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허구의 인물이며,
실제 인물과는 어떠한 관련도 없습니다.
본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사건은 창작된 이야기로,
특정 개인이나 기관을 지칭하거나 묘사하는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작은 뒷주방. 초조해하는 후엔.
정숙은 그런 후엔을 바라봤다.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왜 그런 거예요?” 정숙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냥 아깝다… 그 이상이 있죠?”
후엔은 한참 아무 말이 없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저… 사실 김치 남으면 조금씩 싸서 집에 가져갔어요.”
정숙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집에요?”
“네…” 후엔의 목소리가 떨렸다.
“저 혼자 아니에요. 아들 있어요.
초등학교 4학년이에요.
학교 끝나고 오면 김치찌개 해줘요. 남은 김치로요.”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조심스럽게 이어 말했다.
“저… 한국 남자랑 결혼했어요. 처음엔 착했는데,
나중엔… 날 자주 때렸어요.
말 안 들으면… 발로 차고, 술 마시면 더 심하고…
그래서 아들이랑 같이 나왔어요.”
정숙은 눈을 깜빡였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후엔은 기껏해야 30살 정도였다.
20살에 20살도 넘게 차이나는 한국 남자랑 결혼했다.
서울에서 5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 대한민국 남쪽 끝이었다.
후엔은 참았어야 했다.
베트남에 있는 아픈 아버지와 엄마, 동생들을 위해서라도...
하지만 생존의 위기 앞에 아들마저
지킬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 들자,
집을 나올 용기가 생겼다.
엄마는 위대했다.
“지금은 월세방에서 둘이 살아요.
친정에 돈도 보내야 해요.
아버지 아파요. 동생 둘이 아직 어려요.
그래서… 남은 김치 버리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후엔의 눈가가 붉어졌다.
“돈 아껴야 돼요. 그래야 살 수 있어요.”
정숙은 말없이 후엔의 손을 잡았다.
손이 차갑고 거칠었다.
“후엔 씨… 그런 사정이 있는 줄 몰랐어요.”
“죄송해요. 그래도 잘못한 거 알아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정숙은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이민자라는 단어 속에는 단지 ‘외국인’이라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낯선 땅에서 가족을 위해 버티고 견디는 무게가 있었다.
그날 저녁, 정숙은 지완을 불러 조용히 말했다.
“여보, 나도 위생 중요하다는 거 알아요.
근데 후엔 씨가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들었어요.”
지완은 팔짱을 낀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당신은 너무 물러서 탈이에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손님에게 신뢰를 잃으면 다 끝이라고요.”
“맞아요. 그런데…” 정숙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은 가족을 위해 버릴 줄 모르는 사람인 거예요.
우리가 가르쳐주면 될 거예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봅시다.
어떻게 하면 낭비 없이, 청결하게 음식을 다뤄야 하는지.”
지완은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그 꼼꼼하고 완벽주의적인 눈빛 뒤에,
어쩐지 복잡한 감정이 일렁이는 듯했다.
며칠 후, 미소김밥의 주방은 달라졌다.
지완은 ‘재료 절약과 위생 교육’을 다시 정비했고,
후엔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주방을 닦고
소독하며 새로운 규칙을 지켜나갔다.
“김치는 먹을 만큼만~”
후엔은 사장에게 교육받은 대로,
김치를 손님 수에 알맞은 양만큼 담았다.
그리고, 미소김밥의 셀프반찬 배식대 아래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로 생겼다.
‘저희는 반찬 재활용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먹을 만큼만 담아주세요’
“사장, 나 반찬 버린다.”
후엔은 자랑이라도 하듯 남은 반찬을 잔반통에 가차 없이 버렸다.
“응, 그렇지. 잘했어요.”
음식 버리는 게 무슨 자랑이라도 된단 말인가?
솔직히 지완도 버려지는 잔반이 아까웠다.
지완은 김밥집이지만 특별한 서비스를 담고 싶었다.
김밥 한 줄만으로도 배부를 수 있도록
셀프바에 김치, 단무지, 미소된장국뿐 아니라,
호박죽, 샐러드, 물김치를 기본으로 세팅해 두었다.
처음 온 손님들은 감탄했지만,
이내 여러 번 담아 온 반찬들을 다 먹지 않고, 버렸다.
지금도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는
죽 한 그릇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이 배고픔에 고통받고 있을 것이다.
‘손님들이 먹을 만큼만 덜고, 다 드시면 참 좋을 텐데.’
지완은 지난번 올라온 리뷰에 댓글을 달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직원 교육을 잘못 시켜서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반찬을 재활용하는 일은 없도록 약속하겠습니다.
그리고, 미소 김밥의 새로운 이벤트가 있습니다.
잔반을 남기지 않는 손님의 이름으로
’ 지구 사랑 기부금‘을 500원씩 적립하고자 합니다.
버려지는 잔반에
멀리 있는 가족이 생각난 직원이 가슴 아팠나 봅니다.
잔반을 남기는 건 지구 환경에도 좋지 않다는 거 아시죠?
여러분의 작은 배려가
기아에 시달리는 지구 반대편 어딘가의 아이들에게
한 끼 식량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기부방법 : 잔반을 남기지 않은 고객 이름으로
기부 통장에 500원을 입금하고 내역을 확인해 드립니다!'
후엔은 여전히 미소김밥의 주방에서 일하고 있었다.
춘심이 후엔과 지완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후엔은 지금 누구보다 깨끗하게,
누구보다 정성스럽게.
고마운 마음을,
한 조각 김밥 속에 꼭꼭 말아 넣고 있었다.
- 5화, 다음 주 수요일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