곳이 보였다. 거의 다 왔다는 직감이 들었다.


도착하니, 깡마르고 수염은 덥수룩한 한 중년의 수행자가 나왔다. 전형적인 사두의 모습처럼 보였다. 목소리는 매우 우렁찼다. 종종 특이한 소리를 지르며 동물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듯해 보였다.


“유후~~우”


그가 소리를 지를 때면, 그의 목소리가 히말라야산맥 전체에 울려 퍼지는 듯 했다.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주기도 하고, 염소, 개들에게도 직접 해준 쌀밥(?)을 주기도 하였다. 가끔은, 목소리 톤이 바뀌기도 하였다. 도착한지 얼마 안 되어, 그 사두는 어떻게 해서 오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솔직하게 말 했다. 그러곤, 바바지가 대답했다,


“솔직하게 말했으니, 뭘 해주겠다. 기다려 보소”


부엌에서 우당탕당 무엇인가를 만들었다. 사실 부엌이라고 하지만 거주하는 조그마한 공간에 딸린 소박한 요리용 공간이었다.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그의 방은 온통 연기로 가득했다. 연기를 통해, 정화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매우 좁은 공간에 얼핏 보기에는 식재료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으나 어느새 차와 음식이 마련되었다. 그는 신발을 벗고 그의 방으로 들어오도록 하였다. 그리고 겉옷도 벗었다.


그가 해준 음식과 차를 먹고 마신 후, 그와 이런저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하였던 많은 것들을 그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와 누군가의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말을 이어갔다. 그는 다짜고짜.


“자네의 실수였어. 연락해서 사과하도록.”


식사 후 그는 설거지를 하였다. 설거지를 하며 조용히 이런 말을 했다.


“자넨 너무 진지해”


그는 친근하게 문제를 말하면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하였다. 이미 그의 말에 해결의 실마리가 있는 듯해 보였다. 친근하게 말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해결되는 것 아닌가.


재미있는 점이라면, 그는 종종 대화의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을 하곤 했다는 것. 그런데, 그것이 무언가의 암시를 나타내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한번은, 갑자기,


“사다나는 즐기는 것이여.”


라고 하였다. 사다나는 보통 힌두교에서 에고를 초월하는 수행을 일컫는다. 사다나를 너무 진지하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다나 프로그램과 관련된 이메일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채소에 관해서도 얘기를 해주었다. 그러던 중, 케랄라라는 채소를 말 하였다. 그 사다나 프로그램은 케랄라에서 진행 될 예정이었다. 인도에서 케랄라는 채소 이름이자 남부의 한 주의 이름이기도 하다.


사두가 강조 한 것이라면, 친근한 것이었던 것 같다. 너무 진지하다는 것. 연기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연기와 무대에 너무 몰입되어 무대 밖에서도 연기를 하고 있는 연기자와 같지는 않았던가. 그래서, 한국의 유명한 아리랑 노래도 불러보곤 했지만, 본래 성격이 쉽게 변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다. 오히려, 너무 억지로 하려고 하다 보니 쉽게 지치기도 하였던 것 같다. 착 달라 붙은 스티커를 조금씩 살살 띄어 내는 방향으로 나아 가기로 하였다. 갑자기 변하지 못할 것이면, 조금이라도 변하면 되겠지. 통제 가능한 영역에서 조금씩 변화해 나아가면 언젠가는 변하겠지.


그렇게 그와의 첫날의 만남을 뒤로하고, 마을로 다시 내려갈 준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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