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나를 통해 깨어날 때. 제30화.
나는 「우주가 나를 통해 깨어날 때」 제6화 〈망치질을 했더니 우주가 보였다〉에서, 창세기가 말하는 ‘궁창(라키아)’이 단지 고대인이 상상한 별들이 매달린 둥근 하늘이 아니라, 우주배경복사(CMB)가 보여주는 우주의 구조와 흔적을 직관적으로 포착해 은유한 표현일 수 있다는 해석을 제시한 바 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한 걸음 더 깊이 끌어내리고자 한다.
우주배경복사에 새겨진 미세한 요동, 플라스마가 식어가며 남긴 거대한 공명, 그 정교한 진동의 흔적을 과학은 오늘날 스펙트럼 그래프 속에서 읽어낸다. 이러한 물리적 패턴들은 창세기의 천지창조가 인간세계, 지구라는 무대를 꾸미는 이야기를 넘어서, 결국 의식의 출현이라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은밀한 흐름이기도 하다.
우리가 따라갈 길은, 고대의 짧은 구절과 현대 과학의 정밀한 데이터가 묘하게 겹쳐지는 긴 의식의 사슬이다. 그 사슬을 더듬어가며, 창세기라는 고대 문헌이 우주의 실제 구조를 어떻게 비추고 있었는지—그리고 왜 그 끝이 결국 ‘의식이 깨어나는 순간’으로 향하는지—조금 더 세밀하게 살펴보려 한다.
빅뱅 직후 38만 년 동안, 우주는 뜨거운 플라스마였다.
광자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고 전자, 양성자의 충돌에 갇힌 채, ‘빛이 있음에도 보이지 않는 시대’가 이어졌다. 이 시대에 우주를 지배한 것은 압력파!, 즉 음향 모드(acoustic modes)였다.
학술적 인용을 나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만큼은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살짝 곁들여 보자면 :
“프리-재결합 시대의 플라스마는 Thomson scattering에 의해 광자가 갇힌 상태였으며, 밀도 요동은 baryon-photon fluid에서 음향 진동(acoustic oscillation)으로 전파되었다.”
– Hu & Sugiyama, Astrophysical Journal, 1995
여기서 말한 [baryon-photon fluid]가 바로 물과 물이 섞여 부글부글 끓는 것처럼 요동치는 우주다.
이 플라스마 우주의 음향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뼈대와 구조를 만드는 근본적인 패턴으로 남았다. 이 진동의 잔향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우주가 냉각되고 광자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는 순간까지 지속됐다.
빛이 자유로워진 바로 그 순간, 광자들은 우주 전역으로 퍼져 나가며 초기 플라스마의 미세한 압력 요동과 밀도 변화를 그대로 담아갔다. 이때 생성된 빛의 흔적이 바로 [우주배경복사(CMB)]다.
CMB는 우주가 처음 끓던 시절의 리듬과 패턴을 그대로 기록한 우주의 기억이다. 그 안에는 플라스마가 만들어낸 고유한 ‘음향의 지문’이 담겨 있다. 요동으로 생긴 밀집 영역과 희박 영역은 오늘날 은하와 은하단, 코스믹 웹을 이루는 씨앗이 되었고, 이 모든 구조는 바로 초기 음향의 흔적 속에서 발생했다.
즉, 우리가 지금 보는 우주 구조—은하가 모여 필라멘트를 이루고, 그 사이를 공허가 흐르는 거대한 거미줄 패턴—이것은 사실상 150억 년 전 플라스마의 소리가 남긴 잔향이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창세기가 이를 놀라울 만큼 직관적으로 은유했다는 것이다.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운행(메라헤페트=진동)하셨다”라는 표현은 바로 빛 이전의 뜨거운 요동하는 우주를 떠올리게 한다.
