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 접어들었습니다. 완연한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가을색을 잔뜩 머금은 잎사귀들이 하나, 둘 바닥을 채워갑니다.
방과 후, 학부모단체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행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수요일이라 3학년부터 6학년까지 하교 시간이 모두 동일합니다. 6학년이라 학부모 주최 행사에 큰 관심은 없지만, 혹시나 너무 몰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걱정이 앞섭니다. 교실 정리 후 선생님도 1층 현관 앞 행사장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질서 있게 행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갑갑한 교실에만 있다 한결 포근해진 가을 햇살을 맘껏 즐겨봅니다. 따스한 햇살을 품은 가을바람이 가슴으로 훅 불어 들어옵니다. 교실에서는 느낄 수 없던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아직 하교하지 않았던 저희 반 아이 하나가 선생님을 보고 달려옵니다. 10분 전까지 하루 종일 교실에서 얼굴을 맞대고 있었는데, 교실 밖에서 본 선생님은 좀 다른 가 봅니다. "선생님!"이라고 외치며 선생님을 향해 달려옵니다. 웃으며 다가오는 아이를 보니 저도 더 반갑게 느껴집니다.
선생님 옆에 바짝 붙어선 아이는 재잘재잘 자신의 이야기를 떠들어댑니다. 교실에서 볼 수 없던 햇살을 가득 품은 아이의 모습이 사뭇 귀엽습니다. 제 할 말을 마친 아이는 꾸벅 인사를 하고 학원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아이가 떠나고 또 다른 아이가 선생님을 발견하고 반갑게 달려옵니다. 지원입니다. 같은 학원을 다니고 있는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햇살을 받으며 가을 하늘만큼이나 말갛게 웃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뜬금없는 말이 툭 튀어나옵니다.
-교문까지 선생님이 바래다줄까?
-정말요?
데려다주겠다는 선생님의 말에 아이는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함박웃음을 지어 보입니다. 행사도 이제 거의 마무리되었습니다. 행사장을 뒤로하고 교문을 향해 지원이와 나란히 타박타박 걸어갑니다. 내 옆에 선 아이의 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텅 빈 운동장을 가로지릅니다. 매일 교실에서 보던 얼굴인데 나란히 걷는 옆모습을 보니 아이의 얼굴이 사뭇 낯설게 느껴집니다.
빤히 쳐다보는 선생님의 눈빛을 느꼈는지, 지원이가 갑자기 가방을 앞으로 둘러맵니다. 가방 앞주머니 지퍼를 열고 뒤적거리기 시작합니다. 볼록한 앞주머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듭니다. 작은 초코 알갱이를 하나씩 톡톡 손으로 뜯어먹는 과자입니다. 어릴 적 선생님도 문방구에서 사 먹던 불량식품입니다. 아직도 이런 음식을 팔고 있었네요. 아이가 진지하고 정중하게 선생님께 한 알을 권해봅니다.
-선생님, 드셔보세요.
세상 귀한 음식을 권하듯 아이는 예의 바르게 선생님께 한 알을 내밀어 봅니다. 선생님 입장에서 불량식품은 먹지 말라고 해야 하는데... 선생님과 학생이 운동장에서 불량식품을 서로 권하며 나눠 먹는 모습이 어처구니없지만 왜 이렇게 즐거워 보일까요?
-좋아, 선생님도 어릴 적에 이런 거 엄청 먹었는데. 고마워! 잘 먹을게.
선생님은 손바닥에 알알이 떨어진 초코 알갱이를 한입에 털어 넣습니다. 당연히 거절할 거라 생각했던 선생님의 다른 반응이 신기했던지 아이는 계속 불량식품을 권해줍니다.
-저 선생님이랑 이거 나눠 먹을지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나도 사실 우리 반 학생이랑 불량식품을 나눠 먹을지 상상도 못 했는데... 하고 싶은 말을 목 안으로 삼키고 아이에게 빙그레 웃어줍니다. 가을바람이 담아 온 여유 때문이었을까요? 아마도 우연히 마주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아이가 건넨 다정함이 불량식품을 추억을 담은 특별한 간식으로 바꾸어 준 것이겠지요.
아이의 떠나는 뒷모습에, 아이가 보여준 다정한 마음에 손을 흔들어 보입니다.
지원아, 함께 해줘서, 함께 나눠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