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허구이며,
실제 인물과는 어떠한 관련도 없습니다.
본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사건은 창작된 이야기로,
특정 개인이나 기관을 지칭하거나 묘사하는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다음 날, 정숙이 출근했을 때,
그녀는 김밥 한 줄을 시켜놓고, 노트북을 하고 있었다.
미소 김밥의 실내장식은 꼭 카페 같았다.
어두운 조명, 푹신한 의자, 테이블 곳곳 콘센트까지.
그래도 회전율이 중요한 김밥집에 노트북은 좀 아니지 않은가?
주방 이모님이 흘끗 그녀를 곁눈질하며,
아침 9시부터 와 있었다고 귀띔했다.
정숙은 11시 30분 인근 회사들의 점심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참기로 했다.
물밀듯 손님이 쏟아지는 점심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정숙은 노트북에 열중해 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저... 손님, 죄송한데 저희 점심 식사 시간이 돼서요. 밥집이라 노트북은 좀 자제해 주시면...”
그녀는 인식하지 못했다는 듯, 미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아, 네! 죄송해요.”
사과를 받으니, 갑자기 괜히 말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손님은 왕, 친절, 미소 이런 말들은 장사 안 해 본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항상 실천해야지 하면서도, 작은 손해 앞에 친절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돌린다.
미소 하나만큼은 자부하여 이름도 미소 김밥이라 지었건만,
정숙은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서둘러 노트북을 정리하는 그녀에게 말했다.
“손님, 천천히 정리하셔도 돼요.”
“아니에요, 제가 죄송하네요.”
11시 30분, 밀려드는 손님에 정숙은 그녀와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그녀는 허둥지둥 가게를 빠져나갔다.
며칠이 지나도록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다.
동남아에서 온 주방 이모는 어눌한 말투로
‘여태 우산도 안 돌려주지 않았냐? 내가 뭐랬냐?
김 사장이 너무 인정이 많아 큰일이다,
아무한테나 그렇게 호의를 베푼다고 사람 마음이 다 똑같진 않다’며
사람 속을 뒤집어 놓았다.
그럴 땐 말도 야무지게 잘했다.
정숙은 장사를 시작하며 별별 사람을 다 겪어보았기에
우산 안 돌려주는 거야 뭐 그러려니 했다.
그래도 자꾸 예쁜 아가씨 얼굴에 지던 어두운 그늘이 떠올랐다.
‘밥은 잘 먹고 다니려나?’
자세히 보니, 그녀는 늘씬하다 못해 야위었다.
하얀 피부에 웃음기 없는 얼굴은 창백하고 아파 보였다.
정숙에게도 24살의 큰 딸이 있었다.
그녀에 비하면, 자기 딸은 훨씬 생기 있고 피어나는 꽃 같았다.
그럴 나이지 않은가? 20대 중반이라는 황금 같은 나이,
꽃처럼 피어나는, 청바지에 흰 티만 걸쳐도 예쁜 그런 나이.
그런 나이에 그 아가씨는 왜 그렇게 얼굴이 그늘졌을까?
“또, 또, 또. 김 사장 괜한 걱정 한다.
김 사장 그렇게 물러서 장사 어떻게 하려구?
손님 안색까지 살펴가며 누가 장사 하누, 쯧쯧.”
“그냥, 마음이 가네요. 그런 사람 있잖아요.
괜히 더 마음이 쓰이는 사람.”
가게 너머로 비가 오고 있었다.
그때, 문을 열고 그녀가 들어왔다.
한 손엔 자신의 우산을, 한 손엔 정숙이 준 빨간 우산을 들고.
“저... 우산 돌려드리러 왔어요.”
“에구, 어서 와요. 한동안 안 보여 걱정했어요.”
정숙은 자기도 모르게 만면에 미소를 한가득 띠고,
그녀의 손을 잡으며 반기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잡아끄는 정숙에게 이끌려
아무래도 우산만 주고 가려다 엉거주춤 주저앉은 듯했다.
“저, 그럼 미소 김밥 한 줄 주세요.”
정숙은 셀프서비스인 국물을 떠다 주고, 단무지를 챙겨 주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대의 친절을 베풀고 싶었다.
이윽고 김밥을 다 먹은 그녀는 일어나,
정숙에게 쭈뼛쭈뻣 다가왔다.
꼭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이내 결심했다는 듯,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네? 필요하신 거라도?"
"한 번만 안아주세요."
"네? 아, 네.”
정숙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제안에 깜짝 놀랐지만,
이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무슨 사연일까, 물어보지 않아도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았다.
“저... 이혼했어요.
남편이 바람 피워서... 이혼 소송 하느라,
여기 법원 근처에 방 얻어서 한 달 살았어요.
어제 이혼 소송이 끝나 오늘 내려가려구요.
여기 김밥 너무 맛있었는데, 못 먹게 되어 아쉬워요.
사장님, 따뜻한 친절에 너무 감사했어요.”
기껏해야 26살 정도 밖에 안 되 보이는데 이혼이라니,
정숙은 놀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정숙의 표정을 읽었는지
그녀는 부끄럽다기보다 후련한 표정이었다.
이전에 김밥을 먹으며, 톡을 하고 노트북을 하던 얼굴과 비교하면
딴 사람 같았다. 훨씬 밝아 보였다.
창밖에 비가 멈춰 있었다.
9월의 쨍한 하늘과 구름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정숙은 가게 문을 열고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응원이 아닌 기도가 나왔다.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찬란한 당신의 20대가 아름다운 날들이길,
자신 안에 있는 빛으로 빛나길...”
1주일 후,
리뷰 하나가 올라왔다.
음식점 리뷰임에도 사진은 빨간 3단 우산이 메인이었다.
‘미소 김밥은 저에게 특별한 곳이었어요.
단지 고프고 허기진 배를 채워준 맛집 이상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갑자기 비가 온 날,
홀딱 젖은 저에게 닦으라며
돌돌 말아준 키친 타올,
우산이 없어 못 나가는 저를 보며 쥐여주신 우산,
김밥 한 줄 먹으며 넓은 자리를 차지한
저에게 베풀어준 친절과 호의는
돌아가신 엄마 품처럼 따뜻했어요.
사장님의 김밥은 인생에 가장 어두운 순간,
저의 마음을 따뜻하게 말아준 소울 푸드로 기억될 거에요.
사장님, 번창하세요! 또 올게요!“
’마음을 말다...‘
정숙은 ’미소 김밥‘이 아니라 ’마음을 마는 김밥집‘으로
가게 이름을 바꿔야 하나? 고민했다.
창밖엔 따스하고 눈부신 9월의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수, 목에 걸쳐 에피소드가 1개가 끝나도록 발행예정
다음 주 수요일에 3화가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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