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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나는 증명하고 싶었다

10화. 20살, 나는 증명하고 싶었다

by 무명 흙



시간이 흘렀다.
나는 이제 성인이 되었고, 처음으로 내 미래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옷을 좋아했던 나는 패션디자인과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 디자인과 가고 싶어. 옷 만드는 거, 진심이야."

하지만 엄마는 단호하게, 그리고 화를 내며 말했다.
"그딴 데는 왜 가냐. 가지 마!"

나는 등록금을 내달라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화가 난 나는 결국 소리를 질렀다.

"그럼 나 안 가! 대학 안 가!"

그렇게 집을 나왔다.
그날 밤, 나는 혼자 오래도록 고민했다.
이제 뭘 해야 하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때 문득 떠오른 게 군대였다.

"그래, 나도 이제 군대 갈 나이지."

형은 이미 입대한 상태였다. 나도 갈 차례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가진 건 없었지만, 늘 누군가를 도와주는 게 좋았다.
우리 집이 넉넉했다면, 나는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었다.

처음 알바를 하고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
길에서 나물을 파는 할머니가 보이면 꼭 조금이라도 샀다.
폐지를 줍는 리어카를 끄는 어르신이 보이면, 자연스럽게 뒤에서 밀어드렸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묘하게 따뜻해졌고,
‘아, 사람을 돕는 삶이 이런 기분이구나’ 하고 느꼈다.

어릴 적, 내가 힘들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던 기억들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손 내밀게 만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자랐다.

그래서 생각했다.


“그래, 군대를 가자. 단순히 의무를 넘어서, 직업군인이 되는 건 어때?”

간부로 바로 들어가기엔 내가 공부를 너무 안했으니 무리라고 생각했고 , 일단 병사로 입대해서 안에서 지원하자고 마음먹었다.
직업으로서 군인은 멋있어 보였고, 내가 좋아하는 방향과도 잘 맞을 것 같았다.


"국가를 지키고 국민을 지키는 사람들이니까."


그러다 헌병 특수임무대라는 병과를 알게 되었다.
707특전사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특수부대였다.
마침 지원 시기였고, 자원입대가 가능했다.
경쟁률은 17:1. 붙을 거라곤 생각 안 했지만 일단 부딪쳐 보기로 했다.

1차 서류를 넣었고 합격했다.
2차는 체력검정. 어렷을때부터 운동은 좋아했어서 어렵지않게 합격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3차 면접. 면접장에 들어서니
특전사 상사, 육군 대위, 중령, 준위. 네 명의 간부가 앉아 있었다.


중령님이 내 생활기록부를 보더니 말했다.
"무단이 200개가 넘네요?"

그 말에 난 순간 얼어붙었다.
“…네, 맞습니다.”

여기서 끝나면 무조건 떨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그땐 정말 어렸고, 많이 방황했었습니다.
이제는 정신 차리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힘들다는 특수임무대에 지원하게 됐고,
불량학생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저는 이제 다릅니다.
그걸 증명하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들은 간부들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포부가 좋다”, “마음에 든다”는 말도 들었다.
그렇게 면접은 끝났다.

약 1주일쯤 지나고나니 결과 발표일!
나는 기대도 안 하고 확인했는데—
합격.

믿기지 않았다.
그리곤 바로 다음 주, 5월 23일이 입대일이었다.

내가 지원하고 체력검정, 면접까지 다 보고 입대일까지가 딱 한 달 걸렸다.


남은 일주일 동안 정신이 없었다.
무얼 해야 할지, 어떻게 보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말했다.
“나, 다음 주에 군대 가.”

부모님은 깜짝 놀라셨다.
“그게 뭔 소리야? 갑자기?”

그래서 말했다.
“한 달 동안 지원하고, 체력검정도 보고, 면접도 다 봤어.
합격해서 다음 주에 입대야.”

부모님은 어벙벙하셨지만, 한편으로는 대견하셨다고 나중에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누구도 몰랐던 준비 끝에,
조용히 나만의 군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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