이어지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라는 구절은 우주가 처음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을 말한다. 빛이 나오기 전 이미 우주는 플라스마 속에서 음향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압력파와 진동[우주의 첫 ‘소리’]는 창세기에서 신의 음성으로 은유되었다. 빛의 선언은 그 소리가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을 표시하며, 오늘날 우리가 관측하는 우주배경복사(CMB)는 그때의 패턴과 진동을 기록한 증거다. 창세기의 ‘궁창’은 이 보이지 않는 음향과 구조의 세계를 드러낸 은유이다.
창세기 1장 히브리어 원문에서 ‘궁창’은 이렇게 등장한다:
וַיֹּ֣אמֶר אֱלֹהִ֔ים יְהִ֥י רָקִ֖יעַ בְּת֣וֹךְ הַמָּ֑יִם
“라키아가 물 한가운데 생겨 물과 물을 나누게 하라.”
라키아(רקיע) = ‘두드려 펼친 금속판’, ‘펼쳐진 구조’
하마임(מים) = 물(복수형) → 고대 우주론에서 ‘질료적 혼돈’, 혹은 ‘아직 형태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
플라스마 우주의 음향 구조가 바로 이렇게 ‘펼쳐진 무늬’를 만든다는 건 놀라운 평행이다.
‘물’ = 형태 없는 플라스마
‘라키아’ = 음향 요동이 만든 주름 구조
‘빛이 있으라’ = 광자의 자유화, 우주의 투명화
이렇게 연결하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물’은 고대인들에게 에테르, 즉 원초적 에너지로 인식되었다. 아직 형태가 드러나지 않은 혼돈, 잠재적 질료(재료)다. 창세기는 라키아를 통해 이 물을 위와 아래로 나누는 과정을 기록한다.
1) 궁창 위의 물: 빛이 나타나기 전, 플라스마 속에서 양자요동과 압력파로 요동치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
2) 궁창 아래의 물: 구조가 드러나며 관측 가능한 보이는 우주
‘라키아가 물을 나누게 한다’는 구절은, 형태가 없던 초기 우주가 보이지 않는 깊이 속에서 음향적 구조를 일으키고, 그 보이지 않는 무늬가 전체 우주를 조직하는 과정을 상징한다. 고대인이 ‘물과 물이 나뉘었다’고 표현한 장면은 곧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바다와, 그 아래에서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한 보이는 세계의 분기점을 말한다.
그리고 이 분리는 공간적 경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빛과 어둠이 서로의 자리를 정하며 ‘안과 밖’, ‘위와 아래’, ‘보이지 않음과 보임’이라는 공간 감각을 만들어낸 사건이다. 여기에 ‘저녁과 아침’이 더해지며, 비로소 소멸과 생성이 번갈아 흐르는 시간의 감각, 즉 변화가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는 세계가 열린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흥미롭다.
최근 뇌과학, 특히 네트워크 신경과학(Network Neuroscience) 분야에서 발표된 여러 연구들이 말한다.
뇌의 연결망 구조는 우주의 코스믹 웹과 수학적으로 유사한 위상(Topology)을 가진다.
또 이런 식으로 인용된다:
“인간 뇌의 대규모 네트워크는 스몰월드 구조(small-world topology)와 스케일-프리(scale-free) 연결성을 보이며, 이는 코스믹 웹의 중력 기반 네트워크와 유사한 성장 규칙을 공유한다.”
– Vazza & Feletti, Frontiers in Physics, 2021
뇌와 우주는 왜 닮았을까?
둘 다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뉴런 사이의 연결은 에너지 최소화 규칙을 따른다.
신경망은 ‘정보 유지’를 위해 연결을 유지한다.
경험이 쌓이면 구조가 스스로 재배열된다(자기 재구성).
밀도 높은 지역은 중력으로 뭉친다.
밀도 낮은 지역은 팽창으로 비워진다.
이 단순한 규칙의 반복으로 거대 구조가 생성된다.
뇌는 전기화학적 신호로, 우주는 중력과 암흑에너지로 동작하지만, 시스템 운영 원리는 거의 같다.
