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를 위한 시
어린양의 눈
아벨은 어린양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 맑은 눈동자 속에는
밤하늘의 별빛이 담겨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짐승의
투명한 눈동자 속에서 그는 우주를 보았다.
"피는 단지 피가 아니다.
이건 생명의 원천이다.
에테르다.
신의 호흡이 살아 있는 그릇이다.”
그렇게 믿었고,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에테르의 울림을 느꼈다.
제단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 속,
그 어딘가에서 신의 응답을 느꼈다.
우주의 소리를 직접 듣는 것,
그것이 신앙의 본질이라 생각했다.
가인의 땅
가인은 아벨을 멀리서 지켜봤다.
손에는 땀과 함께 흙이 묻어 있었다.
가인의 눈에 담긴 순진함이 땀방울과 함께 흘러내리는 듯했다
가을 햇살 아래 땀이 마를 새도 없이
밭을 갈고, 곡식을 거두고, 씨를 뿌리며
땅속에서 진리를 캐내려 애썼다.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그는 곡식의 가장 좋은 부분을 골라 제단에 바쳤다.
그러나 하늘은 아무 말도 없었다.
들판을 가득 채운 황금빛 곡식은 노고의 증거였지만,
동시에 그가 얼마나 외로운지 보여주는 거울이었다.
풍요 속의 공허함이 그의 마음 깊은 곳을 잠식했다.
“아벨은 별을 보고 나는 땅을 본다.
그는 소리를 듣고, 나는 울림조차 없다.”
자신이 버려졌다고 느꼈다.
그러나 신은 그를 버린 적 없었다.
그의 땅은 풍요로움으로 응답했고
문명은 번성했으며,
물은 마르지 않았다.
하지만 가인은 오해했다.
그 응답이 침묵 속에 숨어 있는 줄을 모른 채.
뒤틀린 믿음
아벨은 여전히 순수한 어린양의 피를 바쳤다.
제단엔 언제나 연기가 피어올랐다.
처음엔 하늘과 닿을 듯 투명하고 가벼운 흩날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벨은 제단 위에서 새를 쫓다가
저 멀리 황금물결처럼 출렁이는 밭을 보았다.
가인의 땅이었다.
햇살을 머금은 이삭들.
구부러지는 줄기마다 풍요가 흔들렸다.
그 순간,
아벨의 눈에 별빛 대신 황금빛이 들어찼다.
순수한 신앙 위로,
처음 내리는 서리처럼
차가운 욕심이 얇게 얼어붙었다.
그날 밤, 가인이 찾아왔다.
“왜 나는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가?”
손엔 곡식이, 어깨엔 먼지가,
눈빛엔 건조함이 가득했다.
아벨은 차갑게 대답했다.
“신은 희생을 원하셔. 피의 향을.”
무시하듯 뒤돌아 서는 아벨을
가인이 붙잡았다.
“내가 가진 걸 바치면, 나도 들을 수 있을까?”
아벨은 망설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신앙은 허황된 욕망이 되어
둘 사이에 거래가 시작됐다.
가인은 곡식을 바쳤고,
아벨은 그 위에 양의 피를 뿌렸다.
본질이 사라진 제단 위에서
제물은 의미를 잃고, 그저 숫자가 되어갔다.
점점 더 많은 피가 필요해졌다.
붉은 피는 제단을 적시고
검은 연기는 하늘을 가렸다.
더 이상 별은 보이지 않았고
아무런 울림도 없었다.
그건 신앙이 아니었다.
거래였다.
그건 응답이 아니었다.
조작된 신의 목소리였다.
마지막 속삭임
그러던 어느 날,
가인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제단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이건 내가 바란 신의 음성이 아니야.
이건… 피로 가려진 하늘일 뿐.”
그리고 그는 아벨을 바라보았다.
칼을 들었다.
피를 흘린 자를, 피로 멈추게 하리라.
그렇게 믿었다.
아벨은 쓰러졌다.
숨이 끊기자 제단의 연기도 사라졌다.
변질되었던 아벨의 검은 피는
붉은색을 되찾았고,
신앙의 본질을 기억하는
그의 에테르가 가인의 땅을 적시었다.
가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그는 엎드려
눈물과 아벨의 피가 스며든 땅을
움켜쥐며 오열했다.
아벨의 죽음으로 완성된 그 깨달음이,
형벌처럼 그를 덮쳤다.
그제야 가인은 알았다.
자신의 손에 묻은 흙과,
이마에 흐르던 땀방울이
바로 자신의 기도였음을.
가지마다 열린 열매와
알알이 맺힌 곡식,
마르지 않는 샘물,
이 모든 것이 침묵이 아니었음을.
그 모든 것이 자신을 향한
가장 뜨거운 응답이었음을.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놋 땅에 이르러 성을 쌓았다.
그것은 인간의 진정한 가치가 뿌리내린
첫 번째 땅이었다.
그 성벽 안에서,
가인은 홀로 있다.
영원히. 신의 음성이 닿지 않는 곳에서.
하지만 가인의 눈물과 아벨의 피가 스며든 땅은
침묵하지 않았다.
언젠가 그 땅에서
새로운 씨앗이 싹을 틔워
우주의 본질을 노래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