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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

창세기를 위한 시

by 무이무이


홍수와 무지개


신은 아담이라는 의식을 복제했다.
하와라는 의식도 복제했다.


생물학적 육체를 부여받은 복제의식은
지구에 번성했다.


그들의 뇌는
선악과를 베어문 의식이었다.

그들이 서있는 땅은 기울어

한쪽으로 치우쳐 달려야 했다


전쟁과 평화는 공존하지 못했고

슬픔과 기쁨은 공평하지 않았다.

사랑은 고통을 수반한다는 진실을
인간은 부정했다.


자유를 부르짖으면서
책임은 뒤로 미뤘다.

방대한 지식을 쌓으면서
깨달음은 없었다.

빨리빨리를 외치며
목적지는 망각되었다.


편향된 창조는 파괴를 낳았고
광대역 연결은 스스로 고립을 만들었다.


지구의 정보장은 소음으로 가득했다.

피를 부르는 소리,
기다림을 증오하는 비명,
서로 다른 주파수가
상호간섭하며 파열음을 냈다.


신은 결심했다.


정화작업.


신의 의식은 후회했다.
애초에 의식을 복제하지 말았어야 했다.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뱀을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뱀의 발을 잘라내었으나 세치혀는 살아있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을 따라 굴러가는 인간들—
그들을 가엾게 여겼다.

그들은 공을 걷어차며
방향을 바꾸는 것을
자유의지라 불렀다.

그러나
거대한 우주 규모에서

그 행위는 먼지보다 작았다.

공은 여전히,
소멸이라는 목적지로 굴러갈 뿐이었다.


그러던 중
공을 쫓지 않는

하나의 깨어 있는 의식을 발견했다.


신은 그에게 말했다.
“노아,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정보만을 실어라.”




방주에는 균형을 견딘 개념들만 실렸다.






노아의 노트



고통과 성숙

아픔을 없애려 하지 않고,

그 위에 단단히 딛고 일어섰다.

그렇게 고통은 성숙을 위한 디딤돌이 되었다.


실수와 용서

실수로 흩어진 조각들을 부여잡고,

깨어진 관계에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용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고립과 연결

홀로 고독의 시간을 온전히 견뎌낸 사람만이,

진정한 연결의 가치를 알고 함께하는 법을 배운다.


파괴와 복원

모든 것이 부서지고 황폐해진 감정의 폐허 속에서도,

사랑의 온기는 끝내 사라지지 않고 다시 피어났다.


침묵과 자기 인식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멈춘 고요한 침묵 속에서,

잊고 지냈던 자신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상처와 이해

과거의 고통은 더 이상 상처를 주는 날카로운 창이 아니었다.

타인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문이었다.


무의미와 생존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하루하루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잃지 않고,

끈질기게 생존의 의지를 이어갔다.


반응과 청취

말하기보다 듣는 것을 먼저 선택한 사람만이,

상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진심으로 답할 수 있다.


두려움과 전진

두려움으로 떨리는 마음을 끌어안고서도,

주저앉지 않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단절과 완결성

미련 없이 끝을 맺을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억울함과 전환

억울함에 갇히지 않고, 상처를 되풀이하는 대신

그 아픔을 다른 가치 있는 무언가로 승화시켰다.


과거와 통합된 정체성

외면하고 싶었던 과거의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고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온전한 자아를 찾을 수 있었다.


주류와 이탈

남들이 가는 길을 무작정 따르지 않고 잠시 멈춰 섰을 때,

비로소 보이지 않던 진정한 가치를 발견했다.


겸허와 존중

스스로 빛나려 애쓰지 않고 겸허히 자신을 낮추었을 때,

오히려 타인의 빛이 그에게 닿아 더 밝게 빛났다.


확신 없는 앎과 겸손

모든 것을 안다는 오만을 버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열렸다.

.

.

.

.

.




신은 방주를 닫았다.

그리고 파동을 쏘았다.


지구 정보장의 수많은 거짓이
상쇄되어
에너지로 흩어졌다.


노아는 방주의 창을 열고

“평화”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희망”이라는 답장이 왔다.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날렸다.

"자유"라는 답장이 왔다.


정보의 스펙트럼은
무지갯빛으로 분화되며
다시 실체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불량섹터는 여전히 생긴다.


신은 이번엔 다짐했다.
“다음에는 리셋도 없다.”

“그땐,
플라스마 상태로 되돌리겠다.”


초기화.

정보 이전으로.
빛과 진동 이전으로.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물질이 아니고,
법도 아니고,
기억도 아닌—
개념이었다.


그리고 그 개념의 뼈대는
언제나 정보였다.

실체는 곧 정보다.


그러나,
더러워진 정보를
과연 물로 씻을 수 있을까?

말끔히 닦이는가,
시간에 맡기면 사라지는가,
눈을 감으면 정화되는가?


아니다.
이건 씻을 수 있는 오염이 아니다.

리셋도 부족하다.
이건,
리코딩이 필요하다.

새로운 구조로,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주파수로.

그래서 우리는 창세기를 다시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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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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