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림은 또 다른 얻음이다

잃어버림으로써 이어진 의미

by 강가

물리학의 작용 반작용. 무엇인가 끌어 당기게 되면 무엇인가 밀어내야 한다. 무엇인가와 가까워지면 무엇인가와 멀어져야 한다. 이는 또한 상대적인 세상의 법칙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잃어버리는 것이 곧 또 다른 얻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잃어 버림의 패턴이 한동안 지속 되어 왔다. 꿈 속에서도 그리고 현실 속에서도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 아쉬람을 떠나고, 트리반드럼 버스정류장에 도착을 하였다. 코치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버스로는 대여섯 시간이 걸리는 비교적 장기간의 거리였다. 마침 점심시간이었고 배가 출출하여 짐들을 잠시 맡길 곳을 찾아 보았다. 무거운 짐을 이리저리 들고 식당에 가면 번거로우므로. 버스 정류장 중심지 부근, 박스처럼 보이는 공간 내부에 짐을 잠시 내려 놓았다. 누군가 물건을 가져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말이다. 아마 그 곳에 머물던 한 사람에게 짐을 잠시 봐 달라고 부탁했던 모양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배를 채우고 돌아 왔다. 그런데. 짐이 없었다. 버스를 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타야 하는 버스였으므로 조급했다. 버스를 놓칠 판이었다. 무엇보다 짐이 문제였다. 아무리 찾아봐도 짐이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사방팔방으로 다니면서 찾아 보았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41일의 수행 직후라 그런지 조금은 과감해졌다. 돈이나 여권 등 중요한 것들은 이미 갖고 있었으므로 그냥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몇 책들이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없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될 것 없다고 생각 하던 찰나. 한 소식 듣게 된다. 경찰이 가져갔다는 것. 아이쿠야.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하고 나서야 짐을 다시 가져왔다. 잃어버림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그 후 태국 치앙마이로 향했다. 아니, 돌이켜보니 끌려 간 것이다. 치앙마이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원 중 하나로 손 꼽히는 왓 프라싱에 도착했다. 왕실 사찰로 유명한 곳으로, 황금색으로 칠해진 거대한 탑과 불상이 인상적이었다. 자연스레 중심 사찰 내부로 들어갔다. 잠시 눈을 감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으며 짧은 명상에 빠졌다, 특이 했다.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랄까. 아니면 정화되는 기분이랄까. 안정적인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일어나서 나가려는 찰나, 무언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스마트폰이 보이지 않았다. 헌데, 정확히 언제부터 없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순간에 없어져 버렸다. 사원 내부 현지인에게 물어 보았지만, 수집된 적이 없다는 반응이었다.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이미 한 명상 센터에 갈 준비가 모두 완료되었다는 것이다. 미리 사전에 연락을 취했으므로, 스마트폰이 급하게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다. 필요한 것은, 노트북을 이용하면 되었다.


가기로 예정되어 있던 곳으로 향했다. 치앙마이에서도 남서부 쪽에서 버스를 타고 약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명상 수행처였다. 붓다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명상 수행처에 도착하니, 꾸디가 주어졌다. 꾸띠, 독립된 ‘수행공간’이다.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홀로 집중 수행을 할 수 있는 공간. 수행을 지도해 줄 지도자 스님도 계셨다. 인터뷰를 통해서 스스로를 돌이켜 볼 기회도 주어졌다. 그렇게 약 한달 동안 명상 수행에 집중하였다.


한 인생을 살면서 한 달 동안 명상을 할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다. 그러고 보면 살아가면서 또 얼마나 많이 자신에게 투자했던가? 타인의 기대 속에서, 타인과의 교류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고 있던 것은 아니었나? ‘종종 무엇인가를 잃어버려야, 다른 것을 되 찾을 기회도 얻게 되지 않겠는가.’


누군가 붓다에게 물었다.


“명상을 하고 무엇을 얻으셨습니까?”


붓다는 대답했다.


“없느니라. 그러나 분노, 불안, 우울증, 불안정함, 노쇠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잃어버렸다.”


잃어버림. 분명 물질적 손해였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얻음이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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