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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입과 주둥이

by 콩나물시루 선생님

2학기도 어느덧 한 달이 훌쩍 넘어섰습니다. 학기 초, 가시지 않은 여름의 열기에 축 늘어지기 십상이던 아이들도 조금씩 서늘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차츰 일상을 찾아갑니다.


서로에게 익숙해진 2학기는 한결 편안합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편안함에 취해 조금씩 본색을 드러냅니다. 이런 안락함에 속아 서로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듭니다. 그 과정에서 불러일으킨 오해가 다툼의 싹으로 자라, 2학기는 편안한 만큼 다툼도 많아지지요.


물론 지난 1학기 하루하루 쌓아간 신뢰의 순간이 오해를 녹이는 데 큰 힘을 발휘합니다. 선생님도 아이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훨씬 넓어집니다.


1학기 회장이자, 2학기 부회장 희재는 참 말이 많고 행동이 부산스럽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말과 과한 행동이 다정함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미워할 수 없는 아이입니다.


반년을 함께 보내고 나니, 아이가 내뱉는 말속에 다정함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다만, 선생님의 입장에서 1년 내내 연이어 학급임원을 맞고 있기에 좀 더 차분하고 의젓해지라는 소리를 하루에도 열두 번씩 이야기합니다. 구슬려도 보고, 혼내도 보았지만 희재는 변함없이 사랑스럽게 떠들어대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1학기가 끝나갈 즈음 선생님 근처에서 밥을 먹던 한 아이가 조심스레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 혹시 희재 싫어하시는 건 아니죠?


아마 진지한 표정으로, 때론 인상을 찌푸린 채 희재에게 뭔가를 이야기하는 모습만 주로 보아서였을까요? 아이는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답변을 기다립니다.



-아니, 선생님 희재 좋아해. 아마 회장이 아니었으면 더 좋아했을 걸? 밝은 성격이 기분을 좋게 하잖아.


-다행이에요. 역시, 그런 것 같았어요.



아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활짝 웃어 보입니다.


누군가에 눈에 걱정이 될 정도로 제가 희재에게 엄했을까요? 혹시 희재도 오해하지 않을까 싶어 혼자 있는 틈을 타 희재에게 다시 한번 선생님 마음을 들려줍니다.


-희재야, 나는 네 성격이 정말 좋아. 네 말과 행동이 우리 반을 웃게 만들어 주거든. 다만, 항상 이야기했듯 선생님은 네가 임원을 맡고 있으니 조금만 더 의젓해지면 좋겠다.


선생님 말을 들은 희재는 예의 햇살처럼 밝은 웃음을 얼굴 가득 담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잘할 수 있다고, 2학기에는 더 잘하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합니다.






그 다짐은 어디 갔을까요? 2학기에도 희재는 희재였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밝고 신나게 떠들어 댑니다.



성교육 시간, 공공장소에서 친구들과 음란물을 보거나 장난으로 신음소리를 내지 말라고 지도합니다. 희재는 엄마와 아들, 1인 2역을 하며 신나게 이야기합니다.


-선생님, 저 엄마한테 신음소리가 뭐냐고 물었다가 등짝 맞았어요. 어디서 그 따위 소리를 배워왔냐고 소리치셨어요.



다른 반 친구가 베란다에서 불장난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날이었습니다. 불장난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던 선생님 말 틈으로 희재가 심각한 표정으로 끼어듭니다.


-아이코, 부모님의 내 집 마련의 꿈이 그대로 사라지는구나.



항상 이런 식이지요. 순간의 생각을 참지 못하고 내뱉는 경우가 많지만, 보통은 미워할 수 없는 말로 교실을 꽉 채워주니 아이들도 선생님도 매번 허탈하게 웃어버립니다. 오죽하면 요즘 저희 반 아이들이 저를 말리기 시작합니다.


-선생님! 웃지 마세요! 자꾸 선생님이 웃으니까 희재가 더 하는 거잖아요.


아이의 말대로 선생님이 자꾸 틈을 보이니 희재가 신이 나서 더 하는 거겠지요. 제가 먼저 달라져야겠습니다. 이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진지하게 희재에게 물어봅니다.



-희재야, 너는 입을 가지고 있어? 주둥이를 가지고 있어?



선생님의 질문에 희재는 무슨 말이지?라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며 머리만 긁적입니다. 이해를 도와주기 위해 다시 한번 설명합니다.



-보통 동물의 입은 입이라는 말 대신 주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너는 때와 장소에 맞는 말을 사용하는 입을 가지고 있니?

아니면 시도 때도 없이 떠들어대는 주둥이를 가지고 있니?



선생님 설명을 이해한 희재는 아하! 하는 얼굴로 배시시 웃어 보입니다.



-선생님, 전 벌써 주둥이로 변한 것 같아요.



씩 웃으며 자기 할 말만 하는 희재를 보니 당최 변할 생각도 없고, 그냥 이 모습 그대로 버티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엿보이네요.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도 남을 배려하는 다정한 주둥이라는 것에 감사하고 그냥 참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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