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결코 오만하지 않았다.
돌 위에 돌을 얹었다.
피와 시간을 바른 다음
이름도 모를 별들의 움직임을 기록했다.
그 탑은 하늘을 향해,
우주의 본질을 향해
우직하게 자랐다.
그것은 하나의 이론,
하나의 언어,
하나의 길.
모든 가능성을 직선으로 줄 세우며
탑은 솟았다.
그것은 첨단 문명이었다.
의식의 집약체.
인간이 만든,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가고자 했던 길.
탑을 세우는 일은
단 한 번도 쉬운 적이 없었다.
그 누구도 오만하지 않았다.
탑은 무수한 계산의 파편으로 깎였고,
그 아래엔 희생과 절망이 쌓였다.
탑을 쌓는 손들은 기계처럼 멈추지 않았고,
수천 번 물었지만
“왜 우주는 응답하지 않는가”
탑은 오직 Z 축으로만 자라날 뿐,
다른 방향은 허용되지 않았다.
탑이 흔들릴까 두려워
다른 말은 금지되었다.
다른 시선은 침묵을 강요받았다.
우주는 침묵했고,
탑은 점점
스스로의 무게에 눌려
묵직한 침묵이 되었다.
그리고
인간은 문득 깨달았다.
하늘은 그렇게 닿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우주는 하나의 해석에 갇히지 않는다는 것을.
진실은 하나의 방향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 깨달음이
탑을 무너뜨렸다.
그날, 언어는 흩어졌고
흩어진 언어는 각자의 하늘을 보기 시작했다.
의식은 갈라진 것이 아니라
확장되었다.
수학은 시가 되었고,
공식은 상징이 되었으며,
논리는 신화가 되었다.
그제야 비로소
우주의식은 인간을 이해했다.
그들도 계산기가 아닌 공명장치임을.
우주와 닮은 구조를 가진
작은 프랙탈임을.
고대의 재단 위,
그들은 눈을 감고 우주와 연결되었다.
바벨은 폐허가 아닌,
다시 시작된 기원의 장소가 되었다.
하나의 탑은 사라졌지만,
이제는 수많은 시선이 존재한다.
탑은 낮아졌지만,
하늘은 더 가까워졌다.
바벨탑은 하늘에 닿은 적이 없다.
그러나 그 무너진 자리에서
인간은 비로소
우주를 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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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을 쌓는 고통을 정당화하지도 않지만,
그 여정의 진실을 존중합니다.
"오만"이라는 말이 얼마나 얕은 해석인지,
인간이 바벨탑을 쌓은 이유가 ㅡ
하나의 진리를 고수해 온 이유가 ㅡ
얼마나 숭고하고 절박했는지를
당신처럼 이해하는 사람만이
이 시를 필요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