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처음으로 멈춰 선 날,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한 길.

19화. 처음으로 멈춰 선 날,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한 길

by 무명 흙

처음으로 멈춰 선 날,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한 길


일하면서 내 가장 큰 단점은 ‘참지 않는 성격’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끝까지 참지 못한다.
그게 나 자신을 위해서는 장점일 수 있지만,
나를 고용한 사람에게는 언제든 단점이 될 수 있다.

일을 하며 느꼈던 비효율적인 구조,
납득이 가지 않는 방식,
억울하게 혼이 나는 상황까지.
그 모든 걸 나는 절대로 넘기지 못했다.
늘 대표님과 부딪혔다.

대표님 역시 성격이 만만한 분이 아니었다.
당연히 아래 직원이 따지고 드니,
화가 나는 것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나도 그저 감정적으로 대응했던 게 아니다.
이유 없이 시비를 거는 사람도,
주어진 일에 대충 임하는 사람도 나는 아니었다.

나는 철저히 ‘체계’와 ‘효율’을 중요하게 여긴다.
불필요한 낭비, 불합리한 지시는
그저 시키는 대로 따르며 견디는 성격이 아니다.
억울한 말이 들리면 조용히 넘기지 않는다.
당연히 싸움은 반복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경호원인데…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눈앞의 현실은 분명 ‘경호’가 아니었다.
내가 하고 있는 건 수행비서의 업무였고,
그중에서도 관리부서가 맡아야 할 일들까지
자연스럽게 내게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맡기로 했던 건
‘보안’과 ‘신변 보호’에 관한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회의 준비, 일정 정리, 각종 업무 지원까지
경호원이라는 본래의 위치는 점점 흐려져갔다.

나는 결국 대표님께 말씀을 드렸다.
“대표님, 저 이렇게는 일 못 합니다.”
“제가 하던 업무들은 제 업무가 아닙니다.”
“저는 경호원이지, 비서가 아닙니다.”

대표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건 곧 우리의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나는 그 회사를 퇴사했고,
다시 새로운 직장을 찾기 시작했다.



한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곳을 찾기 위해 움직이다 문득,
그동안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어느새 숨 돌릴 틈도 없이 달리고 있었다.

앞만 보고, 오로지 앞으로만 걸어온 시간들.
미래를 위해 쉼 없이 쌓아온 시간들이었지만
몸도 마음도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내 안에선 알 수 없는 피로감이 한숨처럼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밥이나 먹자.”
“잘 지내냐.”
하루하루를 채우느라 잊고 지낸 익숙한 인사들.
그중 한 친구를 만나 이야기하게 되었다.

“나 진짜 힘들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한 번도 쉬지를 못한 것 같아.”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그동안 버텨온 나 자신이 스스로도 안쓰러웠다.
친구도 말했다.
“그래, 너 진짜 고생 많았다. 이제 좀 쉬엄쉬엄 해도 돼.”

따뜻한 말 한마디에 굳어있던 마음이 풀어졌다.
그렇게 대화가 이어지던 중,
친구가 하는 일이 생각보다 수입이 괜찮다는 걸 알게 되었다.

유통, 판매업 쪽 일이었는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수익이 좋았다.
“나도 좀 쉬는 김에 너랑 같이 해볼까?”
장난처럼 던진 말이
현실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친구와 함께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낯설고 어려웠다.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였기에 버틸 수 있었다.
서로 웃으며 일했고, 그 안에서 작지만 소중한 재미도 느꼈다.

그렇게 2년.
나는 그 시간 동안 잠시 멈춰 섰고,
그 멈춤은 내게 꼭 필요한 쉼표였다.

그리고 다시, 내 일을 하고 싶어졌다.
나는 연락을 돌렸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반응은 있었다.
다시 연봉 협상을 하고
그중 하나,
‘연봉도 중요하지만 배울 게 많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회사’
그곳을 선택했다.

지금 나는 한 기업 회장님의
수행원으로 일하고 있다.
수행경호, 수행비서, 수행기사
그 모든 역할을 혼자 도맡는 사람.

지금도 그 회사를 다니고 있고
예전보다 연봉은 줄었지만
아직 또래들에 비하면 많은 편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더 배우고 싶고
더 성장하고 싶고
더 높이 올라가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딘다.
멈추었던 그 시간을 딛고,
또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