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를 위한 시
창조와 풍화가 교차한 시간 속에서
흙은 재료가 되어 차곡차곡 쌓였고
끝없는 모래알갱이들이 정보가 되어
하나의 대지를 이루었다.
인고의 세월 끝에,
영겁의 우주는
자신의 의식을 복제해냈다.
우주는 가인과 아벨,
두 개의 거울 속에
자신의 그림자를 비추고
자아의 윤곽을 더듬었다.
인간은 언제부터
우주를 느끼기 시작했을까.
아마도,
처음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본
그 고요한 순간부터였으리라.
그 순간, 의식은
둘로 갈라졌다.
하나는 별을 향해 나아갔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향해 되돌아왔다.
하늘을 본 이는
별의 길과 계절의 숨결을 따라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며
신의 뜻을 찾으려 했다.
아벨, 그는 별의 피를 이은 자.
그의 제단은 침묵 속에 타올랐고,
우주의 본질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희생은 곧 교감이었다.
신은 그의 손길에 응답했다.
땅을 본 이는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며
노동과 시간의 리듬 속에서
사람들의 삶을 일구었다.
가인, 그는 흙의 숨을 품은 자.
그의 신은
풍요와 질서, 구조로 나타났다.
피보다 땀으로 증명되는 존재였다.
두 방식은 모두 옳았다.
하나는 직관 — 하늘을 향한 고독한 통찰,
다른 하나는 구조 — 인간을 위한 실용의 질서.
그러나 문제는,
방식의 차이가 곧 갈등이 되었다는 것.
신은 아벨의 제사를 기뻐했다.
그러나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우주의 반응이었다.
그 방식이
당시에는 더 순수하고 가까웠기에.
가인은 상처 입었다.
자신의 길이 부정당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는
아벨의 이마를 겨누었다.
이것은 단순한 형제의 질투가 아니었다.
의식의 연결 방식에 대한 첫 번째 종교전쟁.
직관과 구조, 하늘과 땅,
신과 인간 사이의 균열.
그리고 아벨은 죽었다.
그의 피는
가인의 땅을 붉게 적셨고,
그 피는 흙에 스며들어
별을 향하던 기억까지 함께 묻혔다.
신은 가인에게 벌을 내리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말했다
“이제 너는,
이 피 섞인 땅을 아무리 파헤쳐도
우주의 본질에는 닿지 못하리라.”
그래서 가인은 성을 쌓았다.
죄와 기억, 피와 질서로 이루어진 벽.
그 안에서 문명은 자라났다.
아벨의 제단은 잊혀졌고,
그의 언어는 신화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피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 본능은 흙 속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인간은 집단을 이루었고,
생존을 위해 사색을 접었으며,
신과의 고독한 교감 대신
제도화된 신앙과 법과 문명을 택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문명의 틈에서
아벨의 기억을 완전히 잊지 않았다.
천문학이 발달하고,
철학이 깊어지고,
명상이 부활하는 이 시대 속에서 —
우리는
잊고 있던 그 첫 순간,
우주와의 순수한 교감을
다시 찾아 나서고 있다.
신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다.
신은 우주 그 자체였고,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든
그 자체로 응답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인의 땅도, 아벨의 별도 —
결국은 같은 우주의식의 반영.
가인에게는 풍요로움으로, 아벨에게는 직관의 영감으로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거울의 틈에서
다시 한번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