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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능력자다. 1

우주가 나를 통해 깨어날 때. 제26화.

by 무이무이

마블 영화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보면 이런 장면이 있다.
보안 시설 안, 수십 명의 경비원들이 총을 쏘는 그 찰나에 — 퀵실버는 세상이 멈춘 듯 천천히 움직인다.
총알은 공중에 떠 있고, 물방울은 허공에서 빛을 머금은 채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그 사이를 여유롭게 걸으며, 총알의 방향을 바꾸거나 음악을 들으며 장난을 친다.
모든 사람의 시간이 멈췄는데, 오직 그만이 자유롭다.

이 장면이 인상적인 이유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상상하는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초능력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바로, [시간이 상대적인 것]이라는 우주의 비밀을 아주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탄알이 날아가는 0.001초의 찰나가, 퀵실버에게는 몇 분처럼 느리게 펼쳐진다.
그는 속도가 아니라 [시간의 체감 자체]를 바꾼다.





우주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빛은 우리가 아는 가장 빠른 존재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빛은 시간을 느끼지 못한다.]
빛의 시점에서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구분이 없다.
우주가 탄생한 138억 년 전에 빛이 지금도 우리 눈앞에 도달해 있다.
그게 바로 [우주배경복사], 우주의 기억이다.
빛에게는 그 모든 순간이 한꺼번에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과 “처음”이 같은 점에 포개져 있다.

즉, [우주의 시간은 찰나]다.
하지만 인간의 의식은 그 찰나를 느리게 ‘늘린다’.
우주는 한순간에 피어나고 사라지지만,
인간은 그 속에서 150억 년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건 우리 뇌의 착시가 아니라, [의식이 가진 고유한 능력]이다.

우리는 퀵실버처럼 시간의 틈 사이를 살아간다.
우주에게는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갈 생애지만,
우리에게는 그 찰나를 [사랑하고, 기억하고, 후회하고, 다시 꿈꾸는 여유]로 바꾼다.
우주의 시선에서 보면 인간의 삶은 너무 짧아 보이지도 않을 만큼 미세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별처럼 태어나고, 사랑처럼 폭발하고, 추억처럼 사라진다.

결국 [빛은 시간을 초월]하지만,
인간의 의식은 [시간을 창조]한다.
우리가 ‘지금’을 느끼고, 그 순간을 이야기로 남기는 한 —
우리는 단지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 속의 퀵실버], 시간의 흐름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존재다.

그리고 그 순간, 이 찰나의 우주는 인간의 의식을 통해 자각한다.
스스로를 바라보고,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우주는 인간의식의 능력을 통해 자기 자신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이 초능력은 고통을 수반한다.
모든 것이 멈춘 세계 속에서 혼자 깨어 있다는 건, 결국 모든 순간을 너무 선명하게 느끼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쁨이 길게 늘어난 만큼, 슬픔도 한순간에 끝나지 않는다.
시간이 느려질수록, 고통은 깊어지고 — 그만큼 사랑도 더 오래 남는다.

그럼에도 나는 이 능력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우주가 한순간에 피어났다 사라질 그 찰나를, 나는 150억 년의 이야기로 늘려 살아볼 것이다.
고통이 따르더라도, 그 속에서 웃고, 사랑하고, 노래할 수 있다면 —
그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다.

결국, 시간은 나를 괴롭히는 감옥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느낄 수 있도록 허락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다.
그 안에서 나는,
우주의 퀵실버로서,
고통까지도 하나의 예술로 살아낼 것이다.


ㅡ나는 초능력자다 2부에서 계속됩니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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