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시장으로 떠나는 여행

by 나루터


어떻게 하다보니 호주까지 오게 되었다. 요가 디플로마 코스를 수강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내가 입수한 정보로는 호주에 도착해서 학생비자를 신청하면 학생비자가 빨리 나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호주에 오니 생각보다 일이 일사천리로 진척 되었다. 나는 그렇게 요가 디플로마 프로그램이 진행될 호주 브리즈번에서도 북쪽에 위치한 선샤인 코스트로 향하였다.


그곳에 머물며 자연스럽게 주변 구경을 하러 다니기도 하였다.


보통은 구경을 떠나기 전, 볼거리가 있는지를 주로 살핀다. 어딘가 볼만한 게 있다 싶으면, 가기로 결정하곤 한다. 볼거리가 많은 곳에는 덩달아 먹을 거리도, 냄새 맡을 거리고, 들을 거리도, 느낄 거리도 즐비한 경우가 많다. 감각을 만족 시켜줄 수 있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마침, 알게된 현지인 친구로 부터 주변에 가볼만한 시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유먼디 시장 (Eumundi Markets)으로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이면 큰 시장이 열린다. 몇 주 전에 이미 한번 가 보아서 어떠한 분위기인지는 어느 정도 안다. 다른 시장과 다름없이, 여러 가지 볼거리, 들을 거리, 먹거리 등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시장이 열리지 않는 날에도 갈 수 있지 않을까?’


가는 것이야, 어디든 못 가리오. 다만, 볼거리가 없을 것이 뻔했다. 사람도 없을 것이다. 여행지다운 여행 분위기를 느끼지 못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보지 못할 법도 없어 보였다. 이것이 여행의 묘미라면 ‘묘미’이지 않을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오는 우연한 영감이나 배움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 스스로 정당화를 하고 떠났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조금 늦게 출발 하였다. 오후 1시 정도 쯤 버스를 탔다. 도착하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번 버스를 갈아탄 후, 그곳 까지 도착하는 데에는 1시간 정도가 소요가 된 듯하다.


그곳에 도착하니 역시나. 거의 텅 빈 곳과도 같아 보였다. 내리자마, 약 100 미터 정도(?)의 차도를 중심으로 각 양쪽 측면에 상점들이 모여있다. 내가 서 있던 곳에서 정면으로 우측 측면에는 그 시장이 위치해 있었다. 물론, 시장은 닫혀 있었다. 이러한 텅 빈 시장에서 나를 맞이해 주는 것이란, 그저 지저귀는 새,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아주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종종, 지나다니는 사람이 보이긴 했다. 셀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적은 수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냥 되는대로 오픈한 상점들을 중심으로 돌아보기로 하였다. 내가 서 있던 좌측 도로 편을 먼저 걷기 시작했다. 곧, 술집 (bar)을 지나치자마자 강한 맥주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안에는 형광색 옷을 입으신 분들이 대낮부터 맥주를 마시고 계셨다. 그러곤 서점이 있었다. 카페 몇 개도 열려 있었다. 물론, 대부분 상점은 닫혀 있었다. 우측 편으로 넘어서 와서도 비슷했다. 몇 상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닫혀있었다.


그런데, 그곳을 다니면서, 조금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했다. 전단지가 이 상점 저 상점마다 붙어 있던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공원 근처에 위치한 나무 보드에 전단지가 가장 많이 붙어 있었다.


그곳 주변은 심신수련자들 (혹은, 영적)이 많은 것 같아 보였다. 전단지 대부분이, 요가, 명상, 태극권, 기공, 등등 전 세계를 망라하는 다양한 심신 세션 (혹은, 워크숍) 홍보 포스터가 즐비하였다. 물론, 그중에서도 요가가 가장 많은 것 같아 보였다. 종교도, 불교, 힌두교, 도교 등으로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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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붙어 있던 전단지들을 보고, 서점에서 책 구경도 하고 나서 그곳을 떠났다.


텅 빈 시장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영적인 자원 (spiritual resource)이었다. 지난번 방문했을 당시에는, 거의 100여개가 넘어 보이는 상점부스들, 시장을 꽉 채우는 사람들을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너무나도 다른 양상이었다. 그러한 분주함이 없으니, 남은 것이라곤 로컬들을 위한 상점 그리고 전단지였던 것이다.


꽉 찬 시장은 나의 오감을 채워줄 것들로 가득 찼다. 텅 빈 시장은 나의 내적인 영감을 채워줄 것들로 가득 찼다.

이번의 여행은 나의 감각적 욕망을 채우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다른 의미 있는 것을 얻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되었다.


오감으로 인한 소음이 사라질 때야, 비로소 그곳의 진면목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처음 방문했을 때에는, 군중과 수많은 상점들로 인해서, 그곳이 어떤 곳인지 잘 몰랐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꽉 찬 시장과 텅 빈 시장은 물질적인 삶과 영적인 삶 (혹은 그와는 반대의)을 대변하는 듯 해보였다. 마침, 태국에서 만났던 예술가가 물질적인 삶과 영적인 삶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던 것이 떠 올랐다. 나는 어디로 향하고 있었던 것일까? 꽉 찬 시장이었을까, 아니면 텅 빈 시장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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