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반 아이들은 26명입니다. 26명이 한 교실에 있다는 것은 26개의 다른 생각이 공존한다는 뜻이지요. 다양한 생각과 감정이 한데 어우러진 교실은 날마다 다채로운 이야기로 가득 채워집니다. 매일 한 공간에서 예닐곱 시간씩 같은 것을 보고 배우지만, 아이들의 생각과 반응은 가지각색입니다.
이런 교실에 작은 균열이 생겼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이 오해를 낳고 관계의 균열을 가져왔습니다.
저희 반에는 1학기부터 지금까지 "선생님, 사랑해요"를 목놓아 외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자신만의 세계에서 조용히 학교생활을 즐기는 아이들도 절반 이상이지요. 이 아이들도 처음에는 선생님의 사랑을 목놓아 울부짖는 친구들의 모습이 재미있었나 봅니다. 친구들의 엉뚱한 말과 행동에 웃음 짓고, 때론 은근히 맞장구도 치며 1학기를 함께 보내왔으니까요.
그런데 2학기가 되고 나니, 선생님의 몇몇 열성팬이 이런 아이들에게도 자신들의 사랑 표현을 강요하기 시작했나 봅니다.
시작은 점심시간이었습니다. 열성팬 중 몇 명이 예의를 지킨다며 선생님이 수저를 들고 난 후 밥을 먹기 시작합니다. 어처구니없는 그 모습이 귀여워 아이들에게 밥을 먼저 먹으라고 말은 하지만, 따로 제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기에 동참하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늘어갑니다. 식탁에 앉은 아이들은 수저를 내려놓고 선생님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선생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선생님이 수저를 들고 밥을 한 입 삼키면 그제야 아이들은 웃으며 밥을 먹기 시작합니다.
학교 현장과 동떨어져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 없는 식사 예절을 또 누군가에게 전해 들었을까요? 물론 장난과 진심이 섞여있긴 하지만 선생님을 빤히 바라보며 선생님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예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먼저 밥을 먹으라고 말은 하지만 매번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습니다.
이게 화근이었나 봅니다.
누군가는 자발적으로 동참했지만, 누군가는 제가 모르는 사이 '선생님께 예의를 지켜야 한다'한다며 참여를 강요받았나 봅니다.
급식을 먹고 돌아오니 한 아이가 서럽게 울어댑니다. 교실 밖에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아이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키고 조심스레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냅니다. 선생님이 분명 밥을 먼저 먹어도 된다는 했는데, 최근 몇몇 친구들이 너도 예의를 지키라고 말한 것이 너무 속상하다고 합니다.
아이의 말에 선생님도 잠시 생각을 멈추어 봅니다. 누군가의 애정 표현이 다른 누군가에는 감정의 강요로 여겨질 수 있었겠네요. 아이들이 보여주는 애정 어린 마음과 행동에 마음이 설레어 다른 아이들의 마음을 놓친 것 같습니다.
하교 시간 아이들을 앉혀놓고 차분하게 마음을 담아 이야기를 전해봅니다.
나쁜 마음을 강요하지 않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좋은 마음은 어떨까요?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다만 싫어하는 것을 당사자 앞에서 티를 내거나, 혹은 함께 욕해 주길 바라는 건 무례한 일이지요.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상대가 부담스러운 정도로 과하게 티를 내거나, 혹은 나와 함께 열광해 주길 바라는 것도 무례한 일이지요.
저희 반 여학생 하나가 좋아하는 남자 아이돌 가수를 예로 들어줍니다. 내 눈에 최고인 아이돌 가수를 옆에 앉은 친구에게 같이 좋아하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공감해 줄 수 있겠지요. 한 발 더 나아가 함께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를 표현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이 알아야 합니다.
미리 안내를 해 주었어야 했는데, 아이들의 애정 어린 표현에 마음의 빗장이 풀려 안내가 늦어진 것 같습니다.
긍정적인 감정은 항상 자유롭게 표현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 표현이 누군가에게 강요로 비치지 않도록 조율하는 법도 가르쳐야겠습니다.
사실 선생님인 저도 그 선을 지키는 게 참 어렵습니다. 이런 고민이 싫어 감정을 감추고 살았던 건데 마음을 드러내기 시작하니 조율하기 더 어려워집니다. 제 마음에 아이들을 들이기로 마음을 먹은 이상 좀 더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