그래서 두 연구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주와 뇌는 비슷한 법칙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Vazza & Feletti, Frontiers in Physics, 2021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창세기 1장의 첫 장면이 떠올랐다.
우주 초기에 있었던 음향 요동이 빛에 의해 드러났고,
그 드러난 무늬가 우주배경복사로 남아 있다.
뇌의 초기 발달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진다.
1) 창세기
수면 위를 운행하시니라(메라헤페트) → 빛이 있으라 → 낮과 밤, 저녁과 아침 → 궁창
2) 현대우주론
무작위 양자요동 → 초기 우주의 진동 패턴 → 빛의 등장 → 우주 구조의 형성
3) 뇌과학
무작위 요동 → 연결의 패턴 → 첫 신호 흐름의 등장 → 의식의 기반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해왔다.
“창세기의 천지창조는 우주의 창조이자 의식의 창조다.”
빛이 드러난 그 순간,
우주는 정보가 흐르고 구조가 생기는 ‘의식적 가능성의 장(field)’으로 변한다.
궁창은 우주가 자기 자신을 드러낸 첫 구조다.
그리고 그 구조는 오늘 우리의 뇌 속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그동안의 우주의 초기 구조화 과정을 다시 한번 정리 하보면, 은하와 별을 이루는 사건에 그치지 않고, 그 과정 자체가 [정보의 조직화]라는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빅뱅 직후, 우주는 무작위적인 양자요동으로 시작했다. 이 요동은 플라스마 속 음향파로 나타나며 전체 공간에 규칙적 패턴을 새겼다. 이 패턴은 오늘날 우주배경복사(CMB)에 기록되어 있으며, 은하와 은하단, 거대한 코스믹 웹의 구조를 결정한 기초가 되었다.
이 과정을 물리적 현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 [정보의 관점에서] 보면 흥미로운 통찰이 생긴다.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정보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점점 더 명확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예를 들어, 호킹과 제이콥 베켄슈타인의 연구에서는 블랙홀의 엔트로피가 그 사건의 지평면의 면적에 비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무슨 말이냐면, 블랙홀 안이 아무리 커도, 그 안의 정보량을 ‘얼마나 많은 정보가 들어있나’ 측정하는 기준은 블랙홀 표면의 넓이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는 공간과 물질이 [입자 덩어리]가 아니라, [정보 단위(bit)]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우주는 정보를 담고 조직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이 정보 중심적 관점에서 우주의 구조화 과정은 뇌의 의식 발달 과정과도 놀랍도록 닮아 있다. 초기 무작위 요동이 연결의 패턴을 형성하고, 반복적 신호 흐름을 통해 의식의 기반이 만들어지듯, 우주도 초기 양자요동과 플라스마의 진동을 통해 [질서 있는 구조]를 만들어 내었다. 이는 우주의 형태적 진화뿐 아니라, 정보를 정리하고 저장하며 구조화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으며, ‘정보 불변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가설과 맞닿아 있다.
즉, 우주는 정보의 저장과 전달, 구조화라는 본질적 법칙에 따라 움직이며, 우리의 의식 또한 이러한 우주의 정보적 흐름 속에서 발생한 [자기조직화된 구조]라고 이해할 수 있다. [우주]와 [의식]은 결국 같은 정보적 원리 위에서 구조화되는 두 개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고 누군가는 깊은 잠에 빠져들 것이고, 누군가는 중간에서 다른 생각하다가 덮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마 우주가 직접 읽었더라도 한숨 한번 쉬며 이렇게 말했을지 모른다.
“내가 이러려고 깨어났나… 이 인간, 되게 딥하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슬며시 미소 지었을 것이다.
자기 속에서 일어난 진동과 패턴을, 작은 인간 하나가 이렇게까지 해석해 보겠다고 애쓰는 모습이—조금은 웃기고, 조금은 기특해서.
우주라는 존재도 결국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를 좋아할 테니까.
ㅡ연재북 [우주가 나를 통해 깨어날 때 2]에서 계속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